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12-20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유대인의 왕이여 ♱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예수를 넘겨주는 인생이 아니라 십자가를 붙들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인생이 되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유대인의 왕을 따르려면 첫째,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죄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12절에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하고 물어요. 빌라도는 이미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하랴’ 또 묻습니다. 알면서도 자꾸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책임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말씀을 들으면 이미 답은 나옵니다. 그런데 순종하기 싫으니까 계속 묻는 거지요.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은 알지만 용서하라는 말씀은 알지만 지금 상황이 포기하라는 말씀은 알지만 ‘딱 이번만’ 하는 것이 있지요. 결국 묻는 척하면서 불순종을 준비하는 것이 빌라도와 같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13절을 보니 무리는 더 크게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고 외칩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가장 잔인한 형벌을 요구하고 있어요. 이렇듯 상황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자 14절에서 빌라도는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고 해요. 아무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는데도 그 소리에 점점 휩쓸려 가고 있어요. 15절에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라고 하지요.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다가 예수님을 죽이는 결정을 하고 맙니다. 우리도 그래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결국 예수를 넘겨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고 상사에게 미움받기 싫고 공동체에서 튀고 싶지 않아서 진리를 알면서도 침묵하고 타협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살면 결국 예수를 죽이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빌라도는 총독이고 가장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할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 되었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누구를 만족시키려고 예수를 넘겨주고 있습니까? 사람의 눈치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요?
유대인의 왕을 따르려면 둘째, 희롱과 수치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6절에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라고 해요. 예수님 한 분을 향해 온 군대가 모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이렇게 온 세상이 달려들어 방해합니다. 조용히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조롱당하고 집단적으로 공격받는 것이 십자가의 특징이에요. 우리도 믿음으로 사려고 하면 갑자기 주변의 반대와 부담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왜 나만 이러지?’가 아니라 ‘아 지금 내가 십자가를 통과하고 있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17절에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라고 하지요. 왕의 옷과 왕관을 흉내 내며 조롱하는 것입니다. 가시관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계속해서 찌르는 고통이에요. 인생에서도 한 번의 아픔이 아니라 반복되는 문제, 계속되는 상처, 끝나지 않는 고통이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고통을 끝까지 감당하세요.
18절과 19절에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고 합니다. 말로 조롱하고 몸으로 때리고 인격적으로 모욕합니다. 머리를 치는 것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서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행위예요. 우리도 삶 가운데 말로 상처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이 참 괴롭고 자존심이 상해서 때로는 죽고 싶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모든 수치를 묵묵히 받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수치와 조롱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도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사건, 숨기고 싶은 인생의 상처가 오히려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구속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 길이 너무 힘들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0절에 ‘희롱을 다 한 후’라고 해요. 이 표현이 참 중요합니다. 희롱이 끝나야 십자가가 진행됩니다. 고통이 끝나야 다음 단계가 열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의 수치와 고난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내가 겪는 수치와 조롱은 무엇입니까? 반복되는 고통으로 포기하고 싶어지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이 사건이 실패가 아닌 십자가의 과정으로 해석됩니까?
큐티와 교회의 양육 훈련을 통해 인정받고자 눈치를 보며 불의한 선택을 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어릴 때부터 저는 세상에서 내 편이 되어줄 든든한 배경이 없다고 생각해서 남에게 책 잡히지 않고자 조심했어요. 그러다 미국 명문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하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부서 회식 자리에서 상사들이 권하는 술도 신앙을 이유로 거절하며 이제 나도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자존감과 믿음이 생겼구나 하고 착각했지요. 얼마 후 그토록 바라던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15절에서 무리에게 만족을 주려고 불의한 판결을 내린 빌라도 같이 저는 또다시 선배 교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애썼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선배들에게 밉보이면 승진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회식 자리에서 권하는 술을 받아 마셨지요. 그러다 저는 교회 공동체에 속해 매일 큐티하며 양육 훈련을 받았어요. 그동안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 만족을 주고자 애쓴 것이 세상에서 내가 인정받고 남보다 높아지려는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했어요. 제가 술을 마신 것은 죄를 고백하고 나눌 공동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공동체에 물으며 술을 정중히 거절하고 있어요. 이제는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저의 욕심과 불안을 분별하고 믿음 때문에 희롱을 받더라도 십자가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하기 전에 아내와 교회 공동체에 물어보겠습니다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빌라도처럼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예수를 넘겨주는 선택을 하는 일이 오늘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반복되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 가장 잔인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조롱과 수치,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죠.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해야 합니다. 인정받기 위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예술을 넘겨주는 삶이 아니라 비록 수치와 희롱이 따르더라도 십자가를 붙드는 삶으로 나아가야 해요. 지금 내가 겪는 고통과 상처도 헛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어 가시는 구속사의 과정임을 믿으시길 바래요. 그러므로,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사람을 만족시키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알면서도 묻고 결단하지 못하고 결국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예수를 넘겨준 빌라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인정받으려고 또 미움받지 않으려고 진리를 알면서도 침묵하고 타협한 죄를 회개합니다. 자색 옷과 가시관을 쓰시고 조롱과 수치를 묵묵히 감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수치와 억울함과 상처가 헛된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도구가 됨을 믿으며 포기하고 싶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고 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지금도 반복되는 고통과 찔림 속에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희롱을 다한 후에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견디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십자가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