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6 압살롬을 향한 편애 사무엘하13:30~39
31 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33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니라 34 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파수하는 청년이 눈을 들어 보니 보아라 뒷산 언덕길로 여러 사람이 오는도다 38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에 산 지 삼 년이라 39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지금 나는 무슨일로 간절합니까? 구원입니까? 행복입니까? 삼년의 기회를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왕의 자리를 탐하던 압살롬은 동생의 추행사건을 빌미로 형을 죽이고 도망을 갑니다. 여러 차례 압살롬이 사인을 보냈음에도 영의 눈이 어두워진 다윗은 상황을 살피지 못하고 방치합니다. 본인이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상황에서 당장 도망간 아들을 불러와서 마땅한 죄 값을 치루게 해야 함에도 오늘 다윗은 또 방치를 넘어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이런 것일까? 가만 가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 뒤에 그 슬픔을 위로한 자식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지만 이 사건은 자식의 정욕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기에 마땅히 압살롬에 대한 죄값을 부여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저도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훈육을 해야할 때와 멈출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 온 것 같습니다. 두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힘들게 할 때도 자식에 대한 미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저는 미운 마음이 없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미움의 표현을 대안학교와 외국으로 보내는 것으로 회피하였습니다. 남편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면서 내가 가족우상과 자기 애가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직면하고 있는 요즘 두 아들에게 매를 들고 훈육을 한다고 했지만, 내 감정을 분출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정작 훈육을 해야할 시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며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였습니다. 어제 한 학기를 마치는 마지막 시험을 보고 돌아온 아들이 힘들다며 교수의 수업방식 등을 푸념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은 좀 쉬고 싶다며 피자와 술을 마시는 아들을 대하면서 어떻게든 집에서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기 싫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인지? 아들이 캥거루족이 되어 독립을하지 못할지 하는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데, 주말에 다녀간 조카들이 궁핍한 가운데 학교 때 알바를 하며 열심히 살아왔기에 모두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고 하는 우리의 양육 방식이 잘못된 것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년이 된 아들이 용돈을 유흥비로만 쓰는 것과 내 기준으로 많은 용돈을 받고 있다는 여러 생각이 겹치면서 아들의 구원보다는 내쫓아 고생을 해야 정신을 차린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습니다. 주님. 제가 아직도 아들의 구원보다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그리워하며 그것으로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두 아들의 구원을 위해 옷을 찢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연민의 눈물로 억울하다며 옷을 찢고 울고 있는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의 모습을 봐야하는 삼년의 시간을 잘라내고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내 죄를 보며 하나님보다 앞선 우상을 깨뜨리고 진정 아들의 구원을 위해 눈물 흘리게 하옵소서. 아직도 다윗처럼 돌이켜 회개하지 못한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내 손가락이 아들이 아닌 나를 향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나를 보는 사무엘하 이 말씀을 교훈 삼아 내가 어떤 다윗으로 살아야 하는지 더 깊이 깨달고 삶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 아들이 스스로 병원에 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겠습니다, 공동체에 잘 나누고 지혜를 구하며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