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8:1-14
1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2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3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백오십 명이요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5 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삼백 명이요
6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오십 명이요
7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요
8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팔십 명이요
9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십팔 명이요
10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육십 명이요
11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십팔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십 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육십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
♱ 올라온 자들 ♱
하나님 아버지,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자들처럼 저희도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올라온 자들처럼 살려면 첫째, 함께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 1절에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고 해요. 이 말씀은 2차 귀환자들의 계보를 소개하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이 ‘나와 함께’입니다. 에스라는 혼자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과 함께 올라간 것이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약 1,200km 이상 되는 거리이고 도보로 수개월이 걸리는 여정이에요. 도적을 만날 위험도 있고 되돌아간다 해도 삶의 기반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길을 혼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함께 갈 사람들을 붙여주십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계보입니다. 왜 굳이 이름과 가문을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누구의 자손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70년 동안 믿음의 혈통을 지켜 왔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정체성에 좌우됩니다. 바벨론에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 되는 것이고 예루살렘에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면 바벨론과 다를 바 없어요. 또한 말씀이 부흥하고 그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일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 즉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은 혼자 버티는 길이 아니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지금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공동체와 함께 갑니까? 아니면 혼자 신앙생활을 합니까? 지금 어떤 정체성으로 살고 있나요?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나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나요?
올라온 자들처럼 살려면 둘째, 믿음의 혈통을 지켜야 합니다.
2절에서 14절까지에는 돌아온 자손들의 계보가 기록됩니다. 이름과 숫자가 계속 반복되기에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어요. 먼저 비느하스 자손과 이다말 자손처럼 제사장 계열이 먼저 언급됩니다. 왜 그렇죠? 에스라는 이 귀환의 목적이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예배와 말씀을 회복하는 것임을 알았던 거예요. 눈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진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신앙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세워져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우리도 가정과 공동체에서 무너진 것 같은 사건을 겪을 수 있죠.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계속 반복되는 ‘자손’이라는 표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누구의 자손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그 이름 하나하나에도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요하나는 ‘여호와께서 은혜를 주신다,’ 미가엘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누구냐’라는 뜻이에요. 이처럼 이들은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혈통을 지키는 삶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보아야 할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바벨론에 남은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오히려 편하고 익숙한 곳이 되어버린 거예요. 70년이나 살았으니 왜 안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신 곳도 가야 할 곳도 예루살렘이잖아요. 아무리 좋은 곳이어도 말씀 때문에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순종이 절로 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완벽할수록 순종하기란 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완전하지 않아도 내가 들은 말씀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그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가정과 공동체에서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세우고 있나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함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외도한 자신에게 먼저 사과하는 아내를 보며 정작 믿음 없고 미련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폭력과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난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어요. 가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책임감 강한 남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모태신앙인이지만 믿음이 없던 저와,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는 결혼 후 제 남동생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어요. 교회에 간 첫날부터 하나님은 찬양 시간에 저를 만나주셨어요. 그러나 교회를 다녀본 적 없는 아내에게 저는 예배가 끝날 때마다 ‘오늘 기억나는 말씀이 뭐야?’라고 다그치듯 물었어요. 그때마다 ‘잘 모르겠다’라고 답하는 아내를 속으로 무시했지요. 그래서 이 일을 부부 소그룹 모임에서 나눴더니 지체들은 ‘아내를 무시하지 말고 집사님이나 믿음 잃지 마세요’라고 말해 주었어요.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유부녀와의 바람 사건으로 저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저는 내연녀와의 새 인생을 꿈꾸며 주위 사람들에게 아내를 문제 많은 사람으로 몰아갔어요. 그리고 매일 술에 취해 ‘게으르고 집안일도 안 하는 너랑은 못 살겠다’하며 아내를 괴롭혔죠. 하지만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위로받은 아내는 저를 비방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동안 가정에 소홀해서 미안해요’라며 1절 말씀처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먼저 올라가는 적용을 했지요. 제 앞에서 한없이 낮아진 아내를 보며 저는 마음을 돌이키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를 아랫사람으로 여기며 무시했지만 정작 믿음 없고 미련한 사람은 바로 저였음을 깨달아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배우자가 최고의 아내임을 믿고 귀히 여길게요. 저의 적용은 ‘아내를 무시하는 말을 삼가고 사랑의 표현을 더 자주 하겠습니다. 소그룹 지체들에게 제 수치를 나누며 제가 얼마나 미련하고 악한지 고백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편한 길이 아니라 믿음의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기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갈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그 공동체를 통해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또한 누구의 자손으로 살 것인가,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날마다 선택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름들은 바벨론 한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낸 사람들의 기록이에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남아 있었지만 올라온 그들은 말씀 때문에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요. 지금 모든 것이 준비되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함께 가는 공동체를 붙들고 예배를 세우며 믿음의 혈통을 이어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내가 붙들고 있는 바벨론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올라감으로 함께 믿음의 길을 걸으며 말씀대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바벨론 같은 세상 속에서도 믿음의 길로 저희를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고 익숙한 바벨론을 떠나지 못하고 말씀보다 환경을 붙들고 살아온 저희입니다. 정체성을 잃고 세상 기준으로 판단하며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게 살아온 저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혼자 버티는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가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고 끝까지 함께 울고 함께 회개하며 함께 순종하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무너진 것 같은 가정과 공동체 가운데서도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바벨론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과감히 내려놓고 완벽하지 않아도 말씀 때문에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의 결단을 하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올라가 믿음의 혈통을 이어가는 인생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