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왕상17장에서, 사르밧 과부의 반응을 통해 내 눈을 여시다
제목 : 사방이 다 굶주려도 나는 먹고 마시는 기적이 복이냐 vs 한 사람 죽고 사는 문제가 먼저냐
현장의 사건(1)
#1 - 온 세상 형편, 내 형편도 이 모양이니 있는 것이나 먹고 그 다음에 죽자(왕상 17:12)
#2 - 세상에 이런일이...딱 한번의 식사로 끝날 부식이 끊어지지 않는 일로 죽지 않고 사는게 되네?(왕상 17:15-16)
#3 - (사르밧 과부, 아들) 이런 기적에도 특별한 반응이 없다.
현장의 사건(2)
#1 - 멀쩡한 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고 증세가 아주 나빠지더니 허망하게 죽어버렸다(왕상17:17)
#2 - 죽은 아들로 인하여 '나의 죄'를 보며 탄식하다(왕상17:18)
말씀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와 탄식(왕상17:20)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는 그 현장에도 재앙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재앙의 사건이 아니라, 그 재앙의 사건을 통해서 '나를 지금도 살리고 영원히 살리는 구원의 사건임을 보여주시고 실현하시려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말씀이 있음을 보고 믿는 것이다)
#3 - 사르밧 과부의 고백 :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당신 입의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17:24)
* 사르밧 과부, 남들은 다 굶어 죽어나가더라도 도대체 말이 안되는 방법으로 나와 아들을 먹여살리는 것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영광에 대한 고백이 전혀 없다.
* 그런데...하나 뿐인 아들, 그 아들의 하나 뿐인 생명이 죽어나가는 사건을 통해 그 죽어버린 아들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죽은 사람마저 살려내는 능력이 있고 그 말씀이 바로 엘리야를 통해서 일하심을 보고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문이 열리는 영광을 경험한다.
* 질문 - 아니, 왜? 어디 우리나라 이스라엘 땅, 내 고향에 과부가 없어서...
이방 땅, 그것도 40~50Km 넘게 떨어져 있는 한 집구석, 남편도 없는 '그 한 사람, 그 한 과부'를 찾아가셨나?
* 생각하고 돌아보라는 하나님의 경고와 메시지였구나. 순간 치고들어오는 말씀이 있었다.
'주의 은혜의 해는 누구에게로?(눅4:19) 향하는가!
이스라엘 본토 아비 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어디서 뭘하는 사람인지도 모를 해수욕장 모래사장의 모레 한 알 같은 인생이라 그 누구도 모르는 평범하고 가난하고 이름까지 없는 인생일지 모르오나
하나님은 '그 가슴에 있는 탄식과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었다'
내 인생이 하찮고 죄 많은 인생이라 되는 일 없고 가정은 이 모양이라 답이 없는 환경이고
또 목숨은 붙어있으니 살기는 살아야 겠고,
살다보니 달려버린 식구들까지 생겼으니...이 자식들 홀로서기 까지는 어떻게든 내다 살아내야 하는 인생
눅4장에서 예수님이 직접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그 많은 사람들, 그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저 멀리 누군지도 모르는 시돈 땅에 있는 그 이름도 언급되지 않은 한 과부와 한 아들'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언급한 말씀에 말씀이 들어 있었음이 보인다.
그 과부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니 하도 많은 탄식의 기도를 드려서 성경책이란 한정적인 지면에 다 실어줄 수가 없어서 언급은 없지만, "성경에 언급이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쉼 없이 여전한 방식으로 망해왔던 내 인생도 마찬가지!, 위대하게 쓰임받은 한국의 믿음의 선배들 역시 성경에 없다...그렇다고 그 인생이 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하나님이 '잊어 버릴 수 없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억에 남는, 찾아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 향한 부르짖음과 소통'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구나.
왜냐하면, 눅4장은 예수님의 첫 공생애가 40일 금식과 마귀의 시험이 끝나자마자 환호해주고 격려해주는 장소가 아니라
그 어떤 선지자, 자신 마저도 '그리스도로'로 인정받거나 환영받지 못할 고향 땅에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그리고 자기 이스라엘 동족과 친척들 한 복판에서 한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 (눅4:25-26)
** 오늘 말씀이 들리고 내 죄가 보이기에 십자가의 주님의 다리를 붙잡고 한없는 탄식과 감사를 드리게 되는 일은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향하는 애타고 허리가 끊어지는 탄식으로 주님을 구하고 부르고 사모하는 그 한 사람에게 주님의 성령이 임하고 은혜의 해가 전파된다는! 것을 증명하시려 사렙다 과부를 끄집어 내신 것이니....!!
"나 같은 인간, 도저히 답이 안보이는 이 모양이라도 반드시 소망이 있다"라는 것을 외치고 계시구나."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나를 향해 던져진 질문]
* 이제, 먹고 사는 일과 사건에 머물러 하나 뿐인 생명의 삶을 살다가 끝나는 인생이 될 것인가?
or
* 아니면, 계속 살게 되면 감사하고 못살게 되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에 두신 섭리이니 감사하니...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고 내 가족과도 같은 친척과 이웃이 "영원히 죽어나갈 일에서 영원히 살아나는" 이 생명의 사건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이 내 일상과 인생을 채우게 되기를 깊은 사랑과 소망의 탄식으로 기도하며 실행하는 삶을 살 것인가?
눅4장에서 자기 백성앞에서 이렇게 질문하시던 그 주님,
오늘 내게도 그렇게 질문하고 계신다...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나의 몫이네요...주님. 주여~~~
[질문에 답하다 - 적용]
1) 6년 300일째 나누는 기도모임에서 하나 뿐인 내 기도제목이 바뀌다
지금 있는 곳에서 자립 or 3~4년 귀향후 자립 -> 장인어른, 문동혁, 친구 부부의 구원과 공동체 참석
2) '세상 누구보다 어려웠던 아부지의 그 지난한 구원의 과정에서 흘려야 했던 허리 끊어지던 눈물의 기도가 아부지 소천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흐르도록' -매일 적는 영육일기의 순서가 오늘부로 이것을 우선순위로 바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