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2:36-58
36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37 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38 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39 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더라
40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41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이십팔 명이요
42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구 명이었더라
43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4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45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46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47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48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49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50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51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2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3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4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55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56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7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 예배를 섬기는 자들 ♱
하나님 아버지, 언제 어디서든 예배를 섬기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배를 섬기는 자가 되려면 첫째, 내 정체성을 기억하고 본토를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전 재건과 예배 회복을 위해 누구보다 가장 먼저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이를 위해 직분별로 귀환한 사람들의 수가 기록되어 있어요. 먼저 제사장이 나오죠.
36절에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라고 해요. 제사장은 여다야, 임멜, 바술, 하림 이렇게 네 가문이 나오는데 총 4,289명에 달합니다. 이 숫자는 전체 귀환자 수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비율이에요. 다윗 시대의 스물네 반열 중에서 네 가문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원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제사장 가문이 포로 생활 중에도 자신들의 직분을 잊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성전이 없는 낯선 이방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거예요. 제사를 드릴 수도 없고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그 어떤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실감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민했겠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제사장으로의 사명감이 더욱 불타올랐을 거예요. 특히나 바스홀 자손은 1,247명으로 가장 많아요. 바스홀이 누군가요? 예레미야 선지자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던 제사장이지요. 그런데 그 후손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고국으로 귀환했다는 것을 볼 때 그들이 회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지자를 핍박한 핍박자의 후손도 이렇게 성전 중수를 위해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도 그래요. 내 부모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짓고 가정과 공동체를 외면했을지라도 오늘 내가 그들의 허물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라도 구원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나를 가정의 제사장으로 성전 중수의 사명자로 우뚝 세워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서 맡겨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내 부모, 조상의 죄와 허물을 딛고 회개함으로 회복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요?
예배를 섬기는 자가 되려면 둘째,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40절에서 42절까지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이십팔 명이요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구 명이었더라’고 해요. 제사장이 4,289명인데 레위인은 고작 74명이에요. 노래하는 자, 문지기를 다 합쳐도 341명에 불과합니다. 제사장 숫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어찌 이렇게 큰 차이가 났을까요?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돕고 노래하고 성전문을 지키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포로로 있는 곳에 성전이 없으니 노래할 성전도 지킬 문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직무가 쓸모없이 느껴졌을 거예요. 제사장은 그나마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정체성을 붙들 수 있었겠지만 레위인들은 일 자체가 사라졌으니 자기 정체성의 뿌리를 상실해 갔어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신앙의 뿌리마저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굳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냐는 마음이 생겼겠죠.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도 점점 희미해졌어요.
우리도 그래요. 환경이 어려워지다 보면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사라지면서 사명감까지도 점점 옅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환경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상황이 어렵고 척박할수록 더욱 선명해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341명의 레위인은 정말 귀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사명 따라 결정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일을 행하십니다. 적용해 보세요.
♱ 환경이 어렵다며 사명을 잊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지는 않습니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묵묵히 충성하고 있나요?
홀로 아이를 키우며 별 인생을 꿈꾸었던 부끄러운 삶을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신 주께 감사드린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불신 가정에서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시느라 늦게 귀가하셨고 어머니는 계모 밑에서 자란 자신을 늘 불쌍히 여기셨어요. 저는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결혼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22살이나 많은 성공한 기업가를 만났어요. 외모와 능력을 갖춘 그가 저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고 미혼 상태로 아이를 낳았어요. 그러나 그는 여성 편력이 있었고 심지어 다른 혼외자도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낙심하여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풍족한 물질과 자녀만 있으면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어요. 점점 자라는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걱정되고 부적절한 관계로 혼인신고를 할 수도 없었지요. 그러다 저는 큐티하는 교회 공동체에 스스로 찾아가 구속사 말씀을 들으며 43절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디님 사람들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어요. 지금은 교회 소그룹 부리더와 주일학교 교사로서 저의 부끄러운 삶을 구원의 도구로 지체들과 아이들에게 나누고 있어요. 별 인생을 찾다가 망했으나 본성에 거하여 별을 나누어주는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가정의 영적 제사장으로서 큐티와 예배로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가길 소원해요. 저의 적용은 ‘교회 청소년부 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저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우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겠습니다.’입니다.”
43절부터 58절까지는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이 나옵니다. 이들은 본래 이방 혈통에 성전에서 허드렛일하던 자들입니다. 느디님은 제사장을 돕기 위해 드려진 사람들이고 솔로몬 신하의 자손 역시 전쟁 포로 출신으로 성전 건축을 위해 노역한 이방인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수가 392명이었어요. 레위인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숫자예요. 어떻게 이들의 수가 더 많을 수 있을까요? 이들은 늘 천한 일을 하면서 무시당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고난이 이들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해서 주저앉았지만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은 예루살렘에서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가장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성전에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 패고 물 긷고 돌 나르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비록 이들은 이방혈통을 갖고 있었지만 이렇게 언약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섬기고 있는 우리들 교회도 그랬지요. 저희 집에서 교회를 개척한 이후 학교 체육관으로 옮겨서 예배를 드렸어요. 매주 바닥에 카펫을 깔고 의자를 놓고 음향 영상 장비를 세팅했어요. 22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성도님들이 나무 패고 물 긷고 돌 나르는 섬김을 아낌없이 하고 계세요.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허드렛 일도 없어요. 모든 일이 구원의 일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한 생명의 일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각자의 헌신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자리가 아닌 맡겨진 자리에서의 충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가정과 학교, 교회와 공동체, 어디에서든 예배를 섬기며 성전 중수에 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예배를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자들의 헌신을 봅니다. 사명감으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도 있지만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 환경이 어려워질 때 사명감이 흔들리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섬김의 자리에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저희입니다. 비천한 자리에서도 주님의 집을 사모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긴 느디님 사람 어떤 형편에서도 주님 전에 문지기로 사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길 원합니다. 제가 머무는 자리에서 영의 성전을 세우므로 주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가정과 공동체에서 느디님처럼 살아가는 모든 지체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상급되어 주시므로 예배가 중수되는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