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8:11-23
11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들은 큰 무리라
12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있던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13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14 전능하신 이가 왕들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2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을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 곳에서 도로 나오게 하고
23 네가 그들을 심히 치고 그들의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네 집의 개의 혀로 네 원수들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하시도다
♱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저의 짐을 내려놓고 참된 쉼을 누리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를 믿으려면 첫째, 말씀 앞에 내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11절에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들은 큰 무리라’고 해요. 하나님이 먼저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승리의 소식이 되고 그 소식을 전하는 무리가 일어납니다. 전쟁의 시작은 사람의 준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2절에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있던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다’라고 해요. 강하고 많던 군대의 왕들이 완전히 패배하여 도망하고 도망합니다. 이는 완전한 패배를 뜻하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쟁에 나가지도 않은 여자들까지 나와서 전리품을 나눌 정도로 완전한 승리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약한 자도 승리를 누리게 됩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13절에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라고 해요. 양 우리는 가장 낮고 초라한 자리입니다. 누워있는 모습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지요. 그런데 그 모습이 은과 금으로 장식된 비둘기처럼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영화롭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그 삶을 빛나게 하십니다.
14절에 ‘전능하신 이가 왕들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라고 해요. 살몬산에 눈이 날리듯이 원수들이 흩어집니다. 눈은 쌓이면 단단해 보이지만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지금 내 눈에 크게 보이는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단단하고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눈처럼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용해 보세요.
♱ 상황보다 말씀을 먼저 붙들고 있습니까? 내가 연약하다는 이유로 낙심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크게 보이는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는 흩어질 것임을 믿습니까?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를 믿으려면 둘째,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15절에 보니 바산은 높고 웅장한 산이라고 해요. 사람들이 보기에 크고 화려하며 풍요로워 보이는 곳이지요. 세상은 늘 이렇게 높고 커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높은 산 이야기를 하다가 곧바로 다른 질문을 던져요. 16절에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라고 하지요. 아무리 높고 화려한 산이라도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으면 진짜 복된 곳이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적으로는 보잘 것 없고 낮아 보여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가장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17절에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라고 해요. 천천만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무궁하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수많은 병거 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계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자기 백성과 함께 행진하고 싸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18절에 묘사된 하나님은 원수를 사로잡으시고 승리의 전리품을 취하시는 분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목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이유는 단지 일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내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니 주님은 우리의 짐을 지신다고 해요. 여기서 짐은 단순히 바쁜 일상이나 피곤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워하는 마음, 정죄하는 마음, 음란한 마음, 비교하는 마음, 혈기, 교만, 불신앙 등의 죄의 짐들이지요. 이 죄의 짐은 내가 스스로 질 수가 없기에 하나님이 날마다 그 짐을 대신 지신다고 해요. 한 번만이 아니라 날마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날마다 무너지고 날마다 넘어지죠. 그러니 날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날마다 그 짐을 주께 맡겨야 합니다.
20절에서 보듯 하나님은 단순히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내 삶의 가장 깊은 문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 문제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사망의 문제이고 그 사망에서 나를 건져내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이지요.
21절에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라고 해요. 문제가 있어도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리지만 잘못하고도 끝까지 내 옳음만 주장하면 결국 메마른 땅에 머물게 됩니다.
22절에서 주님은 ‘내가 그들을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 곳에서 도로 나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건져내시는 분입니다. 내가 높아져 교만한 자리로 올라가도 내가 깊은 죄와 절망에 빠져도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잃어버린 자를 끝까지 찾으시고 깊은 곳에 빠진 자도 다시 끌어올리십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바산 같은 교만의 자리에 있든 바다 깊은 곳 같은 절망의 자리에 있든 하나님이 건져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세상에 높고 화려한 산을 부러워하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리를 사모하나요? 내가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죄의 짐은 무엇이죠? 날마다 회개함으로 이제는 그 짐을 주께 맡기겠습니까?
학교에서 인기가 없어도 하나님께 구원받은 인생임을 기억하겠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낼 때가 많아요. 특히 여자친구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고 저를 투명 인간처럼 대해서 슬퍼요. 하지만 누구보다 강하신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심을 믿기에 위로가 되어요. 그래서 19절 말씀처럼 날마다 우리의 무거움 대신 지고 가주시는 하나님께 제 마음을 알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하나님께 구원받은 인생이 가장 값진 인생임을 믿고 친구들 때문에 상처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할래요. 저의 적용은 ‘따돌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도와주시길 기도할게요’입니다.”
완벽하게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짜증이 나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는 말씀처럼 솔직하게 말해보겠다는 9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더 완벽하게 잘 그리고 싶어요.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엄마와 가족에게 짜증을 내곤 해요. 오늘 19절에 날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시는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는 말씀이 꼭 제게 하시는 말씀 같아요. 앞으로는 무언가 잘 되지 않아도 짜증으로 끝내지 않고 제 마음을 솔직히 말로 표현해 볼래요. 저의 적용은 ‘짜증이 날 때 소리 내어 3초를 세며 마음을 다스릴게요’입니다.”
부모님이 다투실 때마다 두렵지만 하나님께 소리 내어 기도하며 응답받았다는 6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이 크게 다투셨어요. 저는 엄마가 집을 나가실까 봐 몹시 두려웠지요. 그 일은 19절 말씀처럼 저에게 너무나 무거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큰 소리로 울며 ‘하나님, 부모님이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소리 내어 기도했어요. 저의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싸움을 멈추고 저를 달래주셨어요.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시니까 저는 아플 때도 고쳐주시기를 기도해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정말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친구들이 아프면 기도해 줄게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형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짐을 대신 지시는 상태입니다. 말씀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죄의 짐을 주께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형통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스스로 짐을 지고 가려다 무너지는 저희입니다.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한 저희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죄의 짐을 주께 맡기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높음과 화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참된 쉼을 누리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라오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