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2:1-35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3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4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5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7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8 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9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0 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11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이 천이백이십이 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육 명이요
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17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18 요라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19 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0 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21 베들레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22 느도바 사람이 오십육 명이요
23 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4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6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7 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28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9 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30 막비스 자손이 백오십육 명이요
31 다른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32 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34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5 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첫째, 황폐할지라도 나의 본토로 돌이키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유다 백성이 드디어 본토로 돌아옵니다.
1절에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라고 해요. 느부갓네살이 누굽니까? 남유다를 세 차례나 침공해서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바벨론 왕이잖아요. 과거 유다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한 속주가 되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몰락의 자리에서도 구원의 계획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을 지나 다시 돌이키게 하십니다.
여기서 ‘놓임을 받고’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이는 단순한 물리적인 귀환을 넘어 ‘하나님께로 되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슈브’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천 번도 넘게 나오는데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온다는 회개와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여러분, 내게 있던 것이 사라지고 무너졌어도 그로 인해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본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면 그것이 곧 은혜입니다. 과거에는 조공을 받아도 감사를 모르던 유다 백성이지만 이제는 황폐한 유다 땅으로 돌아왔어도 내 집에 거하고 예배할 성전의 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회복이에요.
2절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필두로 유다의 귀환을 이끈 11명의 지도자 이름이 등장합니다. 스룹바벨이 다윗 왕조의 후손으로 정치적 대표라면 예수아는 대제사장의 직계 자손으로 영적 대표입니다. 70년이란 세월이 지났기에 이들은 바벨론에서 안락하게 기득권을 누리며 지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여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분의 백성을 이끌 지도자를 세우시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우리도 때로는 흩어짐을 겪기도 해요. 하지만 하나님은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그때 나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나의 안락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본토로 돌아와야 합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세상의 안락함과 기득권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주의 구원 역사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비결임을 믿습니까?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둘째, 그분의 나라를 위한 남은 자로 세우십니다.
3절부터 20절까지 가문별로 귀환자의 명단이 상세히 기록됩니다. ‘누구 자손이 몇 명이요’라는 형식으로 18개 가문 총 15,604명의 인원이 소개됩니다. 바로스 자손 2,172명을 시작으로 깃발 자손 95명까지 크고 작은 가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됩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명단은 단순한 인구 조사가 아니었어요. 각 가문이 누구의 자손이었느냐를 밝히는 것은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방 땅에서 그들의 신앙 정통성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이들이 남은 자라는 것이죠. 이방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전해 준 신앙을 잊지 않고 기억한 거예요.
이들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삭개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바니는 ‘세움받다’ 아도니감은 ‘하나님이 일어나신다’ 비그왜는 ‘행복하다’는 의미예요. 이들의 이름에는 포로 생활의 고달픔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기억하여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문의 족장뿐만 아니라 그 가문에 속한 수천 명의 한 영혼, 한 영혼을 계수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숫자는 단순한 수의 나열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한 영혼을 거룩한 씨로 여기시고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워가셨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숫자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세워가는 남은 자로 보십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은 접어두시기 바라요. 하나님은 이런 나 한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 가정과 공동체의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은 무엇입니까? 공동체의 사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나요?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며 내 안락함만 추구하진 않나요?
직장 고난으로 우울증을 겪으며 세상을 우상 삼은 죄를 직면하고 이제는 다음 세대를 섬기는 사명에 순종하길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저는 늘 사람들의 인정으로 내면의 불안을 채우려 했어요. 교회에서 만난 자매와 가정을 이루며 안정적으로 살았지만 안정된 환경을 우상 삼은 죄에서 돌이키지 못해 결국 우울증을 겪었어요. 그러다 경영난으로 불안한 직장환경과 강도 높은 업무로 한계에 이르자 비로소 말씀이 들려 세상을 우상 삼은 죄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고된 환경이 1절 말씀처럼 제가 감당해야 할 바벨론 포로 생활임을 깨달았어요. 말씀을 의지해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죄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고 환경에 순종하니 실적을 내고 승진도 하며 적응해 갔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놓여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것처럼 저도 익숙한 바벨론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부부 소그룹 리더와 주일학교 교사로 지체들과 다음 세대를 섬기는 자리예요. 때론 직장생활이 버거워 주말에 편히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것이 저를 천국 입성자 명단에 올리시려는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귀환한 포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신 하나님을 소망 삼고 주께서 맡기신 사명에 순종하길 원해요. 저의 적용은 ‘공동체의 일을 외면하고 싶거나 생색이 날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순종하겠습니다. 올여름에도 직장에 휴가를 내고 주일학교 수련회와 단기 선교 사역에 동참하겠습니다.’입니다.”
21절부터는 출신 지역별로 귀환자들이 소개됩니다. 베들레헴, 느도바, 아나돗, 여리고, 스나 등의 지명이 나오고 총 8,540명의 귀환자가 기록됩니다. 성경은 그들의 출신 지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70년간 포로로 있다가 다시 본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는 일은 흔치 않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기에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특별히 35절에 스나 자손은 3,630명이라고 하는데 가장 큰 숫자입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었어요.
오늘 우리가 사는 곳도 그래요. 우리에게 주신 가정, 학교, 직장, 사회는 어떤 곳인가요? 우리나라처럼 성경 공부가 많고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나라도 드물지요. 그래서 우리에겐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믿음의 성읍이 되도록 일구고 섬길 사명이 주어졌어요. 내가 사는 곳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름을 기억하시는 공동체와 함께라면 그곳이 바로 축복의 터전인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온 많은 이름은 얼핏 보면 낯설고 지루한 족보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명단은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그분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하나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생명책에 새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자리에서 맡겨진 성전 중수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죄의 포로로 세상 가치관에 매여 살던 저희를 택자로 삼아 하나님 나라로 돌이키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랜 포로 생활 속에서 초라해진 저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저희의 이름을 기억하사 불러주신 사랑에 눈물겹습니다. 지금의 안락함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제가 발을 딛고 있는 가정과 교회, 직장, 학교, 이 도시를 믿음의 성읍으로 세우고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선진들의 사명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믿음의 유산을 남기며 주님의 언약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직장 고난과 진로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이름이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믿고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