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5:10-18
10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2)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 일어나 도망하자 ♱
하나님 아버지, ‘일어나 도망가자’하며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려면 첫째,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지난 이틀 동안의 본문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도 2년 동안 아버지 다윗을 보지 못했어요. 그러자 성을 내며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요. 이에 요압이 압살롬을 찾아가니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고 청하지요. 그렇게 또 요압의 중재로 다윗과 압살롬이 만나서 화해 같지만 화해가 아닌 입맞춤을 합니다. 그 후 압살롬은 성문 길 곁에 서서 송사를 해결해 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요. 그러기를 4년, 결국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듭니다.
오늘 10절에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고 해요. 다윗은 자녀 고난으로 점점 거룩해져 갔지만 압살롬을 키운 것은 분노였어요. 회개는 안 되고 ‘분노는 나의 힘’을 외치면서 내버려두며 시간을 보냈던 거예요.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칩니다. 송사하러 온 이들의 억울함에 감정이입을 해주고 껴안아 주니 12절에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고 해요. 그러나 그는 왕의 재목이 아니었어요. 왕은 내가 스스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마음의 왕좌에 모신 사람은 왕이 되든 안 되든 평안이 있지만 스스로 올라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자리에 올라가도 불안하고 공허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압살롬은 사실 11년간 안 보며 훈련시킬 재목이 아니라 그냥 사랑해 줘야 할 아들이었던 거예요. 아버지의 사랑과 치유가 필요했고 피해의식도 있었지요.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간과했어요. 압살롬을 정죄하기 전에 우리도 이렇게 누군가의 상처를 방치하지 않았나 돌아보아야 해요. 속은 자가 나쁘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이런 것을 분별하는 영안을 달라고 기도하며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어디에서 왕이 되고 싶나요? 직장과 가정의 왕이 되어 만족하나요? 내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그렇게 빼앗고 싶나요?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려면 둘째, 도망가야 합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다윗은 14절에서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하며 재촉합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사자와 곰과도 싸워 이겼던 다윗이에요. 그토록 용감했던 다윗이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합니다. 왜일까요? 무서워서가 아니에요. 다윗은 급박한 순간에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별한 거예요. 전국적으로 반역이 일어나니 누가 내 편인지 분간이 안 되고 동족끼리 서로 죽일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잖아요. 다윗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 곧 자기 백성이었어요. 왕의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명 곧 구원이 최우선이었던 거예요. 한 번 죽으면 끝이기에 무조건 도망가야 모두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도망은 패배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도망한 거예요. 그런데 이런 분별은 무슨 일을 당한 후에 갑자기 떠오르는 게 아니에요. 평소에 훈련되어 있어야 급한 상황에서도 딱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도망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밧세바와 우리아 사건 이후 나단 선지자를 통해 ‘칼이 네 집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이죠. 이 일이 우연이 아니라 자기 삶의 결론임을 즉각 안 거예요. 그래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맞서기보다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며 도망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16절에 다윗이 후궁 10명을 남겨둔 것은 압살롬이 후궁까지 해치겠나 하는 인간적인 계산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마저 섭리에 맞게 쓰셔서 추후에 말씀이 성취되는 일에 사용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이 왕 노릇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왕좌에서 내려올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도 남을 정죄하고 싶을 때 다윗이 도망하듯 더 큰 나의 악을 생각하며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믿음의 공동체 곁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끝까지 이기려고 싸우나요? 사랑해서 져주나요? 사랑하기에 물질, 명예, 시간 등 내 기득권을 포기하고 물러난 적이 있나요? 도망갈 때 기억나는 말씀이 있나요?
오랜 시집살이와 시어머니 간병, 경제 고난으로 독기가 가득했지만,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독기가 빠졌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부자가 되어 시댁과 친정에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고 남편의 사업까지 망했어요. 그 여파로 저는 투잡을 뛰다가 다시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시기에 지인의 권면으로 교회에 다니며 말씀을 들었어요. 어느 날 남편이 시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가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여기저기 살피다가 남편의 바람이 드러났지요. 큰 충격을 받은 저는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생각에 온몸으로 절규하며 원망했는데 교회 지체들은 이 사건이 우리 가정을 바로 세우려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했어요. 그 말에 저는 기분이 너무 나빴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러자 지난날 남편의 사업이 망했을 때 제게 불이익이 올까 봐 두려워 위장 이혼을 택한 것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저는 공동체 권면으로 가정의 구원보다 내 이익을 우선한 것을 회개하며 다시 혼인신고를 했었어요. 그렇게 교회 공동체에 속해만 있었더니 시간이 흘러 저는 소그룹 리더로 세워졌고 그런 제게 남편은 ‘요즘 당신 얼굴에 독기가 빠졌어’라고 해요. 전에는 오랜 시집살이와 시어머니 간병, 경제적 어려움으로 온갖 일를 하며 생색이 올라와 얼굴에 독기가 가득했거든요.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처럼 저도 이기심과 탐심에 마음을 빼앗겨 제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탐한 반역자임을 인정해요.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향한 판단과 정죄가 올라올 때 14절에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듯이 저의 더 큰 악을 생각하며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도망할게요. 공동체를 통해 저의 독기를 빼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남편이 집에서 고장 난 부분을 고칠 때 응원하며 잘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판단될 때 저의 더 큰 악을 생각하면서 정죄를 멈추겠습니다.’입니다.”
오늘 다윗이 벧메르학에 이를 때 그렛과 블렛 사람 그리고 가드에서 온 600명이 왕 앞으로 행진합니다. 이 600명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떠돌던 시절부터 함께한 이들이에요. 통일왕국이 되며 수많은 인재가 등용됐지만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이 환난의 때에 다시 따라나선 사람은 환난과 원통함을 함께 겪은 이들뿐입니다. 다수가 얼마나 허수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3년을 함께한 제자들이 위기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떠났잖아요.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숙해 갑니다. 눈물 흘리며 도망간 다윗이 훗날 별처럼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듯 자녀가 나를 죽이려 쫓아오는 이 고난의 순간도 언젠가 별이 될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도 내 왕좌에서 내려와 사랑하기에 도망하며 말씀의 인도를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상처 때문에 아버지를 반역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은 압살롬의 모습이 곧 저희의 모습임을 봅니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왕좌에 오르니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정죄합니다. 급박한 순간에도 구원을 위해 분별하여 사랑으로 도망한 다윗처럼 기득권을 포기하고 도망하길 원합니다. 이기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주고 급할 때 말씀이 생각나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군가의 상처를 방치하지 않도록 분별하는 영안을 허락해 주시고 남을 정죄하고 싶을 때마다 저의 더 큰 악을 보며 기도에 자리로 도망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환난 중에도 함께 행진하는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만을 우리의 진정한 왕으로 섬기며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