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1-7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 주가 쓰시겠다 하라 ♱
하나님 아버지, 내 환경에 잘 매여 순종함으로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려면 첫째, 고정관념을 버리고 제자리에 잘 매여 있어야 합니다.
오늘 1절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라고 합니다. 감람 산은 다윗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눈물 흘리면서 건넌 기드론 시냇가에 있는 산이지요. 이 산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결정적인 메시아 사역이 감람 산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벳바게와 베다니는 어떤 곳입니까?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병든 그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왜 마리아나 나사로가 사는 곳을 마다하고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셨을까요?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나사로는 주님의 은혜로 죽었다 살아나도 제자가 되겠다 하며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상한 소리를 해도 끝까지 주님과 같이 했죠. 그래서 제자들을 끝까지 보내셔서 경험케 하시고 일거리, 전도거리, 양육거리, 상담거리를 끊임없이 주십니다.
2절에서 두 제자를 굳이 맞은편 마을로 보내신 것도 그래요. 마리아가 사는 마을로 가면 일이 쉽게 풀릴 텐데 주님은 생각지 않은 곳으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동네 이름도 모르는 맞은편 마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나를 돕겠지 저기로 가면 되겠지 해서도 안 되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해요.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지요. 기왕에 타실 거면 힘 세고 큰 나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힘도 없는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세요. 더구나 제멋대로 나다니는 나귀가 아니라 아직은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자기 환경에 매여서 매사 주인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는 나귀 새끼입니다. 주님은 지금 잘 나가는 사람보다 제자리에 잘 매여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평범하게 잘 묶여 있는 것이 평범을 넘어서는 비범이에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주님께 쓰임받고자 나의 현실에 잘 매여 있습니까? 내가 넘어서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려면 둘째, 이르신 대로 즉시 행해야 합니다.
3절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하십니다. 제자들은 주가 쓰시겠다 라는 말만 하면 됩니다. 내가 할 것이 없습니다.
4절에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병행 구절을 보면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고 하지요. 말씀을 들으면 들은 대로 즉시 행해야 합니다. 가라 하시면 즉시 가고 멈추라 하시면 즉시 멈추어야 해요. 그리하면 모든 것이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큐티를 하면서도 못 들었다가 주제가입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합니다. 심지어 제자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매여 있던 나귀 새끼를 푸는데 그까짓 나귀 새끼를 풀어 어디다 쓰려고 그러냐?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6절에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고 합니다. 조롱을 받아도 우리는 그냥 주님이 이르신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무서운 직장 상사라도 시어머니라도 남편이라도 주님의 권위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닥친 어떤 사건도 영적인 눈으로 보면 주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허락하신 사건이에요.
저 또한 과거에 구역장을 하고 집에서 재수생 큐티 모임을 인도하고, 해외 유학생들을 위한 코스타 강사가 되고 우리들 교회와 QTM을 섬기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주가 쓰시겠다는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어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했을 때 주인이 허락한 것처럼 우리가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님은 모든 환경의 문을 여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적용해 보세요.
♱ 지금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주님께 무엇을 내놓았습니까? 주님이 이르셔도 즉시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워도 주님이 불러주시는 자리에 겸손이 메인 작은 나귀로 쓰임받기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틴 묵상 간증이에요. 늘 인정에 목이 마른 저는 직장에서 남들에게 잘 보이려 애썼고 초라해 보이기 싫어 안목의 정욕으로 술과 음란을 즐기며 말씀과 상관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1절과 2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자기 자리에 잘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볼품없지만, 주님의 때를 기다리던 나귀 새끼를 타고 사명의 길로 나아가세요. 자기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 한마디에 순종했는데 저는 과연 그렇게 쉽게 내드릴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저는 제 눈에 보기 좋은 것만 취하려다 실직 고난을 겪으며 믿음의 공동체로 인도되었어요. 예전에는 말씀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를 외치던 영적으로 눈먼 자였는데 지금은 주님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속사 말씀으로 양육받으며 순종하다 보니 소그룹 리더로 섬기는 은혜도 누리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세상 일에 빠져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못하고 선택적으로 순종하는 교만한 자예요. 이제는 3절 말씀처럼 주가 쓰시겠다고 하실 때 곧장 순종하고 주님이 불러주실 그때까지 저의 자리에 겸손히 매여 있는 나귀가 되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주일날 교회에 오가는 길에 아내와 말다툼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SNS 교회 소그룹 대화방에 큐티한 내용을 올리고 지체들이 올린 글에도 댓글을 달겠습니다입니다.
7절에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라고 합니다. 어제 매인 거지 바디매오도 그랬지만 겉옷은 생명을 보호해주는 것이요. 재산과 명예 지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았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과 진배없지요. 이로써 예수님은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하신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또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의 체면과 자존심에 겉옷을 내려놓으시길 바라요. 그러면 주님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가장 영광스러운 입성을 경험하게 해주실 줄로 믿어요. 오늘도 나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금의 자리에 잘 매여 있음으로써 주님께 쓰임받는 하루를 보내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릴게요.
주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나귀 새끼처럼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어서 주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나귀 새끼를 타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주님이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겉옷을 깔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우리의 마음에 기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비난을 받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십자가가 싫어서 나는 살고 주님을 못 박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직장과 사업에 어려움과 위기를 겪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 주시옵소서. 비록 나귀 새끼처럼 초라한 인생을 살아도 이 모든 환경이 주가 쓰시려고 매어둔 합당한 멍에임을 알고 지금의 환경에 가정에 공동체에 잘 매여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 즉시로 나아가서 구원을 위해 쓰임받는 약재료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