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런 드라마를 봐야한다고… 어떤 목자님이 얘기해 주신 덕에 1.2배속 보기로 분석을 하고 미장원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어머… 그랬구나… 그거였구나…
구속사로, 김양재 목사님 소개로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원장님은 내
머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다듬으려던 것뿐이었는데, 40년만에 20센티가 넘도록 잘려져 나간 것입니다.
같은 작가의 드라마라고 해서 4화까지밖에 안 나온 드라마를 드문드문
찾아봤습니다. 작가에 대해서도 살펴보니… 그때는 내가 구속사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내 맘대로 해석했구나. 꿈보다 해몽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vs 나는 자신의 무가치함에
순종하고 있다>
60년이 넘게 각종 알러지와 싸우고 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알러지 검사를 했더니 모르는 알러지가 튀어나왔습니다. 동물
털 알러지입니다.
우리 엄마는 갓난아이 때부터 나를 개 등에 묶어놓고 키우셨습니다. 동네에
심방 예배를 따라다니실 때 예배에 방해가 되기에 그랬다고는 하는데… 4살까지 등에 업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덕에 만성비염에 편도선염을 달고 살았던 것인데, 알러지라는 진단명도
없던 시절에 코찔찔이라고 놀림받는 것이 얼마나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던지.
그렇게라도 밟아주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구속사를 깨닫기 전에 내가 이 알러지를 알았다면 안 그래도 미워하는 엄마를
얼마나 더 미워하고 원망했을까요!
유모였고 보디가드였으며 내 이름을 대신하여 불리던 개 베리야(대상7:23-재앙 중에 태어난 자)는, 내가
여덟 살 되던 해, 동네 사람들이 내 손에 쥐여 준 쥐약 넣은 크림빵을 먹고 내 무릎 위에서 죽어갔습니다. 그 기억으로 오랫동안 개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신묘막측하신 분이 맞습니다.
그 크림빵에 쥐약이 들어간 것과, 그걸 준 사람이 누군지도, 그 이후 베리야의 내장을 씻어내고 끓여먹은 사람들도 기억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냥 절절하게 죽어간 장면만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며 개 등에 나를 업혀야만 했던 엄마의 상황도 해석하게 될 즈음, 개 나이 여덟 살이면 이미 많이 늙은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될 즈음, 그리하여
그때 그 사람들은 무사하기는 했을까 생각해보게 될 즈음에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장로가 되어 전도를 위해 고기를 사주지는 못할 망정 죽은 개를 먹겠다는데 그걸 어찌 막느냐고 하던 아버지를 평생
미워하면서도 말 한 마디 못 했었는데, 착한 게 악한 것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의 나도 16절 엘리에셀(하나님은 도움이시다)과
스마야(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하나님이 말씀으로 먼저 불러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려달라는 기도를 해 본 것 같지를 않습니다. 내
베리야 살려주세요! 하고 부르짖었던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던 까닭입니다.
지금은 새벽 예배의 자리에 나갈 때면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가 절로
나오게 하시니, 이게 얼마나 큰 은혜이고 나 같은 죄인을 20절
느디님(주어진 자들, 바쳐진 자들)으로 사용해 주신 선한 손의 도우심임을 경험하며 갑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내 기도에 한 번도 응답하지 않으신 적이 없고, 그
어린 시절의 기도에도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신 것이었음을 이제 와서 깨닫습니다. 내 손에
쥐어 준 그 빵에 쥐약이 든 걸 그 때 기억했다면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내가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서 살 수도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도 어린 시절에 당한 고난이 많았다고, 늘 위로의 말씀으로 붙잡았지만, 말씀 어디를 보아도 다윗은 원망으로 나아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사건마다 부모 탓, 형제 탓, 환경 탓, 윗 질서 탓, 구조를 탓하면서 입으로는 개척정신을 말하고 주신 지혜로
개혁하라는 것이 아니냐며 합리화를 시키고 무가치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억울하게 당했다고 하던 고난마다 하나님이 값을 물으시는 사건이었음도 이제와 너무너무 해석이 됩니다.
지금은 수십가지의 알러지에도 순종해 보는 중입니다. 꽃 보러 나가는
건 무조건 자제해야 합니다. 철쭉이 피기 시작하면 스테로이드로 끝을 내야하기에 아예 안 나가기. 그래서 마스크 쓰고 교회와 집만 오가고 있는데, 냉장고 파먹기로
적용하다가 드디어 갈등의 순간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값을 물으심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건을 함께 한 막내 이모가 이번 주일 예배에 세번째로 참석하기로 하셨습니다. 엄마에게도 말하기 싫은 수치의 사건에서 멀리 경상도까지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던 이모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다른 이모가 연락하려니 했는데 서로 연락들을
안 해서 위로예배에 참석도 못하고는 원망과 분노를 쏟아놓던 이모는 나 혼자라는 걸 아셔서 관 들어줄 사람 없을까 봐 새벽에 우리들교회 부목사님이
오셨더라는 말에 감동도 받고, 매일 구속사의 말씀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리스바 회개를 하라고 말씀해주신 지 10년이 지나서야
그게 무슨 말씀인지 깨닫습니다. 그 사이 친가에서 동역자를 붙여 주시고, 에스라 말씀을 묵상하는 이 때에 외가에서도 동역자를 붙여 주시려고 막내 이모를 보내 주시니, 45년을 회개하고 또 회개했던 낙태의 죄와 불신결혼과 이혼의 죄를 또 다시 주님 앞에 자복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게 하신 이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선포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고백하면서, 내가 주님을 몰라서 십자가는 버리고 영광만 취하려
했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여호와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나와 내 가정과 내 가문이 돌이키고 살아나게 하시옵소서. 말씀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시옵소서.
나보다 열 배 백 배 잘 사는 이모를 위해 장을 보고 반찬을 준비합니다. 백화점
김치에 백화점표 반찬을 사먹는 이모지만, 내가 담근 석박지에 반찬 한 두가지, 목장 섬기던 마음을 담습니다.
나에게서 끊어진 친가 6대 외가 5대의
내 자녀, 낙심하고 절망 중에 있는 나의 4촌뿐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있는 7대 8대까지도 13절 아도니감(나의 주가 일어나셨다)
자손처럼 강에서 바다로 흘러 넘치는 구속사의 말씀이 닿게 하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