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5:19-28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기를 ♱
하나님 아버지, 함께하는 공동체에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기를 구하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기를 구하는 인생은 첫째, 고난의 문제 앞에서도 공동체를 먼저 생각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일어나 도망하자 하며 예루살렘을 떠났지요. 오늘은 그 피난길의 모습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아들의 반역을 인정하고 도망가고자 하니 하나님이 곳곳에 돕는 손길을 주세요. 그중 하나가 이방인 잇대예요. 19절에 다윗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고 합니다. 잇대는 이방인 개종자이자 망명자인데 공연히 남의 나라 내란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까 다윗이 염려한 거예요. 그래서 20절에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하며 돌려보내려 합니다. 다윗은 이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지만 그 믿음을 남에게까지 강요하지 않아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망명 생활을 감당 못 할 수 있고 특히 막 믿기 시작한 사람이 교회의 내란에 휩쓸리는 것은 신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하며 축복합니다. 자기 코가 석 자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거예요.
그런데 잇대가 뭐라고 답하죠? 21절에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라고 해요. 잇대는 자기가 이 나라에 온 것이 하나님 때문인데 그 하나님의 종이 떠나는데 어찌 한 주인을 안 섬기겠냐는 거예요. 잇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 잘 몰라도 다윗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거예요. 인간적인 실수가 있어도 다윗의 인격과 신앙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감화된 것이죠. 이것이 아들 압살롬의 배신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압살롬에게 붙은 사람들은 감화된 게 아니라 제각기 이해타산으로 유리하다고 여겨 붙은 거예요. 그러나 잇대의 충성은 혈통이나 지위가 아니라 감화에서 나온 순종입니다. 우리도 그래요. 누군가를 말로 가르쳐 충성시키는 게 아니라 내 삶에서 하나님이 보여야 그 사람이 감화되어 함께 가는 것입니다.
23절에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감에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합니다. 모두가 압살롬에게 돌아섰다고 생각했는데 가는 곳곳마다 온 땅 사람이 그냥 우는 정도가 아니라 대성통곡하며 솔선수범해 앞서 건너갑니다. 다윗이 건너는 기드론 시내는 탁류, 곧 어둡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이에요. 천년 후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셨죠. 다윗도 가장 어두운 탁류를 울면서 건너 광야 길로 갑니다. 이 광야는 징계의 장소인 동시에 훈련의 장소예요.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산성과 방패 되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적용해 보세요.
♱ 내 죄를 인정하고 갈 때 나와 함께 하게 된 공동체는 누구입니까? 무조건 내 편을 드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내가 울면서 건너고 있는 어둠의 기드론 시냇가는 어디입니까?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기를 구하는 인생은 둘째, 구원을 위해서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을 분별합니다.
앞서 다윗은 기드론 시내의 어두운 탁류를 앞두고 ‘마지막 집’이라는 뜻의 벧메르학에 있지요. 이렇게 쫓겨 도망칠 때 그곳에서 사독과 아비아달이 기다립니다. 24절에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라고 해요. 압살롬이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은 다윗이기에 그들의 생각에는 언약궤를 메고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엘리 제사장 시대에 두 아들이 블레셋 전장에 언약궤를 메어간 것과 다르지 않지요. 열다섯 광야를 지나온 다윗은 이것을 분별합니다. 그래서 25절에서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산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궤를 돌려보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처벌에 자신을 맡깁니다. 26절에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요. 그리고 27절에 보니 제사장 사독과 두 아들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냅니다. 이는 압살롬 곁에 있는 아히도벨의 세상 모략을 어리석게 하기 위함입니다. 후새의 구원의 모략에 이들이 꼭 필요한 까닭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힘들 때 하나님을 내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들지요. 예배도 기도도 헌금도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한 카드로 내밀어요. 그러나 참된 믿음은 ‘기뻐하지 않으시면 선히 여기시는 대로 하옵소서’하며 그분 손에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떼쓰는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선히 여기시는 대로 하옵소서’하며 내 유익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길 수 있나요?
학교에서 귀중품을 도난당해 마음이 요동치다가 공동체 권면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평안을 얻게 되었다는 한 청소년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고1 때 누군가가 제 고가의 물건을 훔쳐갔어요. 저는 훔쳐 간 사람을 저주했지요. 부모님은 제가 울자 시끄럽다고 다시 사면 되지 않냐며 화를 내셨어요. 또 네가 학교에서 너무 나대니까 이런 일을 당한다며 이 상황을 큐티로 해석하라고 하셨지요. 아무도 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했어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착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저에게 왜 이런 일이 오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인류애가 바닥났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 친구들을 의심했습니다. 26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나를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시면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라며 하나님이 이 고난의 주권자이심을 고백해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이 사건의 주권자가 되어 악에 받쳐 도둑을 잡으려 했던 모습을 회개했어요. 그리고 교회 선생님의 권면대로 학교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용기를 내어 제가 친구들을 의심하고 정죄했음을 털어놓았지요. 경멸의 눈빛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은 ‘너무 이해된다. 나였으면 아마 더 했을 거야.’라며 저를 따뜻하게 공감하고 배려해 주었어요. 그 후 저는 남은 고1 생활을 무난히 보낼 수 있었고 훔친 사람을 찾지는 못했지만 회개라는 가장 값진 유익을 얻었어요. 제가 앞으로도 제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날마다 인정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저의 적용은 ‘제 열심과 감정이 앞설 때마다 오늘의 큐티 간증을 다시 읽겠습니다. 큐티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솔직한 기도를 함께 적겠습니다.’입니다.”
오늘 다윗의 피난길에는 충성스러운 잇대도 있고 언약궤를 들고 나온 사독도 있어요. 자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다윗은 잇대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축복하며 언약궤도 자기 수단으로 삼지 않고 도로 돌려보냅니다. 가장 어두운 기드론 탁류를 울며 건너가 광야로 향하면서도 ‘선히 여기시는 대로 하옵소서’ 하며 모든 것을 주권자 하나님께 내려놓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광야 같은 고난을 만나거든 하나님을 내 문제 해결의 도구로 붙들 것이 아니라 그 손에 온전히 나를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만이 산성과 방패되심을 경험하게 될 줄 믿어요. 그 어떤 탁류를 건너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가장 어두운 탁류를 울며 건너면서도 언약궤를 돌려보내며 ‘선히 여기시는 대로 하옵소서’ 고백하는 다윗을 봅니다. 그런데 저희는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붙들고 예배와 기도조차 제 뜻을 관철하는 카드로 내밀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광야가 징계인 동시에 훈련의 자리인 줄 알고 그 안에서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이해타산으로 흩어지는 이 세상 속에서도 구원을 위해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분별하고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광야 같은 고난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