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7:1-9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1)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 위대한 이름 ♱
하나님 아버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이름이 가장 위대한 이름임을 알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위대한 이름을 얻는 성도는 첫째, 평안할 때에도 영적인 일에 힘씁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라고 해요. 다윗은 사울을 피해 험난한 광야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은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찔러 주신 하나님 덕분에 왕궁에서 평안히 사는 은혜를 누리고 있어요. 하지만 광야에서 받은 훈련이 있기에 평안한 그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2절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라고 하지요. 잠깐의 육적인 쉼은 영적 도약을 위해 주신 것인데 우리는 그 자리에 안주해 버릴 때가 많지요. 그런데 다윗은 달랐어요. 자신은 화려한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사실에 송구해합니다. 환난 때 부르짖던 하나님을 평안할 때도 그대로 기억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 좋은 생각을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선지자 나단에게 묻습니다. 다윗은 시기마다 훌륭한 믿음의 인물들 곁에 있었어요. 사무엘, 요나단, 갓, 나단이 바로 그들이지요. 다윗은 특히 나단의 나이가 자기보다 어림에도 그를 신뢰했습니다. 다윗이 그들을 곁에 두며 신뢰한 덕분에 사울과 요압 같은 어려운 사람들과도 같이 갈 수 있었던 거예요.
3절에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고 해요. 그런데 나단도 사람이에요. 다윗의 좋은 의견에 그냥 동조해 줍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어떤 사람도 심지어 목사도 잘못 결정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조언을 구하고 받되 내가 말씀으로 인도받고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누구를 탓하기보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나아가야 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힘들 때만 주님을 찾다가 살만해지면 금세 잊어버리지는 않나요? 다윗처럼 평안할 때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까? 당연해 보이는 작은 일이라도 공동체와 영적 지도자에게 묻고 행하나요?
위대한 이름을 얻는 성도는 둘째, 거절로 주신 약속을 굳게 붙듭니다.
4절에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라고 해요. 하나님은 다윗에게 직접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 굳이 나단을 통해서 말씀하세요. 다윗의 그 믿음은 인정하시지만 나단이 잘못 답변한 부분을 바로잡아 주시는 거예요. 동시에 다윗에게도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5절에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라고 해요. 여기서 ‘내 종 다윗’이라는 호칭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실 때 부르시는 표현이에요. 훗날 다윗이 범죄했을 때는 그냥 ‘다윗’이라고만 호칭하시지요.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은 다윗을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또 6절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화려한 외적 섬김보다 내적 섬김을 더 원하신다는 거예요. 다윗의 열정으로 보아 이미 만들어 놓은 장막도 웅장하게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미 광야 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적 성전을 잘 지어오고 있었기에 가시적인 성전을 짓는 수고까지는 안 해도 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고난 없는 솔로몬은 화려한 육의 성전을 짓느라 일평생 수고하지요. 역할이 다른 거예요. 우리도 그래요. 화려한 외적 사역에 골몰하느라 정작 내적 성전이 무너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내 안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성전입니다.
8절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라고 해요. 이제 17절까지 다윗 언약이 쭉 기록됩니다. 주님은 먼저 양을 따르던 자리에서 다윗을 데려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그 빈들의 양치기 소년을 기억해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9절에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고 하세요.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며 대적을 멸하시고 그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거예요. 이렇듯 내적 성전을 잘 지은 사람, 영혼 구원을 위해 사는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이 위대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위대한 이름을 얻는 비결이에요. 적용해 보세요.
♱ 선한 동기와 목적이라도 공동체에서 거절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나요? 화려한 외적 사역에 골몰하느라 내적 성전이 무너지진 않았나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욕심을 따라 기도하며 방황하다 고난 가운데서 욕심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때에 순종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당대 신앙인인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드리며 이스라엘 통일 왕국 시절과 같은 평안함을 누렸어요. 그러다 직장의 교대 근무로 주일 성수를 온전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무척 괴로웠죠.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는 기회였고 관리직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저는 20여 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는 곳을 구하기로 했어요. 그러나 이후 제 생각과 맞지 않는 사장과 근무 여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교만까지 더해져 6개월을 못 넘기고 이직하기를 반복했어요. 그런 와중에 교회 소그룹 리더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언젠가 딱 맞는 직장을 주시겠지’하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기도했지요. 계속되는 방황과 경제적 고난 속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서야 비로소 제 뜻을 꺾고 하나님의 때를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한 달 만에 저를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게 해 주셨어요. 장애인들을 향한 저의 인식도 바꿔주셔서 그들 또한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는 지체임을 인정하게 하셨지요. 이제는 숨겨진 저의 죄를 하나씩 꺼내보면서 지난날 하나님을 불신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있어요. 믿는 성도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저의 일상을 마주할 때면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는 교회 공동체에 사소한 것도 묻고 나누며 가기를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직장의 믿는 동료들에게 말씀으로 살아난 저의 간증을 지혜롭게 나누겠습니다. 교회에서 계획한 국내 선교사역에 전심으로 참여하고 기도로 준비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백향목 궁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궤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내 종 다윗’이라 부르시며 그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윗이 위대해진 비결은 외적 성전을 거창하게 지어서가 아니에요. 빈들에서 양치던 시절부터 자신의 내적 성전을 잘 지어왔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선한 계획을 거절하시기도 하지만 그 거절 속에 더 크고 영원한 약속을 담아주십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의 꿈은 거절 당했지만 그 자손을 통해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는 약속을 받았듯이 말이에요. 내 안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성전이 더 중요함을 꼭 기억하시길 바라요. 오늘도 평안한 자리에서 더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며 거절 속에서도 약속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환난 중에는 부르짖다가도 평안해지면 금세 주님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저입니다. 다윗이 백향목 궁의 평안 속에서도 휘장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궤를 생각했듯이 저희도 잠깐의 육적 쉼을 영적 도약의 기회로 삼기를 원합니다. 좋은 동기와 마음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반드시 공동체와 영적 지도자에게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화려한 외적 성전에 골몰하기보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성전을 잘 지어가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영혼 구원의 사명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이 위대하게 하시는 이름을 얻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