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3:20-27
20 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 뜻을 알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첫째, 기회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20절에 ‘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고 해요. 아브넬은 부하 20명을 데리고 직접 헤브론으로 찾아와 다윗을 만납니다. 어제 본문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아브넬이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라며 언약을 맺고자 하지요. 그러자 다윗은 좋다며 나를 보러 올 때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명하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죠? 이스보셋이 사울의 첩을 범한 아브넬을 책망하자 이에 분개한 아브넬이 사울 집안을 배신한 거예요. 아브넬이 얼마나 기회주의자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울은 이런 아브넬을 분별하지 못해 평생 끼고 돌았어요. 그는 사울에게 충성을 다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에 맞게 움직인 것일 뿐이에요. 그러니 충신이 아닌 거예요. 그런 아브넬이 찾아온 일은 분명 다윗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다윗의 약함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넬의 명하여 데려오라고 요청한 미갈을 지금 눈앞에 마주해요. 그러자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는 아브넬을 위해 잔치를 배설하고 21절에 보니 그를 평안히 보냅니다. 아브넬이 당장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같으니 그를 이용한 것이죠. 다윗이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여자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니 이렇게 아브넬을 통해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이것이 곧 다윗의 기회주의예요.
그런데 저에게도 이런 기회주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잘 참는 편이어서 화내는 사람보다 제 유익을 구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인내해서 뜻을 잘 정한 줄 알았는데 실상은 내가 살아야 하니까 참을 수밖에 없어서 참았던 거예요. 그리고 이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서 "나는 참았는데 너는 왜 못 참냐?" 하며 옆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윗처럼 그리고 아브넬처럼 얼마나 기회주의자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얼마나 처신을 잘했으면 피아노도 돈 없이 배우고 예고 강사까지 했겠나 싶어요. 장학금을 받으려고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았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큐티하면서 저의 기회주의를 깨닫고 얼마나 회개하며 울었는지 몰라요. 이렇게 말씀으로 내 모습이 보여야 하나님 뜻을 바르게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 모습은 다윗 같나요? 아브넬 같나요? 여러분의 기회주의는 어디까지입니까? 욕심 때문에 분별하지 못한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둘째, 심복의 배반을 처리해야 합니다.
23절에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라고 해요. 다윗이 아브넬을 평안히 보냈다는 사실을 요압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24절에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하고 분노하며 항의합니다. 그리고 25절에 보니 그는 악의에 차서 다윗 왕에게 아브넬에 대해 악담한 후 26절에 사자를 보내어 다윗 왕 몰래 아브넬을 다시 데려오게 하지요.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27절에서 요압은 다윗 몰래 아브넬을 죽이는 데까지 이릅니다. 이는 자기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향한 원수 갚음에 더해 아브넬이 다윗과 화해하고 함께 통일 왕국을 이룰 경우 자기 위치가 아브넬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한 정치적 야망도 함께 작용했겠지요. 독립공신 요압이 이렇게 다윗의 뒤통수를 칩니다. 이리도 원한과 야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심복으로서는 또 너무나 일을 잘하는 거예요. 기가 막힌 것은 다윗이 이런 요압을 버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 한 사람 원한을 잘못 샀다가 나라가 망하는 수가 있으니 그가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아브넬이 이 한 사람 때문에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요압의 악함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약함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약함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회개하는 일뿐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악함을 알면서도 같이 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나를 배신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나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약함은 무엇인가요?
교만하게 살다가 사고로 남편이 먼저 소천한 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모태신앙인인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야 세상에서도 잘 먹고 잘산다는 기복 신앙이 있었어요. 그러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와 가출을 겪으면서 내 인생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공해서 아버지에게 복수하려 했어요. 자기 야망을 이루려고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넘긴 아브넬처럼 저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고자 왕복 출퇴근 5시간에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사람을 의지하는 제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큐티하는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드리며 인내하니 말씀이 들려 아버지 때문에 고생한다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 그동안 온몸으로 아버지를 무시한 죄를 보고 회개할 수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출근길에 신호 위반으로 달려오던 차에 치인 후 1년 넘게 중환자로 지내다가 천국에 갔어요. 이 사건으로 저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죠. 그리고 믿는 남편과 결혼해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한 저의 깊은 죄를 보게 되었어요. 요압처럼 하나님보다 앞선 열심으로 남편과 자녀를 내 마음대로 하려 한 죄악도 회개했습니다. 겸손할 수 없던 저에게 과부의 환경을 허락하셔서 참된 남편이신 예수님을 만나 평안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려요. 자녀들도 아빠의 죽음을 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허락하신 일로 해석하고 참된 아버지이신 주님을 붙잡길 소망합니다. 저의 적용은 ‘자녀들과 매일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나누겠습니다. 최근 남편의 소천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체에게 안부 전화를 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도 아브넬도 요압도 모두 기회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이 한마디가 오늘의 핵심이에요. 다윗이 자기 죄를 보지 못하니 요압의 악함도 처리하지 못했고 결국 아브넬이 개죽음을 당했어요. 우리도 그래요. 내 기회주의를 보지 못하면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해요. 내 안에 기회주의가 보이고 내 약함이 인정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내 죄를 보고 회개하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약함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우리 안에 욕심이 너무 많아 아브넬의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우리 역시 아브넬 같은 기회주의자임을 보게 됩니다. 선으로 행한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 이면에 저희의 이기적인 욕심이 있었고 그 욕심으로 상대를 이용하며 다치게 한 적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모습을 깨닫게 해주신 것도 은혜지만 이제 진정한 회개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 손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사람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며 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든 구원을 위해 결정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라도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