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9-17
9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10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11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2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의 여종을 용납하여 한 말씀을 내 주 왕께 여쭙게 하옵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말하라 하니라
13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15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당신의 여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오면 혹시 종이 청하는 것을 왕께서 시행하실 것이라
16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기업에서 끊을 자의 손으로부터 주의 종을 구원하시리라 함이니이다
17 당신의 여종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 내쫓긴 자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내쫓긴 자 같음을 깨닫고 주 앞에 엎드리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내쫓긴 자 같음을 깨달으려면 첫째, 죄가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드고아 여인과 다윗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9절에서 여인은 자기 아들을 처벌하지 않은 책임은 모두 자신과 자기 집안이 지겠다고 말해요. 그런데 이 말은 사실 압살롬의 아비인 다윗의 책임을 은근히 거론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10절에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고 해요. 이미 다윗의 마음이 움직인 거예요.
여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1절에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다윗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요. 그러자 다윗은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아무도 그 아들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먼저 여쭙고 주도적으로 행하던 다윗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요. 사람의 말에 이끌려 성급히 맹세하는 무기력한 모습만 남았어요. 이처럼 말씀 위에 바로 서 있지 않으면 내 마음과 생각이 끊임없이 세상에 급하고 두려운 일들에 끌려다니게 되지요. 누군가 다급하게 호소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까지 갖다 대면 분별없이 덜컥 결정하고 약속해 버리는 것이죠. 그러나 명철한 판단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먼저 물을 때 나오는 법입니다.
다윗의 약속을 받아낸 드고아의 여인이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결국 13절에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라고 해요. 여기서 내쫓긴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압살롬이에요. 가상의 살인자 아들은 살려주겠다고 맹세하면서 정작 자기 아들 압살롬은 내쫓은 채 두는 것이 모순이라고 더 나아가 그것이 죄라고 다윗을 몰아세우는 것이죠. 여인의 말솜씨가 참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어요. 여인은 압살롬을 그저 돌아오면 되는 불쌍한 자식으로만 그립니다. 회개도 징계도 빼놓은 채 말이죠. 다윗은 이 말에 넘어가기 전에 압살롬이 내쫓긴 게 과연 누구 때문인가를 봐야 했어요. 이는 암논의 죄를 직면하지 않은 채 덮어두고 다말의 상처를 외면한 다윗에게 책임이 있잖아요. 그러니 다윗은 이 모든 일의 뿌리에 내 죄가 있구나를 봐야 했어요. 다윗은 밧세바 사건으로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사람이에요. 다윗 역시 회개 없이는 하나님께 내쫓길 수밖에 없는 인생이죠. 그러니 여인이 말한 내쫓긴 자는 사실 압살롬만이 아니라 다윗 자신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날 때부터 죄인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내쫓긴 인생이에요. 왕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죄인인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아들 압살롬이 내쫓겼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니 결국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땅에 떨어지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11절에서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자신 있게 맹세했지만, 정작 자기 아들 압살롬의 머리카락은 나중에 요압에게 잘리고 압살롬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아요. 사람의 맹세와 약속이 이토록 부질없고 헛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붙들 것은 내 다짐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내쫓길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돌아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나는 누구를 내쫓았나요? 부모인가요? 자식인가요? 배우자인가요? 내쫓긴 사건을 통해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있음이 죄임을 깨닫나요?
내쫓긴 자 같음을 깨달으려면 둘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15절과 16절에서 여인은 백성이 자기를 두렵게 하기에 왕에게 청을 드리는 것이라며 자신과 아들을 피의 보복자들로부터 구해달라고 부탁해요. 그러면서 17절에서는 다윗을 선과 악의 모든 것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한껏 치켜세웁니다. 여인은 논리적인 달변으로 다윗을 설득할 뿐 아니라 듣기 좋은 말로 아첨까지 해요. 이 말에 넘어간 다윗은 자기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여기며 결국 압살롬을 데려옵니다. 그러나 회개도 공의도 빠진 이 결정은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다윗은 회개했기에 하나님이 즉시 용서하셨지만, 압살롬은 회개가 없었어요. 그런 압살롬을 그냥 데려오니 다윗에게 내쫓긴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의 왕좌를 찬탈하여 다윗을 내쫓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아들에게 내쫓겨 울며 산을 넘던 다윗에게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어요. 이를 부하들이 죽이려 하자 다윗은 선과 악을 내가 판결할 수 없다며 시므이의 악행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오늘의 다윗과는 너무 다르지 않나요? 내쫓김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거예요. 우리도 이것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십자가를 붙들 수 있습니다. 적용해 보세요.
♱ 힘이 있다며 그 힘으로 결정하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선과 악을 내가 판단하며 판결하려고 하지는 않나요? 내가 주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깨닫나요?
남편의 침묵이 힘들지만 자신의 피해의식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소통하기를 소망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조용하고 성실해 보이는 남편과 재혼했지만, 예상과 달리 남편은 자주 화냈어요. 저는 당시 4살이던 제 딸이 상처받을까 봐 보호하려 애썼는데 그 모습이 남편에게 편 먹는 것처럼 보였는지 부부관계는 점점 더 나빠졌지요. 그렇게 끝없는 전쟁을 치르며 살다가 가족 모두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되었어요. 말씀을 들으며 내 마음대로 이혼하고 재혼한 제가 딸한테 큰 상처를 준 문제 엄마이고 남편을 새아빠라는 어려운 자리에 앉힌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말씀 앞에 자기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각자 침묵의 시간을 가지니 서로 비방하는 횟수도 많이 줄었어요. 하지만 남편의 침묵이 길어질 때면 저는 벌 받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답답하고 어려워요. 얼마 전 아침, 제가 한 계란찜이 평소보다 싱거웠어요. 음식의 간이 중요한 남편은 겉으로 화내진 않았는데 기분이 많이 상해 보였지요. 사과해도 묵묵부답이라 저는 남편 스스로 침묵을 깨고 나오길 기다렸지만 그 시간이 또 길어지자 힘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11절에서 드고아 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넘어가 성급히 맹세를 하는 다윗을 보면서 남편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아 있어서 남편의 침묵이 길어지는 데 한몫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의견이 다르고 마찰이 있어도 구원의 관점으로 남편에게 다가가 대화해야 하는데 저는 아직도 거절 받는 것이 두려워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해요.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하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랑에 힘입어 남편에게 담대히 다가가 믿음 안에서 소통하는 부부가 되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남편의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만져 주시길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남편에게 날마다 감사와 칭찬의 말을 한마디씩 하겠습니다.’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묻고 찬양하던 다윗도 환경이 주어지니 죄를 덮으려 하고 문제를 회피하는 약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드러내고 오픈하지 않으니 내쫓고 내쫓기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내쫓은 그 사건의 뿌리에 내 죄가 있음을 보기를 바라요.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며 주께로 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다윗은 드고아 여인 앞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자신 있게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아들 압살롬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이게 뭔가 싶습니다. 저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 역시 하나님께 범죄하여 내쫓긴 인생임을 평생 기억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나를 돌아오게 해주셔서 이렇게 살 수 있음을 잊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선과 악을 제 손으로 판결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오직 구원을 위해 주님이 주시는 능력만을 구하길 원합니다. 구원을 위해서만 우리에게 주신 권과 능력을 사용하길 원하오니 함께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