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6일 큐티다이얼리
<본문: 막 16:14~20>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하려면?
1. 꾸짖음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양육해주십니다. 이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전 (시편110편)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훈련하셨으나 예수님을 오직 이스라엘의 왕 인간으로만 알고 믿고 의지하였던 제자들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야 믿었던 믿음이 없음과 완악함을 꾸짖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rebuked? 잘못된 상태를 바로잡기 위한 사랑의 교정 즉 마지막 양육의 책망이십니다. 불신앙으로 부활을 듣고도 믿지 않았고, 완악함은 곧 예수를 인간으로 보고 알았기에 나의 이기심과 나를 위해 곁에 붙어 있었기에 예수가 죽은 것을 보고 이제 끝났다. 나의 꿈은 사라졌다는 실망과 좌절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제자들이 완악하였다고 책망하십니다.
나의 고집과 영적 둔감함을 꾸짖으셨습니다.
바로 내가 그러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만든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하며 나를 위한 나의 편안함과 나의 부유함과 나의 명예를 위해 기도하였던 것이 바로 불신앙이며 완악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착각합니다. 내가 만든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한다고 착각하고 내가 옳다고 자아도취로 불신앙에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나를 감옥에 갇히게 하사 말씀으로 꾸짖으셨습니다. 꾸짖는 소리를 우리는 싫어합니다. 좋은 소리만 듣기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먹습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말씀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고 나의 악함을 꾸짖는 것은 외면하였습니다. 그런 완악한 날 교정하기 위해 감옥에 넣으셨습니다.
날 교정하기 위해 마지막 꾸짖음을 주신 주님을 말씀을 통해 만났습니다.
2. 나의 삶속에서 꾸짖어 주십니다.
14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하고 예배할 때 나타나지 않으시고 식사할 때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현실적인 삶 속으로 들어오신 예수님(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삶 속으로 찾아오심)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지금 두려움, 낙심,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이 현실적인 삶 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나는 예수님을 나를 위해 따라다녔습니다. 교회도 인맥을 위해 오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 같이 찌질하고 볼 것 없는 고아인 날 인정해주고 받아주니 교회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인정받고 싶은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주일성수하고 기도하면 부자가 되고 벌 받지 않고 잘 살 것 같아 기복신앙으로 이기심 가득한 완악함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들은 말씀이 있고 우리들공동체를 통해 양육 되었기에 예수님은 나의 현실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언제? 코로나 이후 사업은 다 망하고 돈은 다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이자와 세금 그리고 민사소송 판결문 채무독촉 죽을 것만 같았고 내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좌절과 두려움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으시니 날 꾸짖기 위해 억울한 판결로 감옥에 넣으셨습니다. 아마 그렇게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죽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완악하고 죽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 죄는 보지만 현실은 죽을 것 같으니 죽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날 사랑하시어 찾아오셨습니다.
3. 회복 시켜주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식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닙니다. 교제(코이노니아)의 회복, 관계 회복, 공동체 회복, 언약적 교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사명 공동체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버렸고
도망쳤고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식사 자리에서 책망하시고 다시 세우십니다. 정죄의 자리가 아니라 회복과 재출발의 자리 즉 사명 회복의 전환점이 되는 양육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서 억울한 판결을 한 판사를 욕하고 저주하며 억울해서 지옥을 살고 있을 때 말씀으로 큐티 중에 책망하시니 나의 완악함과 불신앙을 보게 되며 내 안에 내 죄를 빠짐없이 보게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나는 감옥에서 영치금이 없으면 개고생을 합니다. 아내는 감당할 수 없는 이자로 두려워 떨고 있고, 심지어 아내를 협박해서 세금까지 내게 한 사람도 있었고, 아내는 갑자기 사라진 남편으로 힘든 시기에 있기에 영치금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교도소의 식사는 먹을 수 없었고, 너무 고통스런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우리들공동체는 영치금을 넣어주셨습니다. 식사의 자리와 같은 은혜였습니다. 완악한 죄인에게 식사의 자리에 나타나신 예수님처럼 회복에 시간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꾸짖으시며 회복의 은혜가 주셨습니다. 또한 감옥이 바로 식사의 자리였습니다. 감옥 내가 갇힌바 된 것은 바로 주의 사랑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차단시키셨습니다. 밖에 있으면 채무독촉과 죽을 것만 같은 환경에 죽을 수 있기에 나를 이곳으로 도피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신 것은 꾸짖으셨습니다.
내가 몰랐던 알아도 회개하지 않았던 내 모든 죄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꾸짖으셨습니다. 매일 매일 큐티가운데....그리고 회복으로 인도하셨습니다.
4.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하십니다.
19절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첫 번째 교도소에서는 예수님의 꾸짖음으로 내 죄를 회개하고 내안에 죄를 다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개고생이 아닌 종노릇하라는 말씀으로 섬김을 훈련받았습니다.
항소 후 상고로 서울00구치소로 이송되어 상고심을 기다리는 던 중 주께서 사명을 회복시키시사 섬김을 적용하게 하셨습니다. 공동체에서 주신 영치금으로 같은 방에 있는 노숙자 6명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 섬김은 곧 주께서 역사하사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놀라운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하셨습니다.
나도 놀랐습니다. 나는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말씀대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기결방으로 옮기신 주께서 마지막 훈련을 하십니다.
청년들이 많은 방에 넣으시고 감금납치폭행 등 강력범 청년 성범죄 청년 등 말씀만 보고 기도하는 날 보게 하시고 주께서 역사하사 나에게 그들이 다가오게 하시고 방에 폭력이 없어지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변했고, 그 방은 그들이 ‘할렐루야’방이라고 말하며 식사할 때 기도도 하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명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지금 출소 후에도 그들은 나에게 편지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불안이 없고 평안과 행복합니다. 엄마도 예수 믿겠다고 했어요.”라고 말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내가 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내 죄를 토해내고 내가 만든 우상을 다 부숴버리고 내 안에 열등감의 쓴뿌리와 피해의식의 쓴뿌리를 말씀으로 뽑아 내신 주의 은혜로 사명이 회복되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삶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삶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복음은 내가 내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섬김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곧 복음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