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9:1-8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 은총을 베풀리라 ♱
하나님 아버지, 사람을 외모와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우리가 받은 은총을 잊지 않고 흘려보내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은총을 베풀려면 첫째,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찾아가야 합니다.
오늘 1절에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고 해요. 여기에는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이 있어요. 요나단은 살아있을 때 다윗에게 자기 집안을 부탁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안정된 후에도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습니다. 사울이 죽은 지 17, 18년이나 지난 시점이에요.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다윗은 여전히 요나단을 기억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 안에서 왕권이 견고해졌죠. 평안이 왔기에 이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삶이 늘 흔들리고 불안하면 다른 사람을 품을 여유도 없죠.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세우시고 그 다음에 은혜를 흘려보내게 하십니다. 므비보셋이 직접 찾아온 게 아닙니다. 다윗이 먼저 찾아갑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지요. 이것이 은혜예요.
2절에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고 해요. 시바는 원래 사울 집안의 종입니다. 그런데 사울 집안이 몰락한 후 그 재산을 관리하며 사실상 주인처럼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3절을 보니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냐고 묻자 시바는 므비보셋을 다리 저는 자라고 소개해요. 이름보다 약점을 먼저 말하는 것이지요. 은혜를 모르면 사람을 조건과 약점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구속사로 보지 못하고 쓸모와 외모로만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4절을 보니 다윗은 시바의 말을 듣고도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약점보다 존재를 찾는 것이죠. 이것이 은총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누군가를 먼저 찾아가나요?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릅니까? 아니면 약점으로 판단합니까?
은총을 베풀려면 둘째, 조건이 아닌 은혜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4절을 보니 시바는 다윗의 질문에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라고 답해요. 로드발은 ‘목초지가 없는 황량한 곳’이라는 뜻이에요. 왕자의 신분이었던 므비보셋은 지금 황량한 땅에서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사울 집안이 몰락했으니 늘 두려움 속에 살았을 거예요. 게다가 다리까지 절어요. 요나단 같은 아버지와 사울 같은 할아버지를 두었음에도 망한 왕가의 후손이라는 운명을 함께 물려받아 가장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마길이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시바는 주인 행세를 했지만 마길은 계산 없이 므비보셋을 품었어요. 무려 17, 18년 동안 숨겨주고 장가까지 보내며 아버지처럼 돌보아 준 것입니다. 은혜 갚을 길이 없는 사람을 끝까지 보살펴 준 마길입니다. 그러니 때가 되어 어떻게 되나요? 5절에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라고 해요. 마길의 숨은 수고를 하나님이 기억하여 갚아주시는 날이 온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6절에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라고 하죠. 므비보셋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대개 왕조가 바뀌면 이전 왕가의 후손은 제거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윗이 뭐라고 하나요? 7절에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이에요. 죽어야 마땅한 자에게 먼저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뭐라고 하나요?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내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지요. 므비보셋이 잘해서가 아니에요.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은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밭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며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고 합니다. 단순히 먹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친아들처럼 왕의 식탁에 앉게 한 것이죠.
그런데 므비보셋의 반응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8절에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자기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폐위된 왕가의 후손이고 다리 저는 자이며 로드발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는 자기 인생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에요. 극도의 열등감 속에 있었지만 이런 자기 인식이 단순히 자기 비하는 아니었어요. 진짜 겸손은 죽은 개 같은 나를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은혜가 은혜로 보여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다윗의 은총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신이 죽은 개 같은 존재임을 아는 자만이 왕의 식탁에 앉게 된 은혜에 감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시바처럼 약한 사람을 이용하나요? 아니면 마길처럼 계산 없이 사람을 품어주나요? 죽은 개 같은 나를 아는 겸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곳간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음에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았음을 회개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가난한 시골에서 상경해 대학을 다닌 저는 친구들이 유흥을 즐기며 지낼 때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사지 않았어요. 어떤 사치도 누릴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 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했어요. 제 믿음의 수준을 아신 하나님은 매번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저의 곳간을 채워주셨어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유학 중 글로벌 금융위기로 등록금 납부가 어려울 때는 아시아 지역 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납부 유예 제도를 통해 학업을 이어가게 하셨지요. 그러나 정작 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깨끗한 일회용 비닐을 다시 쓰지 않고 버린다며 아내를 정죄하고 부모님께 여유 자금이 생겼다며 매달 드리던 용돈을 끊어 마음을 아프시게 했어요. 7절 말씀에서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그에게 사울의 모든 밭을 주고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고 하며 아들처럼 대우하지요. 이렇게 자기 정적의 후손에게까지 은총을 베푸는 다윗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재물을 마치 내 것인 양 쌓아두려는 제 모습을 보게 돼요. 사울의 종 시바처럼 물질 앞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하나님이 아닌 물질로부터 안정감을 얻으려 하는 저의 죄를 회개해요. 이제는 제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힘든 지체들에게 저의 물질과 마음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을게요. 저의 적용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물질로 교회 소그룹 지체들을 섬기겠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의 씀씀이를 탓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흘려보내고자 므비보셋을 먼저 찾아갔어요. 오늘 간증하신 성도님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께 신묘막측한 은혜를 수없이 받으면서도 정작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게 그 은총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지요. 물질을 의지하며 시바처럼 주인 행세를 하고 사랑도 계산하고 내 것처럼 움켜쥐려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다시 은혜를 흘려보내는 자리로 부르십니다. 내가 죽은 개 같은 존재임을 아는 겸손이 있을 때 비로소 은혜가 은혜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누군가 먼저 찾아가고 조건이 아니라 은혜로 사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저희를 먼저 찾아와주시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왕의 식탁으로 초대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받은 은혜를 잊고 시바처럼 물질과 조건을 붙들며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므비보셋처럼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은혜를 늘 고백하며 가길 원합니다. 또한 마길처럼 계산 없이 한 영혼을 품고 섬기길 원합니다. 오늘도 받은 은총을 잊지 않게 하시고 조건이 아니라 은혜로 사람을 바라보며 먼저 찾아가 사랑을 베푸는 저희의 인생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