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8-14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 호산나 ♱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호산나 주님을 찬송하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호산나 주님을 찬송하려면 첫째, 영광과 비난에 초연해야 합니다.
8절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라고 해요. 많은 사람도 다 자기 고정관념과 기복으로 겉옷을 벗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깔아드린 겉옷 위로 예수님이 지나가십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 같은 나를 타시고 나의 겉옷 위로 지나가십니다. 이만한 영광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도 주께서 주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 내가 벗어야 할 겉옷이 있어요.
9절과 10절에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합니다. 지금 이들이 ‘호산나 호산나’ 찬송하며 이렇게 열광하고 환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지요. 주님이 로마에서 자기네들을 해방시켜 줄 유일한 구원자이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들은 일주일 뒤 예수님을 비난하고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께 무언가를 바라며 기복적으로 소리 지르는 것은 망하는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려면 이런 열광과 비난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 계시죠? 나귀도 아니고 나귀 새끼를 타고 계세요. 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고 초라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대로 적용하는 것도 그래요. 싫은 것을 해야 하고 잘했든 못했든 무릎 꿇고 내가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니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초라해 보일 수 있어요. 우리들교회 집사님들도 날마다 목장에 모여서 ‘남편한테 가서 빌었어. 아내에게 무릎 꿇었어. 자식 앞에서 무릎 꿇었어.’ 하며 초라한 주님의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릅니다. 시쳇말로 ‘쪽이 팔려도’ 내가 먼저 무릎 꿇는 적용을 하는 것이 진정한 호산나 찬송입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지금 나는 무엇에 열광하고 환호합니까? 남들의 열광에 흥분하고 남들의 비난에 상심하지는 않습니까?
호산나 주님을 찬송하려면 둘째,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1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고 해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곳을 둘러보세요. 막연히 구경을 하신 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신 거예요. 그런데 장사꾼들의 시장터와 강도의 굴혈로 변한 성전의 모습을 보시고서 분노하셨어요. 때가 이미 저물었어도 그곳에서는 더 이상 머물지 않으십니다. 통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할 수 없으셨던 것이죠.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로 가십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성전에 거하실 수 없으셨어요. 우리도 그래요. 우리 몸은 예수님의 성전이에요. 그런데 내 몸과 마음이 더러운 죄로 가득하다면 예수님을 밀어내는 것과 같지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밀어낸 예루살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2절에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고 해요. 예수님은 갚아드릴 것이 없는 불쌍한 자들을 대상으로 주로 사역하시다 보니 그분에게 집 하나 내드리는 자가 예루살렘 성안은 물론 성 밖에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3km 떨어진 베다니로 걸어가셨다가 다시 걸어오시다 보니 시장하셨겠죠. 당연히 제자들도 배가 고팠을 거예요. 그러나 ‘내가 주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대접도 못 받고 나는 왜 늘 배가 고플까’가 아닙니다. 배고픈 것도 훈련이에요.
그런데 13절에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고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가난한 자의 양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관상용도 안 되고 목재도 안 되고 꽃은 없고 잎만 무성해서 오로지 열매 하나로 쓰임받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오늘 길가의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왜죠?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해요. 그런데 주님은 왜 14절에서 때 이른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내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저주하셨을까요? 무화과나무로서는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저주는 입만 무성한 큰 교회의 죽음을 예고하신 거예요.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 직분을 맡고 내 열심으로 수고해도 그렇습니다. 영혼 구원의 열매가 없으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나 다름없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하지. 돈 좀 벌고 나면 하지. 취직하고 합격하고 나면 하지.’가 아닙니다. 당장 지금부터라도 구원의 열매 맺기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때가 되면 하지’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주의 일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열매를 맺고자 지금 당장 찾아가야 할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픈 친구를 사랑하지 못하고 구원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저 주님께 기도하길 원한다는 한 고등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간증이에요.
“초등학생 때 전학으로 연락이 끊어진 친구에게서 갑작스레 연락이 왔어요. 예전에 무척 친했던 그 친구는 자신이 뇌전증에 걸렸고 두 달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으며 지금은 학교에 다닐 수도 없다고 했어요. 그날부터 친구는 제게 자주 연락을 해 왔지만 내성적인 저는 점차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친구가 같이 공부하자고 제안했는데 저는 학교와 학원 생활이 바빠서 어렵다고 거절했어요. 이후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친구가 제게 욕까지 했어요. 그 후에도 친구는 왜 병문안을 안 오냐며 그 정도도 못 해주냐며 짜증을 냈죠. 결국 저는 감정 소모에 지쳐 그 친구와의 연락을 끊었어요. 13절과 14절에서 예수님은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세요. 저도 그 친구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구원의 열매를 맺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주님께 죄송해요. 또 친구에게도 미안해요.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주님 저는 못할 것 같아요’라는 기도만 나와요. 제가 그 친구를 사랑할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며 그 친구에게 예수님이 방문해 주시길 기도할래요. 저의 적용은 ‘그 친구를 위해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 소그룹 지체들에게 친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환호하는 이스라엘 군중들은 겉으로는 메시아를 열렬히 환영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어요. 성전은 제사와 절기로는 가득 차 있었지만 회개와 믿음과 긍휼의 열매는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저주받는 자리로 나아가셨어요. 열매를 요구하신 심판자이셨지만 열매 없는 자리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자이기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내 욕심과 기복의 겉옷을 벗고 주님을 나의 구원자로 삼고 호산나 찬송하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요. 잎만 무성한 나무가 아닌 복음에 합당한 열매, 회개의 열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호산나 주님을 찬송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호산나의 인생이 되려면 열광과 비난에 초연하고 구원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의 열광과 비난에 마음이 요동할 때가 많습니다. 물질과 직분, 세상 성공의 잎사귀는 있어도 정작 구원의 열매가 없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제는 구원자이신 주님을 의지함으로 회개의 열매,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특별히 이 땅의 다음 세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세대의 인본적인 가치관과 더러운 문화로부터 지켜주시고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만남으로 호산나 주님을 찬송하는 아이들로 자라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치유함을 받아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구원의 열매 맺는 인생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들의 가정에 모든 마른 것들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