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32-40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 앞서가시는 예수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십자가의 길로 앞서가시는 예수님을 잘 따라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앞서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첫째,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 32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왜 자꾸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까? 십자가를 치고 죽기 위해서지요. 이렇듯 예수님은 인생의 목적이 뚜렷하십니다. 이 땅에 왜 왔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니까 두려움 없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려면 이렇게 주님처럼 앞서 가야 해요.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행여 불치병에 걸리고 망하고 죽음을 선고받더라도 그때부터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쁘게 죽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그런데 왜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을까요? 주님을 따르고는 있어도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고 인생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십니다. 제자들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양육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혼자 죽으러 가시면서도 33절에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라고 하셨을까요? 제가 교회에서 많은 성도를 양육해도 그렇습니다. 십수 년을 양육해도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분이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그런 분을 포기하고 배척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분이 있어도 날마다 같이 큐티하며 우리가 되어서 함께 가니까 교회가 힘이 있고 영광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말씀이 들리든 안 들리든 공동체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도들이 귀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도 믿음의 공동체에 붙어만 있으면 언젠가는 말씀이 들리는 날이 오게 될 줄 믿어요. 붙어만 있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33절, 34절에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힘든 이야기를 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은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십니다. 우리가 전도하며 복음을 전해도 그래요.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세 번, 네 번 전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여러분의 인생 목적은 무엇입니까?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나는 가족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있나요? 혼자 십자가를 지기가 너무 힘들고 두려워서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앞서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둘째, 세상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35절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합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십자가를 가르치시는데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며 말씀하시지만 양육받은 그들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이들이 구한 자리는 십자가 좌우편이 아닙니다. 세상 높은 지위,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처럼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될 줄로 믿고 그리되면 다들 한 자리 차지할 욕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만일 지금 예수님이 내 앞에 계셔서 한 가지를 구하라고 하신다면 무엇을 구하시겠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시에 붙고 승진하게 해달라고 말하시겠어요? 겉으로 보면 영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내 욕심으로 세상의 것을 구하는 것이겠죠. 입만 열면 ‘주여 주여’ 하면서 그 기도의 밑바닥에는 기복이 깔려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가 날마다 기도하며 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주여 주여’하면서도 정작 구하는 것이 이 땅에서의 영광은 아닌가요?
♱ 작지만 귀한 사명 ♱
교수의 길을 열어달라는 기도의 응답으로 소그룹 리더로 부르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알려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대학 입학 후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24년이 걸렸고 대학 교수로 임용되지 않아 40대에 한 연구기관에 입사했어요. 처음엔 안정적인 직장에 감사했지만, 곧 오랜 시간과 돈을 들인 것에 비해 연봉과 직장이 초라하게 느껴졌죠. 퇴근길에 고급 승용차를 실은 트레일러를 보며 ‘이렇게 다녀서는 저런 차도 살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많이 벌거나 명성을 얻어야 주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연구자로서 그럴듯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처럼 저도 오랫동안 제 사명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어요. 훌륭한 교육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이라고 여기며 대학교수에 계속 지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죠. 그러다 지금 직장에서의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기도하게 되었어요. 차츰 기도가 쌓이니 하나님은 제게 큰 업적과 매일 출근해서 큐티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무엇보다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길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죠. 작년에 소그룹 리더로 세워주셔서 일상의 무게도 알게 하셨습니다. 35절과 37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하던 저의 눈높이로 내려오셔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해요. 이제는 제 눈에 영광된 것만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길 원해요. 저의 적용은 ‘가족과 지체들의 기도 제목에 관심을 가지고 매일 밤 기도하겠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작더라도 감사한 일을 찾아 가족에게 나누겠습니다.’입니다.”
예수님은 38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그렇지요. 십자가를 잘 지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가 우선입니다. 내가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고 내 열심이 특심이 되어서 나도 속고 남도 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으뜸이 되려면 먼저 마셔야 할 잔이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는 예수님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39절에 제자들은 멋모르고 ‘할 수 있나이다’ 장담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함부로 주의 이름으로 장담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하시며 제자들의 고백을 받아주십니다.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훗날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로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칼로 목 베임을 당했고 요한은 밧모 섬으로 유배를 갔지요. 십자가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 우리가 멋 모른 채 장담하고 고백했어도 하나님은 그 고백을 책임지시고 구원의 일에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40절에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잔을 마셔도 좌편, 우편에 앉게 되는 것은 아버지 소관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아무리 이렇게 구했어도 수제자 자리는 결국 베드로에게 갔지요.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서 세상 욕심을 내려놓고 우리 앞서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부족한 우리에게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인생의 목적을 분명하게 갖고 세상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욕심을 정작 내려놓지 못하다 보니 늘 세상에 으뜸이 되려고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구합니다. 십자가는 싫고 부활의 영광만을 좋아하는 저희의 연약함도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이 나라의 아버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 고난의 잔을 마시며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남편들, 아버지들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나라의 가정을 주님이 지키시고 살려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