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1-16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인정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인정하는 사람은 첫째, 거룩한 슬픔에 잠깁니다.
어제부터 사무엘하 묵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사울이 죽은 후 한 아말렉 청년이 다윗을 찾아와 자기가 사울을 죽였다며 왕관과 고리를 내보이는 장면이 나오지요. 다윗은 오랫동안 자신을 핍박하던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인간적으로 '잘 됐다. 속 시원하네.' 뭐 이런 반응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11절, 12절에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고 해요. 지금 다윗과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과 함께 열다섯 광야를 건너며 환난당하고 원통한 일을 겪고 비천함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받을 때 옆에서 그 자리를 지킨 자들이에요. 그럼에도 ‘잘 죽었다’ 말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함께 슬퍼합니다. 바로 이것이 거룩한 슬픔이에요.
다윗은 광야 훈련 속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에게 사울은 단순한 원수가 아니었지요. 사울은 핍박하는 역할을 했고 요나단은 사랑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하나님이 이 둘을 모두 자신에게 붙여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사울이 없었다면 다윗이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기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는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것을 끝까지 기억했어요. 그러므로 사울이 죽었다는 것은 다윗에게 있어 자기 나라가 블레셋에 의해 무너졌다는 뜻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이렇듯 자신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아픔을 먼저 생각했기에 다윗은 거룩한 슬픔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사울이 무너졌을 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만 느낀다면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은 거예요.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 그가 나의 구원을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했는지 깨닫고 고백하게 될 때 비로소 다윗처럼 거룩한 슬픔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이 고난 당한다면, 내 마음이 어떨 것 같나요? 고소하다고 생각할 것 같나요? 안타까움과 긍휼의 마음이 느껴질 것 같나요?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인정하는 사람은 둘째, 하나님의 원칙을 지킵니다.
다윗의 거룩한 슬픔은 그저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목적으로 사울의 죽음을 전한 그 아말렉 청년을 단호히 처단합니다. 앞서 이 청년은 사울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그를 죽였다고 말했지만, 다윗은 14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물어요. 바로 이것이 공의 즉 공과 사를 구별하는 거룩한 적용이에요. 인간적으로 보면 아말렉 청년은 다윗에게 사울의 면류관과 팔찌를 가져다준 은인일 수 있어요. 하지만 다윗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만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유익보다 하나님의 원칙을 우선했어요.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공적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죠.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게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의 핵심은 원칙을 지키는 데 있어요.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원칙을 어겼다면 단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했더라도 하나님이 나의 훈련을 위해 원칙 안에서 품어야 해요. 사울을 보세요. 자기 지역 사람들만 편애하고 아첨꾼들만 곁에 두다 보니 그가 죽을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원칙을 지켰기에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조차 수많은 백성이 그와 함께 따라갔어요.
우리는 흔히 내 대신 누군가를 욕해주거나 비방해 주는 사람을 내 편이라고 생각하곤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그렇지 않아요. 원수를 함께 욕해주는 사람을 반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것이 거룩한 적용입니다. 가정이나 공동체에 주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을 뒤에서 욕하거나 강조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아말렉의 세력, 즉 기복적인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여야 우리 가정도 공동체도 거룩한 질서를 갖추게 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공과 사를 잘 구분하나요?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라며 혹은 나를 힘들게 했다며 하나님의 원칙을 저버린 적은 없습니까?
사업의 성공으로 죄에 빠져 있다가 힘든 사건이 연이어 찾아와 회개하고 공동체 질서에 순종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3대째 모태신앙인인 저는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대학에 진학했고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지요. 그러다 국전에서 대상을 받고 그때 받은 상금으로 시작한 사업이 벤처 열풍과 맞물려 승승장구하자 교회를 떠나 술과 음란에 빠졌어요. 대학 졸업 전에 사업을 시작하여 대기업과 거래하며 임원들에게 인정받으니 학창 시절의 설움을 보상받는 것 같아 그저 기쁘기만 했지요. 그렇게 인정중독과 옳고 그름의 포로가 되어 의뢰인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어요.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세무 조사, 결혼 실패, 추락 사고 등 저의 해달 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연이어 찾아왔어요. 그렇게 무너진 저는 자기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한 다윗처럼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십 년 만에 교회로 돌아와 신앙을 회복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공동체 질서에 순종이 되지 않아 사역자와 소그룹 리더들을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계속 예배를 드리니 인격에 순종하지 말고 역할의 순종하라는 말씀이 들렸어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은 다윗이 이해되었죠. 그제야 교회 소그룹 리더의 권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하며 버릇없이 군 행동들이 16절 말씀처럼 내 피가 내 머리로 돌아오게 하는 큰 죄임을 깨닫고 떨며 회개했어요. 이런 저를 포기하지 않고 소그룹 리더들을 보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너나 잘하세요’가 아니라 ‘저나 잘할게요’라고 겸손히 말하며 제 모습을 돌아보겠습니다. 공동체의 권면에 의심이 생기더라도 제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입니다.”
다윗 왕국의 첫 시작이 사람 분별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다윗이 아말렉 청년을 곁에 두었다면 다윗 왕국은 처음부터 흔들렸을 거예요. 우리의 가정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통해 날마다 질문하며 사람을 분별하는 훈련이 쌓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세워집니다. 아말렉은 내가 날마다 말씀으로 분별하여 물리쳐야 하고 사울은 하나님이 처리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에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환경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바라보는 것이 곧 구속사의 시각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나의 안위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사람의 인정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는 훈련을 잘 받으시기를 바라요. 그리할 때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의 진정한 새 시대가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평생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사울이 죽었어도 다윗은 기뻐하기보다 옷을 찢고 금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힘들게 하는 사람이 고난 당하면 속으로는 마땅하다며 박수를 칩니다. 원칙을 쉽게 저버리는 아말렉 청년 같은 사람이라도 나에게 유익만 준다면 다 받아주며 좋아할 때가 많습니다. 이토록 기복으로 똘똘 뭉친 저희의 욕심을 이제는 말씀으로 끊어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는 믿음도 허락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질서를 세워나가도록 저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각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