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난아이가 엄마만 의지 하듯이
작성자명 [최계원]
댓글 0
날짜 2006.03.10
마 19 : 13 ~ 22
마 19 :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현대도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종종 어린 아이들을 랍비나 장로들에게 데리고 가서
축복기도를 받게 했었습니다. 저도 약 15년전에 아들을 데리고 대한수도원을 방문해서
전진 원장님께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제단의 불을 끄지 말라는것과 복음으로 통일할것을
평생 기도해 오신 원장님이 귀해서 찾아갔던것 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심신이 피로 하실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들의 접근을 금지 했지만 어린
아이들에 대한 예수의 사랑은 각별 했습니다.
진정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의 영혼과 인격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시며 그들의 영과육의
건강을 기원해 주셨을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과는 다릅니다. 아이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부모를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젖먹이 아이는 엄마만 있으면 만사에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젖먹이에서 조금 더 커도 자기의 그늘이 되는 부모만 있으면 더 이상 욕심이 없습니다.
먹을것도 자기 손으로 쥘수 있는 한주먹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도 엄마가 하나 달라고하면 주고, 아빠가 하나 달라고하면 주고, 옆에 있던 오빠가
나도 하나 달라고하면 또 줍니다. 그러다가 장난칠려고 계속 달라고해도 주다가 나중에
하나 남은것까지 주고는 자기가 먹을것이 없으니까 그때야 울음보가 터집니다.
그러나 고사리같은 손에 한주먹만 쥐어주면 언제 울었느냐는듯이 잘 놉니다. 어릴때 제
딸이 그랬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일용할 한끼 양식에 족하고 잘 자라납니다.
육식동물들도 한번 사냥을해서 자기 배가 부르면 더 이상은 사냥을하지 않고 쉬다가 다시
배가 고프면 사냥을 합니다. 물론 힘없는 동물들이 양식을 비축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연계의 모든 동물이나 새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을 하는데 유독 사람만은 물질욕심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더.... 더....... 더......하다가 인생을 마무리 합니다.
리어커 있으면 말수레를 사고 싶고 삼륜차 사고 싶고, 트럭 사고 싶고 그뒤에는 운수회사를
할려고 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것이 아니라 열심히 모으기만 하다가 쓸줄도 모르고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이 대부분 이다는것 입니다.
어린아이라고 다 천국을 가는것은 물론 아닙니다. 어린아이라 할찌라도 믿음이 있어야 가는
곳이 천국이며 누릴수 있는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의지 하며 환영
하는자들에게 천국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엄마만을 의지 하듯이 내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세상의 환란이 닥쳐도 심령이 잔잔한 평안을 누릴수 있습
니다. 예수를 믿어도 안믿어도 어차피 세상은 풍파로 가득차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소원의 항구까지 가는 동안에 몇 번의 태풍과 경보와 파랑주의보를 만날줄을
나는 모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런 환란이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내가 어린아이의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을때에 주님께서도 반응하셔서
내 심령을 굳게 하셔서 환란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 하게될것 입니다.
어린아이들에 대한 신앙교육은 일차적으로 각 가정에서 잘 되어야 합니다. 신앙교육은 아이
에게 잘 가르칠려고 할것이 아니라 부모가 신앙의 모범을 보이면 됩니다.
모든 말과 행동을 자녀는 유심히 보고서 그대로 따라서 하기 때문에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것 입니다. 내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자란 아이가 나의 그림자 입니다.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이해할수 있기를 시작할때부터 성경과 친숙하도록 인도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는법을 가르쳐 생활하게 하면 훗날 아름다운 열매가 반드시 맺혀질것 입니다.
어릴때 신앙이 있으면 그 코에 하나님의 낚시바늘이 꿰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자유로이
태평양까지 나갔다 하더라도 다시 주께로 돌아오도록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역사 하십
니다.
내가 딸과 4년이상 소식도 없이 떨어져 있지만 마음이 평안하고 날마다 딸을 위해 기도
하고 나의때가 찰때에 딸이 돌아오리라고 믿는것은 딸이 어릴때 말씀으로 양육 되었기
때문입니다.
딸의 입에 찬송이 있고 딸의 눈에 애통의 눈물이 있었기에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많은 청년 헌신자들이 기업선교로 일어나기를 기도 하므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나의
거룩을 이루어 가기 위하여 딸이 수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딸을 보면서 나의 죄를 정확하게 끄집어 낼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통의 눈물을 흘리고
복음의 빚진 수고를 해야 할것 입니다.
재물이 많은 관원청년이 계명을 다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예수께로 달려나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생을 구하는 열정적 구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재물과 명예와 젊음이 있음에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므로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수가 없다는것입니다. 영적 갈증을 채울길이 없습니다.
어린아이 교훈뒤에 부자 청년이 나오는것은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자와 들어갈수없는자를
깨우쳐주는 목적으로 말씀하기 위함 입니다.
부자 청년은 주요계명을 거의 지켰지만 부족한것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영생을 얻을수
있는 선한일은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인식하고 그분이 명하는바를 따라 행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이청년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줄을 알지 못하고 다른 바리새인들처럼 공적에
의해서 의롭게 되는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해야할일은 선한일을 행하는것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독생자
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라야 되는것 입니다.
부자청년은 나보다 더 경건했지만 예수를 몰랐습니다. 그것이 그의 불행입니다.
자기 영혼에 대한 애통함보다 재물이 더 중요 했었습니다. 동정은 있었지만 눈물은 없었
습니다. 영적으로 텅 빈 가슴을 자기 소유로 채우고 만족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근심하면서 예수를 버리고 재물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재물은
티끌이 되어서 날라가 버렸고 그 영혼은 음부에 있을것 입니다.
고난을 통해서라도 심령이 거지가 되어서 예수 찾기에 갈급함이 축복 입니다.
내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하느라고 수고한 모든 환경을 사랑하고 애통할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갖난 아이가 엄마만 의지 하듯이 내가 환란중에도 주님만을 의지하기 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