6월 27일 큐티묵상
본문 : 사무엘하 16장 15절 ~ 23절
묵상 : 20절 , 21절
20절 :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1절 :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 하는바 됨을 온 이스랑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 지리이다 하니라
제목 : 구속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적용질문 : 내가 지은죄가 우리가정에 어떤 상처를 남겼습니까 ? 그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습니까 ?
중학교 시절 저의 아버지 께서는 당시 흔하지 않은 가전제품 대리점을 삼성과 금성 두곳을 운영 하셨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술은 가전제품 수리 였었는데 가전제품 판매도 설치까지 해주는 그런일을 하셨었습니다 당시에 저희 증조 할아버지는 그당시 만석꾼 이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 하셨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삶을 보내셨었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른 집으로 다른 결혼 생활을 꾸리셨고 , 아버지는 어린나이에 졸지에 세상에 홀로 남겨둔채 할아버지 할머니 만 의지하고 살아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의 존재는 증조부모 에겐 손자 이상의 모습 이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는 기술직에 입문하여
그 계통에 발을 넓혀 나갔지만 삶의 풍파 가운데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당연히 증조부모의 선산과 땅도 많이 탕진 하였습니다 대리점 두곳을 운영하실 때 자금난에 힘겨워 일수를 쓰게 되고 결국엔 집안에 진열된 가전제품 모든곳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게 되고 아버지는 경제사범으로 감방에가고 어머니는 우리들을 버려두고 잠시 도피하셨고 여동생과 저는 전기도 끊긴 집에서 공포스런 하루하를를 살아야 했고 당시 아버지의 친구였던 동동장님으로 부터 도움을 받으며 중3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산밑에 다쓰러져 가는 흙집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아버지는 포천 막걸리를 떼다가 식당과 점포에 납품하는 일을 했었는데 당시에 저는 고입 연합고사를 치루고 대기하는 시간에 중학교 친구들과 저희집에서 모여 놀던중 친구 한명의 꽤임으로 민화투를 배워 하게 되고 처음엔 그 순간이 재미있고 즐겁기만 했지만 어느날 일찍 들어온 아버지에게 현장에 발각이 되어 그날 죽지 않을 정도로 맞게 되었지만 그일로 모든 것을 끊고 개과천선 했었어야 했는데 그런 일이 열손가락 안으로 행해지고 그렇게 저의 중등시절이 끊나가던 중 저는 야간공고에 입학하여 아버지가 먹고 사는 기술인 전자공고에 입학 하였고 그 후로 중학교 동창들과는 간혹 만나게 되었고 고등학교 3년을 생활했던 동창 한명이 같은 직장으로 취업이 되고 그 친구는 학창시절에 이진 정도되는 레벨 이었고 뜻밖에 괴로울 것 같았던 그 친구의 교회가자는 말 한마디에 저는 무신론자 집안에 무당으로 굿을 하던 증조할머니의 우상숭숭배를 끊어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후로 교히에서의 모든 청년부 모임 ,선교회 모임 , 주일엔 성가대로 섬기면서 믿지 않는 우리가족을 향한 구원의 애통함에 신앙생활의 목적성을 가지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어머니와 여동생 ,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아버지 까지 한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지만 , 그후로 하나님의 풀어주시는 은혜로 사람과 환경을 통해 저희가정의 모든 금전적인 것을 풀어 주시는 듯 했고 결혼 정년기 에까지 결혼도 못하고 변변한 직장도 없던 저는 먹고살기 위해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식당에서 사기그릇 설거지를 하며 서서히 주를 떠나는 것을 선택하게 되고 그후로 승승장구 하는 것 같았던 어머니의 갑상선 암 발병 그후로 어머니와 여동생의 미용실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모든 수입은 자루에 구먼 난 것 처럼 줄줄이 세어 나갔습니다
한참 호황을 누리던 미용실과는 별개로 나는 그나마 다니던 식당에서 퇴근길 교통사고 로 인해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된것에 미움을 받아 그 식당을 그만두게 되고 그후로도 인맥을 통해 여러곳의 식당을 다니며 일을 했지만 이내 적응을 못하고 급기야는 백수가 되어 집안에 모든식구가 출근할 때 저는 방구석에 쳐박혀 있게 되고 밤에는 피시방에 서 날밤을 새고 다음날은 또 같은 생활을 지속하던중 어머니의 권유로 30여평 되는 식당을 계약하여 장사를 했지만 이내 3개월도 못 넘기고 빚만 남긴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여동생의 미용실 조차 문을 닫게되고 그나마 살고 있던 집도 더 작은집으로 이사해야만 했고 그후로 지인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던 아버지의 작은 사업체 또한 지인의 배반으로 망하게 되고 그후론 내 명의엔 알지도 못하는 빚이 남겨지게 되고 그일이 있은지가 십 오륙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신용등급이 회복 되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쫄딱 망하고 우리가족은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어머니는 갑상선 암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 여동생은 오랜 미용생활로 인한 근 무력증이란 희귀병으로 수급자로 살아가고 한번의 이혼 과 다시금 재결합의 사건 ,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앙생활을 시작 한 이후 기도제목으로 놓고 있었던 신결혼을 20여년 즈음 되어서야 공동체 안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아내는 저와 결혼생활을 이어 오는중 나의 명의로 된 빚 문제와 시댁과 대화가 되지 않는 부분으로 인해 지금까지 힘들어하고 지금은 단둘뿐인 우리부부에게 대화가 안되어 괴로워 하고 지금은 처가의 일로 괴로워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열심히 살아온다고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리를 치시는 사건으로 다시금 수입이 줄어드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시간과 물질을 내것처럼 사용 했었던 원죄로 인한 하나님의 우리 가족과 아내를 향한 특별한 사랑이심 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래전 나는 먹고살기 위해 주님을 잠시 떠나있는 것이라고 내 스스로에게 합리화 하며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 모든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회복시켜 주실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나와 관계가 있는 모든 식구들과 아내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한 묵상이 구속사적인 묵상이 맞는 것일까 ? 이제야 깨닫습니다 믿음이 없던 가정에 기독교를 끌고 들어온 나였는데 내가 주님을 떠나는 사건이 얼마나 하지 말았어야 하는 선택 이었는지 ? 이제야 깨달아 집니다 고통의 시간이 흘러가고 지금도 흘러가는 중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아내와 저를 점점 더 강하게 하실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본가식구들 믿지않는 처가 식구들의 삶 까지도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굳세고 강하게 인도하여 주실것을요 !!!
적용 : 1) 고난의 시간에 같이 고통가운데 있는 공동체 식구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 중봏겠습니다
2) 처가 장인어른의 환부에 치료의 광선을 비추어 주시사 회복되게 하셔서 우리부부로 하여금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3) 모든것의 뒤에 돈이 있다고 했는데 저희 부부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하여 주셔서 양가부모의 구원과 온가족의 회복을 위해 사용하게 하옵소서
기도 : 주님 내가 했던 골방기도가 주님이 응답하여 주셔서 지금의 은혜를 누리며 살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 , 돌아보면 돈도 시간도 관계도 주님이 간섭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하나도 이루어 질수 없었음이 고백이 됩니다 주님 아직도 바로서지 못해서 기우뚱 거리는 저를 붙잡아 주시고 바로 설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