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인생 70년은 아버지는 4대째 믿음의 가정으로, 어머니는 유교집안에서 결혼하여 당대신앙의 모태신앙으로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의 인생의 연속이였습니다.우리들교회를 와서도 그 이유를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내려오는 해석을 하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둘째 딸로 태어나 또 딸이라는 할아버지의 거절로 인해 믿음없는 어머니는 시집살이의 힘드심과 아버지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장로님이셨지만, 가족에게는 무관심하셔 불만이신 아버지의 성품과 외모가 가장 닮았다는 이유로 평생에 화풀이 대상이 되었고, 가난한 집에서 월등한 미모와 세상 공부를 잘하는 언니와 S대 그것도 전액 장학생과 S기업에서 용돈까지 받아가며 치과 의사가 된 남동생에 비해, 보잘 것없는 외모와 열등한 성적으로 제가 자란 모교회에서 새로오신 교인들조차 부모님의 자녀인 것을 모를 정도로 존재감 없이 자랐으며, 초등학생 때도 모친의 비위를 거스릴 때마다 이유도 모른 채 대문 밖으로 쫓겨나 밤새도록 두려움에 떨기를 수없이 해야만 했고, 수없는 매질을 견뎌야 했으며, 등록금은 한 번도 제때에 내지 못하여 학교에서 쫓겨다녀야만 하는 학창시절도 모자라 5살 때 부터 수술을 반복하며 급기야 40대에 직장에서 쓰러져 투석과 이식을 받아야만 하여 급기야 철밥통인 직장을 내려놓게 하시니, 제가 한 것이라곤 각종 헌금들과 학교와 직장과 집과 교회 밖에 이탈한 것이 없는 바리새인 같이 율법적인 저는 하나님은 저어겐 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들과, 기복신앙에 쩔어살며 원망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여러 교회들을 거쳐서 우리들교회에 와서는 '내 죄를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 숨이 막혔으며, 지금까지도 입퇴원을 반복하고, 인간 관계도 스스로 피해의식으로 구속사적인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이 해석이 안 되는 믿음없는 저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이슬비에 바위가 뚫려가는 것처럼 비록 아주 더디가고 있지만, 해석이 되어가고 있음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