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1-8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2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3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4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5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6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죽인지라
7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8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 할 말을 넣어 주니라 ♱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할 말을 말씀해서 찾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할 말을 말씀해서 찾으려면 첫째, 사람의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자와 소가 만나서 결혼했어요. 허니문 기간에는 서로 너무 좋으니 문제가 없었지요. 사자가 소를 생각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뜯어서 가져다 주자 소는 싫어도 ‘아이 맛있어’하고 기쁘게 받아줍니다. 소도 사자를 위해 정성껏 풀을 뜯어서 먹으라고 주니 사자는 ‘좋아 좋아’하면서 먹는 시늉을 합니다. 하지만 둘 다 서로가 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병들어 갔지요. 받아주다 지치고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서로 싸울 일밖에 없죠. 물고 뜯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고는 결국 헤어집니다. 그러고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먹을 것도 차려줬어. 할 만큼 했어.’이러는 거예요. 잘해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은 도리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은 100% 자기중심적이라 자기밖에 몰라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욕심을 들이대며 상대방을 죽이는 거죠. 지금 요압이 딱 그렇습니다.
1절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았다고 해요. 요압의 관심사는 오직 왕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나에 쏠려 있습니다. 요압 정도의 위치라면 왕과 나라의 구원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그는 항상 오직 왕의 마음만 살펴요. 왜냐하면, 거기에 자기 욕심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도 모르고 요압 자신도 몰라요. 왕을 위하는 일이니 구원을 위한 일이며 옳은 일이라 생각하는데 정말 구원에서는 점점 멀어집니다.
2절에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라고 해요. 마치 나단 선지자가 이야기를 통해 다윗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이끈 것처럼 요압도 비슷한 방법으로 다윗의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근심만 해결해 주려 하지요. 다윗을 생각하는 마음이 인간적인 위함과 걱정으로 그치니 나중에 더 큰 비극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3절에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고 해요.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주변과 상황을 조정해서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능한 요압이에요. 이는 다윗보다 자신이 더 위에 있다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다윗의 마음을 이용합니다. 눈치가 백단이에요. 다윗의 약점과 슬픔 그리고 연약함을 잘 파고들어 그를 조종하려는 것이죠.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구원과는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연약하고 힘들 때 어떤 말이 들리나요? 사람의 말과 위로에 마음이 움직이나요? 정확히 문제를 지적하며 회개하게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나요?
할 말을 말씀해서 찾으려면 둘째,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
4절에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라고 해요. 다윗의 간절함을 눈치챈 요압은 압살롬의 복귀를 은밀히 추진해요. 드고아에 살던 한 여인을 불러내어 그 입에 할 말을 넣어주며 다윗 왕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깁니다. 충성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요압이 하나님의 지혜로 하지 않게 잘못된 중재를 하는 거예요. 6절에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죽인지라’고 해요. 여인은 상복을 입고 다윗 왕을 찾아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꾸며내 말하며 얼굴을 땅에 대고 동정을 구합니다.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다윗의 감정에 호소한 거예요. 여인이 뭐라고 하나요? 자신의 두 아들이 다투다가 한 아들이 죽었는데 이를 알게 된 이웃들이 그 남은 아들마저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여인에게 집으로 가라고 명하면서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고 약속합니다. 내일 본문에도 나오겠지만 여인의 남은 아들을 향한 복수를 금하도록 명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감정이 말씀보다 앞서니 다윗의 모든 시야가 막힙니다. 특히나 감정적으로 연약한 자녀 문제의 틈을 파고드니 바로 넘어가고 맙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감정적으로 끌려 불신 교제를 하고서 나 아니면 이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동정심으로 불신 결혼까지 감행합니다. 불륜을 행하고도 상대방이 교회에 온다고 하면 그 불륜 관계를 끊지 못합니다.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감정이 나를 지배하면 이렇게 분별하지 못하고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감정에 호소하는 상대방의 말을 분별하지 못해 잘못 판단한 일은 무엇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든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의 공동체에 묻고 듣는 시간을 가지나요?
친구의 마음을 떠보려다. 그것이 친구를 속이는 것임을 알고 그러지 않기로 적용했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한 친구를 통해 다른 친구의 속마음을 알아보려 했어요. 믿을 만한 친구를 통해 이런저런 말을 전하게 하려고 계획했죠.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엄마에게 말씀드리자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니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고민하다가 엄마 말씀대로 순종하고서 곰곰이 묵상해 보다가 3절의 요압처럼 친구의 마음을 떠보려 한 제 모습이 보여 회개가 되었어요. 작은 일처럼 보여도 정직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멈추라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친구를 속이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을래요’입니다.”
밥 먹기 싫은 마음을 엄마가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엄마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는 일곱 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밥을 먹기 싫어서 가만히 있다가 엄마한테 혼났어요. 매일 밥 때문에 혼나니까 엄마가 제 마음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속상하고 억울했죠. 그런데 3절에서 요압은 다윗 왕의 슬픈 마음을 알아채고 자기 생각도 위로하려고 해요. 제가 밥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시는 엄마의 마음을 몰라 속상했던 것 같아요. 제 생각과 다르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어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속상할 때마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입니다.”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했지만 요압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4살 어린이의 새싹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요압은 다윗 왕을 도와주려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대요. 그런데 1절 말씀을 보니 자기 생각대로 거짓말하며 도와주려고 했대요. 저도 친구가 장난감을 조립하지 못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할 줄도 모르면서 ‘내가 잘해’라고 말했어요. 앞으로는 도와주고 싶을 때 아는 만큼만 도와주고 모르는 건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하자’라고 말할게요. 저의 적용은 ‘도와주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만큼만 도와주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게요’입니다.”
오늘 요압은 다윗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드고아 여인의 입에 할 말을 넣어주며 그 감정을 파고들어 마음을 조종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간적인 정은 아무리 사랑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도 도리어 상대를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연약하고 힘들 때 들리는 사람의 말이 정말 나를 살리는 말씀인지 사람의 말인지 잘 분별해야 해요. 감정이 말씀보다 앞서지 않도록 날마다 큐티하며 믿음의 공동체에 묶여 듣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이유입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사랑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제 욕심을 들이대며 상대를 죽이고 감정에 이끌려 말씀에서 멀어질 때가 많은 저희입니다.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요압처럼 교묘하게 위로하는 인간의 말에 더 솔깃해지는 연약함도 있습니다. 내 연약한 부분의 틈새를 파고드는 거짓을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정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든 관계에서 자유함을 누리도록 저희에게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말씀이 왕 노릇하는 저희의 인생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