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18-27
18 왕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바라노니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 여인이 이르되 내 주 왕은 말씀하옵소서
19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
20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면 첫째, 중보자가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드고아 여인의 모든 말을 다 듣고 요압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19절에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라고 물어요. 여인이 이런 말을 하는 데는 틀림없이 누가 그녀의 배후에서 조종했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들킨 것을 깨닫고 이 모든 일을 요압이 시킨 것이라 자백하지요. 그러면서 그녀는 20절에 요압이 왕에게 불리한 상황을 바꾸려는 의도로 이 일을 계획했다며 그를 두둔합니다. 깨어진 관계를 돌이키려면 이처럼 중보자가 필요해요. 아마 요압이나 드고아 여인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오랫동안 자기 마음을 바꾸지 않았을 거예요. 요압이 계략을 쓰고 여인이 이야기로 설득해 다윗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요. 그 중보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셔서 원수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하게 하신 것이죠. 그런데 요압의 중보는 예수님의 방식과 너무 다릅니다. 예수님은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심으로 화평케 하셨지만, 요압은 자기는 희생하기 싫고 십자가 지기 싫어 드고아 여인을 앞세웠어요. 예수님은 진실되게 그 모든 진노를 받아내셨지만 요압과 여인은 자기 목적과 이익을 위해 다윗과 압살롬 사이를 중재한 것이죠. 사실 평소의 지혜와 명철이라면 다윗은 이 여인의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도 요압의 계책이 나쁘다는 것도 충분히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전쟁터에 나가 자식들을 고생시켰다는 연민에 빠져 자식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는 다윗에게 왕으로서의 정의보다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시켰어요. 결국 이것이 다윗을 자극해 압살롬을 돌아오게 했어요. 그런데 압살롬은 훗날 누구의 손에 죽습니까? 바로 자기 이익을 위해 중보자를 자청한 요압의 손에 죽고 말지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 예수님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나요? 가정과 직장에서 어긋난 관계를 풀고자 내 이익을 내려놓고 구원을 위해 중보하며 서 있나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면 둘째, 원수된 사람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다윗은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며 요압을 시켜 압살롬을 데려오게 합니다. 선지자 나단의 이야기는 다윗을 회개로 이끌었지만 요압이 지어낸 여인의 이야기는 다윗에게 고통을 주고 이스라엘에 분란만 가져옵니다. 그러니 끝까지 원칙을 지켜야 해요. 언제나 중요한 것은 원칙입니다. 이렇게 압살롬을 데려왔지만 다윗은 끝내 그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아요.
24절에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고 하지요. 압살롬이 회개하지 않았기에 백성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거예요. 그리도 보고 싶으면서 데려다만 놓고 참는 다윗입니다. 이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너무 큰 비극이 옵니다. 다윗은 엄격해야 할 때 관대하고 관대해야 할 때 엄격해요. 갑자기 나사가 풀린 것 같습니다. 백성의 이목을 의식하면서 개인적 앙금이 완전히 풀린 것도 아닌 때였어요. 다윗은 압살롬이 그 정도면 알아서 훈련받겠거니 착각한 것이죠.
저도 사람을 믿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요. 조금 더 기다리면 회개하지 않을까? 이쯤이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수준 높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기다리는 것과 문제를 덮어두는 것은 다릅니다. 압살롬이 깨닫지 못했다면, 다윗이 이제라도 그가 깨닫도록 양육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해요. 그저 아버지가 미안하다. 한마디만 했더라면 압살롬의 마음이 녹지 않았을까요? 압살롬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양육하려면 결국 얼굴을 봐야 가능한 것이죠. 다윗은 기다린 것이 아니라 회피한 것입니다. 우리도 기를 써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내가 죄지었다고 하나님을 피하면 안 됩니다. 뻔뻔하게 다시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해요. 매를 맞고 혼이 나더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갈 때 모든 오해가 풀리고 해석되지 않던 내 삶이 비로소 해석됩니다.
그런데 25절부터 보면 압살롬은 그 외모가 무척 아름다웠다고 해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고 머리털이 무거워 해마다 깎을 정도였어요. 보기 좋고 흠이 없으니 다윗도 백성도 그를 좋아했어요. 그러나 결국 그 뛰어난 외모와 머리털 때문에 죽게 됩니다. 자신이 아름다우니 참으로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은 거예요. 적용해 보세요.
♱ 원수로 여기며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죄를 짓고 하나님께 죄송해서 도리어 그분을 떠나 있지는 않나요?
장모님과 서먹했지만, 성령님이 주신 지혜로 나눈 간증에 설득되신 장모님이 공동체에 붙어가게 되어 감사하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40대 후반에 장인어른을 여의고 혼자 되신 장모님은 자기 힘과 의지로 두 딸을 뒷바라지하셨어요. 저희 부부는 그런 장모님이 구원받기를 바라며 교회로 인도했지요. 하지만 장모님은 교회에 몇 번 나오다가 발길을 끊으셨어요. 24절에서 압살롬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거리를 두는 다윗처럼 저 또한 장모님과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장모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믿음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상황을 주셨어요. 어느 날 장모님이 이사할 지역을 두고 가족회의가 열렸어요. 저는 장모님이 최근 사기를 당하신 적이 있으니 처제가 사는 지역에 계시는 게 안전하고 또 그곳이 교회와도 가까우니 더 좋을 것 같다라고 했어요. 그러자 장모님은 "이제 좀 쉬고 싶어 고향에 내려가게 해줘."라고 하셨지요. 순간 저도 마음이 흔들렸지만 성령님이 지혜를 주셔서 제 삶을 간증하게 되었어요. "믿음이 없을 때는 술 마시고 본능대로 살면서 아내와 자주 다투고 이혼까지 생각했어요.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의 사명을 갖고 아내와 아이를 돌봤더니, 가정이 회복되었어요. 장모님도 조금은 외롭더라도 자식 근처에 사시면서 예배드리고 공동체 모임에도 나가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시면 좋겠어요."라고 했죠. 한참을 고민하시던 장모님은 결국 제 권면을 받아들여 처제가 사는 지역에 살 집을 구하셨어요. 장모님을 설득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 성령님께 감사해요. 이 일이 장모님뿐만 아니라 처제 가정까지 교회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믿어요. 저의 적용은 ‘가족 모임 때 큐티인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장모님과 처제와 동서가 구원받도록 꾸준히 교회로 인도하겠습니다.’입니다.”
서먹하고 힘들어도 장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니 구원을 위한 설득을 할 수 있었네요. 내 이익이나 연민의 감정 때문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 때문에 그 얼굴을 구하는 것이죠. 오늘 다윗은 회개 없는 압살롬을 데려다 놓고도 끝내 얼굴을 보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로 더 큰 비극을 자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을 피할 것이 아니라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붙들고 뻔뻔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저희는 주님의 얼굴을 구할 자격조차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원수된 저희에게 한 중보자를 보내주셔서 담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보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한 압살롬을 끝내보지 않은 다윗처럼 저희도 기다릴 때와 양육의 때를 분간하지 못해 회피로 일관할 때가 많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주님을 피하지 않고 매를 맞더라도 십자가를 붙들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구원 때문에 찾아가 그 얼굴을 보는 적용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가족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모든 가정을 붙들어 주시고 다시 이 나라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나라가 되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026년 6월 19일 금요일 극동방송 큐티노트 녹취록026년 6월 19일 금요일 극동방송 큐티노트 녹취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