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3:35-4:4
3: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이르되 만일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모든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36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37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38 왕이 그의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4: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3 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
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 내가 오늘 약하여서 ♱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의 약함을 주님 앞에서 고백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약함을 고백하는 인생은 첫째, 어렵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5절에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이르되 만일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모든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라고 해요.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합니다. 슬픔에는 행위가 따라야 하기에 다윗이 직접 금식하는 거예요. 언제나 지도자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참 힘든 인생이지요.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백성이 어떻게 합니까?
36절에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라고 하지요. 지도자의 순수함과 본이 되는 행동은 이처럼 백성을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백성이 이처럼 기뻐한 이유가 무엇이죠? 37절에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고 합니다. 백성 중에는 다윗의 사주로 아브넬이 요압에게 죽임당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다윗이 진심으로 슬퍼하자 그런 오해가 벗겨진 것이죠. 다윗이 아닌 요압의 단독 행동이었음이 드러나자 다윗을 향한 백성의 신뢰도가 더욱 높아진 거예요. 다윗이 직접 변명하지 않아도 그의 행동이 모든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38절에서 다윗은 그의 심복에게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해요. 자신을 대적한 아브넬을 큰 인물로 회고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그릇입니다. 그리고 39절에는 다윗의 아주 놀라운 고백이 이어집니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라고 하지요. 그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했어요. 요압은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데리고 있기도 힘든 인물이에요. 왕권을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요압의 대적인 아브넬마저 죽은 지금 다윗은 요압을 어찌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요압을 데리고 갑니다. 늘 긴장하며 사람을 데리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다윗은 자기 힘으로 처리하려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갚으실지로다’ 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도 그래요. 내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때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슬픔이나 회개에 합당한 행위가 따르고 있습니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을 내 힘으로 처리하려고 하나요? 하나님께 맡기나요?
약함을 고백하는 인생은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4장 1절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고 해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하나님은 계속 보여 주십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횡포에 시달렸으면서도 그가 죽었다 하니 도리어 맥이 풀려요. 실력은 없고 아브넬 덕분에 호강하면서도 정작 아브넬을 인정하기는 싫었던 거예요. 진작 아브넬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다윗을 인정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나를 도와주던 사람을 평소에는 인정하기 싫어하다가 그 사람이 떠나면 힘이 빠져 어쩔 줄을 모르지요.
2절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고 해요. 여기서 이스보셋에게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칭호가 없어요. 그저 사울의 아들이라고만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그에게는 베냐민 지파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바아나와 레갑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들은 2장 8절의 군장 아브넬과는 차원이 달라요. 소수민족의 작은 부대를 이끌던 자들이지요. 결국 이스보셋의 처지가 어떠합니까? 아브넬도 죽고 부하들도 소수민족의 소수그룹 대장이 전부고 하나 있는 조카 므비보셋도 다리를 저는 장애인입니다. 사울 집안은 어쩌지 못하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어요.
4절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고 합니다. 그가 5살 때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가다가 떨어뜨려서 다리를 절게 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 일이 그저 불행입니까? 사실 므비보셋에게는 이 일이 일생일대의 축복이 되었어요. 하나님의 작정은 예수님이 디자인하시고 성령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다리를 절게 된 그 사건이 결국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어요. 만약 므비보셋이 건강한 왕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치적 위협이 되어 일찍이 제거되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다리를 절게 되어 정치적으로 위협 요소가 없으니 도리어 살아남아 훗날 다윗의 사랑까지 받게 됩니다. 사울에게는 요나단 같은 아들도 있었지만 이스보셋도 있었지요. 다른 아들 아비나답, 말기수아는 이미 길보아에서 죽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므비보셋만은 살아남았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려서 자기 힘이 적었기에 도리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세상은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사용해 그분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내 약함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인 거예요. 적용해 보세요.
♱ 내 힘과 세상의 방식으로 내 왕국을 세우려 하지는 않나요? 나의 부족함과 약함에 열등감을 느끼나요? 아니면 그것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나요?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큐티하고 말씀을 묵상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일곱 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은 원래 왕자였지만 두 다리를 절고 불편했어요. 저는 잘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하지만 연약한 므비보셋처럼 축구도 공부도 큐티도 숙제도 잘못해서 속상할 때가 있죠. 그래서 잘난 척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아서 큐티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게 좋아요. 부족한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왕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먹고 마시게 해주시니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제가 하나님 자녀라는 걸 기억하고 매일 아침 기쁘게 큐티할게요’입니다.”
자신을 혼낸 아빠를 미워했지만, 므비보셋을 돌보아주신 하나님께 자신도 돌보아주시길 기도하며 자기 잘못을 돌아보겠다는 5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거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어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신 아빠는 ‘다 놀았으면 장난감 치워야지’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저는 장난감을 정리하는 게 싫어서 못 들은 척하다가 아빠에게 혼났어요. 므비보셋은 자기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가족을 잃고 다치기까지 했대요. 그런데 저는 제가 잘못해 놓고도 저를 혼낸 아빠를 미워했어요. 앞으로는 제 잘못을 인정하고 므비보셋을 돌봐주신 하나님께 저도 돌봐주시길 기도할래요. 저의 적용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저를 돌보아주시길 기도할게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왕이 되었음에도 ‘내가 오늘 약하여서’ 하며 자기 약함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함을 하나님께 맡겼어요. 므비보셋도 그래요. 다리를 절뚝거리는 그 약함이 도리어 그를 살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통로가 되었지요. 이렇듯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해 일하시고 부족한 자를 사용하셔서 그분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내 약함과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할게요.
주님, 다윗처럼 ‘내가 오늘 약하여서’라고 솔직히 고백하지 못하고 강한 척, 잘난 척, 다 아는 척하며 살아가는 저희입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람과 환경 앞에서 내가 직접 처리하려 들지 않고 ‘여호와께서 갚으실지로다’ 고백하며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의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려서부터 큐티하며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의 자녀들을 붙들어 주시고 이들이 평생 하나님 자체를 상급으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