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2:18-23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천국 소망으로 살아가려면 첫째, 내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응답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위해 7일 동안 금식하며 땅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나요? 아이는 죽고 말지요. 이것을 본 신하들은 당황하여 18절에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라고 해요. 그들은 다윗이 크게 상심할까봐 걱정하면서 아이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신하들의 눈에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다윗의 기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해요. 다윗이 아이를 살려 달라고 기도한 것은 진실한 기도였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에 ‘No’라고 응답하셨어요. 그 ‘No’ 역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하나님의 거절도 모두 그분의 응답인 거예요.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 제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왜 떨어져야 하나요? 왜 망해야 하나요? 왜 아파야 하죠?’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삼십 대 젊은 나이에 남편이 떠났잖아요. 그때 다윗 곁에 있는 신하들처럼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심지어 저에게 ‘아이고, 새댁이 무슨 죄를 그리 지었노?’ 하시는 분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남편의 구원을 위해 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 마음이 힘드신가요? 이런 나를 보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 때문에 괴로우신가요? 그런데 내 기도가 거절당하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입니다. 내가 서야 할 자리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앞이어야 하는 것이죠. 적용 질문이에요.
♱ 내가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No’라고 응답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그때 내 마음은 어땠나요?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았나요?
천국 소망으로 살아가려면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19절에서 신하들의 수군거림을 본 다윗은 아이의 죽음을 직감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의 행동은 신하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20절에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고 해요. 7일 동안 기도하던 다윗이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입었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내가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왜 이러셨나요?’ 하면서 항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결과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아이의 죽음을 징벌로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공의의 결과로 받아들인 것이죠. 다윗이 몸을 씻고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이제 더는 슬픔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신 여생의 사명을 잘 감당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어떤 비참한 현실도 수용할 수 있어요. 징벌조차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기에 슬픔을 뚫고 일어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상황과 환경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기도응답의 결과가 어떠하든 절대주권의 하나님이 나의 경배를 받으실 분임을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뜻하지 않은 상실이나 고통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어디로 향하나요? 내가 오늘 당장 씻고서 의복을 갈아입고 회복해야 할 일상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가정이 걸림돌처럼 느껴지지만 공동체에서 양육을 받으며 죄와 수치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한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매일 밤 고성을 지르며 싸우시는 부모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가정환경은 언제나 걸림돌로 느껴졌어요. 아버지께서 당뇨 합병증으로 일을 그만두신 뒤로는 가정경제가 더욱 어려워졌지요. 그 가운데서 하염없이 울며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제게 하나님은 저보다 앞서 고난을 겪은 지체들과 교회 선생님을 보내주셨어요. 청소년부 소그룹 모임에서 편하게 고난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내게도 해주셨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남들과 비교하며 감사보다는 원망이 더 커졌어요. 자취를 시작했는데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우울함이 몰려왔어요. 이것을 공동체에 나누며 다시 본가로 들어가는 적용을 했더니 하나님은 제가 가족의 보살핌을 받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일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간호를 온전히 책임지셨고 출근하는 제게 매일 도시락을 싸주셨어요. 또한 아버지는 교회 소그룹 모임을 사모하며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죠. 늘 서로를 탓하며 싸우던 가정이었는데 예배가 회복되어 가족들과 각자 묵상한 말씀을 나누며 점점 회복되어 갔습니다. 이 과정 가운데 나만 피해자라며 모두를 탓하던 저의 죄가 인정되었어요. 20절에서 죄와 수치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일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다윗을 보며 저 또한 죄와 수치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아가야 할 곳이 있음을 깨달아요. 악하고 약한 저를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시기를 날마다 구하며 믿음의 공동체에 꼭 붙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적용은 ‘공동체에서 느낀 사랑과 위로,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매일 감사일기를 쓰겠습니다. 가정 고난으로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제 간증을 나누며 위로하겠습니다.’입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는 금식하며 울고 죽은 후에는 오히려 일어나서 밥을 먹는 다윗을 보며 신하들은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하고 물어요. 그러자 다윗이 어떻게 답하나요? 23절에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에요. 나는 그에게로 가겠다 하는 말은 천국을 확신하는 고백이에요. 다윗은 아이가 하나님 곁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언젠가 그리로 갈 것을 알았습니다. 구원의 확신이요, 천국 소망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영아 구원에 관한 중요한 성경적 근거가 됩니다. 죄를 알기 전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아이들도 하나님의 자비하심 안에서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에요. 이 진리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에게 깊은 위로가 됩니다. 회개 이전의 다윗은 자신의 욕망을 따랐어요. 하지만 회개 이후의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자기 한계를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붙잡았어요. 저 역시 남편이 간경화로 하루 만에 주님 품에 안기게 되었지만 천국에 갔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겠습니까? 구원받고 천국에 간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큰 기쁨이란 걸 알기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다윗처럼 크고 작은 실수와 죄를 안고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쓰십니다. 회개하고 일어서는 자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배할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일들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 기도드릴게요.
주님,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을 기도 응답으로 여기는 저희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 주시지 않는 주님을 원망하며 서운해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진정한 기도의 응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 시작되는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아이가 죽었을 때도 일어나 예배드린 다윗처럼 고통과 상실의 자리에서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주님을 예배하길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영원한 천국 소망 안에서 담대히 걸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자신의 기대와 다른 환경 속에서 힘겨워하는 지체들을 찾아가 그 눈물을 닦아주시고 구원으로 결론이 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