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완공 (에스라 6:9~15)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리오 왕의 모습에 머물게 된다.
그는 성전 재건을 돕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10절)”는 표현을 보면, 그의 태도는 믿음이라기보다 자신의 안위와 유익을 위한 기복적인 마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리오 왕과 같은 기복적인 신앙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이 구절에 머물게 된 것 같다.
21살 때 세례를 받은 나는 청년 시절부터 말씀을 사모하였다.
말씀 속에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보화 같은 말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보다는 설교에 의존하며 하나님을 알아갔다. 이후 자발적으로 큐티를 시작하고 오랜 시간 말씀을 가까이했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기복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14절)’의 말씀 속 ‘형통’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꽂혀,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그것을 나의 자랑처럼 여기려 했던 모습이 있었다. 나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았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을 계기로 한 영혼을 위하여 간절함이 느껴지는 설교를 찾아 밤낮으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던 중 어느 날 아침 알고리즘으로 따라온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는 내게 나팔 소리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김양재 목사님의 오래된 설교까지 찾아 들었고 우리들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이 살아있는 공동체에 속하여 가고 있다. QTn은 갈급한 내 마음을 채워주는 말씀이 되었고, 공동체는 내 안에 죄의 찌꺼기들을 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
지금도 내 안에 기복적인 신앙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의 묵상과 공동체 나눔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이 드러나고 정리되어 가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왜 기복적인 신앙이 죄인지,
왜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마저도 우상이 될 수 있는지,
왜 나의 열심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는지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기보다, 하나님 자체(거룩)를 목적 삼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여전히 과정 가운데 있지만, 말씀으로 나를 비추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적용하기
* 내안의 성전을 완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성전을 짓기 위한 다짐
- 인생의 목적이 거룩임을 기억하기.
- 눈뜨면 QT하는 시간을 우선으로 하는 습관들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