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0:1-8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6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7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8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
하나님 아버지, 죄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결단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진정한 소망은 첫째, 내 죄로 통곡할 때 시작됩니다.
오늘 1절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라고 해요. 에스라는 백성의 죄를 듣고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합니다. 진실로 사랑하면 이렇게 됩니다. 남의 죄를 보고 분노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로 여기며 통곡하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고 해요. 에스라 한 사람의 회개가 공동체 전체의 회개를 이끌어낸 것이죠. 여러분 공동체가 회복되려면 이렇게 누군가가 먼저 엎드려야 합니다. 내가 먼저 죄를 보고 통곡하면 내 옆에 있는 한 사람도 자기 죄를 보게 되는 공동체의 회개로 이어집니다. 눈물의 회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에요. 상한 심령으로 돌이키는 역사입니다.
그러자 2절에서 스가냐가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고 고백해요. 죄를 인정했는데도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어서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기에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라고 합니다. 말씀이 들렸다는 것이지요. 들었으면 행해야 합니다. 소망은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 내 죄를 보고 통곡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죄를 내 죄로 여기며 애통하나요?
진정한 소망은 둘째, 말씀대로 결단할 때 완성됩니다.
3절에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는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결단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단한 것이 무엇이죠? 이방 아내와 그 자녀를 내보내는 것이에요. 가장 끊기 어려운 것이 가족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앞서는 것이라면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소속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세상에 속한 자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4절에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라고 해요. 말씀 사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도와야 해요. 한 사람이 결단할 때 공동체가 함께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세워주고 도와주는 공동체가 참된 교회입니다.
5절에 보니 에스라가 바로 일어나 행동해요. 자원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지체하지 않고 결단하게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미루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다음에 해야지 내일부터 해야지’하면 사탄의 밥이 되기 십상이에요. 차차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다음에’입니다.
6절에 보니 에스라는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의 죄를 자기 죄로 여기며 근심하여 금식합니다. 이것은 억지로 하는 금식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금식이에요.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파 본 사람이 이렇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포로 생활이라는 근본적인 고난을 경험했기에 에스라는 이토록 깊이 애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7절과 8절에 보니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되 3일 내에 오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쫓아내겠다고 공포합니다. 아주 강력한 결단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3일이라는 시간을 줍니다. 이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해요. 하나님은 회개를 요구하시지만 돌아올 시간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끝내 거부하면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기다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기회가 열려 있을 때 속히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회개를 결단으로 이어가고 있나요? 말씀대로 살고자 끊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와 함께 결단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자존심과 열등감 때문에 마음이 막혀 남 탓을 하고 변명을 늘어놓던 모습에서 돌이켜 회개하길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를 할 때마다 창피했어요. 당시 아버지의 외도와 사업 부도로 부모님은 별거하시고 가정 형편도 몹시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거짓말하거나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그럴수록 열등감만 더해져 자존심이 상했지요. 어느덧 제 나이 이순(60세)이 되었지만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저는 여전히 자존심, 열등감과 동고동락하고 있어요. 지난해 있었던 일이에요. 에어컨이 고장 나 에어컨을 꺼도 바람 통로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직접 소파를 딛고 올라가 닫으려다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놀라서 괜찮냐고 묻는 아내에게 저는 짜증이 나서 ‘당신 때문에 그렇잖아’라고 투덜거렸어요. 그러자 아내는 ‘이것도 내 탓이야?’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요. 넘어진 건 분명 제 잘못인데 아내가 에어컨 두 대를 켜놔서 벌어진 일이라고 아내를 탓한 거예요. 12년 전 저는 아내의 인도로 큐티하는 공동체에 속했어요. 이후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실 때마다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일어서서 다짐하지만 에어컨 사건처럼 여전히 자존심이 상하거나 열등감이 자극되면 꼬인 마음으로 상대를 공격하곤 해요. 제가 100% 죄인임을 자복하지 못하니 저의 죄를 애통히 여기며 통곡하지도 못해요. 제 상처가 겸손한 환경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상한 심령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아내를 탓하지 않고 무언가 결정해야 할 때 아내의 의견을 구하겠습니다. 한 주간 아내를 지적하고 정죄한 일을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나누며 회개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라의 눈물은 단순히 한 사람의 감정으로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살리는 회개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소망이 열리고 그 소망은 말씀대로 결단할 때 완성됩니다. 다시 말해 소망은 환경이 바뀌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보고 통곡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말씀대로 끊어야 할 것을 끊고 순종으로 나아갈 때 현실이 됩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내 죄를 보고 애통하며 말씀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요. 나 사람의 회개와 순종을 통해 우리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나는 은혜를 부어주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죄를 보고도 무덤덤하게 지나가고 남 탓, 환경 탓만 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에스라처럼 엎드려 울며 기도하지는 못할 망정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며 ‘억울하다’만 부르짖는 저희의 완악함도 있습니다. 이제는 말씀 앞에서 우리의 죄를 보길 원합니다. 남의 죄가 아니라 내 죄로 여기며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상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아가 진실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저희가 되길 원해요. ‘우리가 범죄하였으나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는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죄가 많은 곳에 도리어 은혜가 넘치게 하시는 주님의 언약을 믿게 도와주시옵소서. 감정적인 회개로 끝나지 않고 말씀대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지도록 이제는 끊어야 할 것을 끊고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나 한 사람의 회개를 기뻐 받으시는 주님, 나의 회개를 통해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우리 가운데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