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1-13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 내가 불쌍히 여기노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긍휼을 깨닫고 우리도 불쌍히 여기며 십자가의 표적을 보이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깨달으려면 첫째,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드려야 합니다.
오늘 1절에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고 해요. 곳곳에서 예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큰 무리가 모이는데 정작 먹을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곳곳에 큰 교회가 있고 많은 무리가 모이지만 정작 복음의 역사가 없는 것과 같아요.
2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라고 하세요.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예요. 그런데 주님은 이런 우리를 먼저 찾아와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것이 일방적인 주님의 긍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3일이나 굶고 있는 무리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책임지십니다.
3절에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고 하시잖아요. 멀리서 온 사람도 있고 굶겨 보내면 기진할 것까지 다 하시는 주님이 우리 주님이에요. 그런데 4절에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까’라며 곤란해해요.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또 불신앙의 모습으로 대답하지요. 우리도 그래요. 평소에는 주님을 신뢰하자고 부르짖어도 실제로 어려움을 맞닥뜨리면 연약해지지요. 신앙이란 끊임없이 영육 간의 부족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예수님이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하고 물으세요. 주님은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물으십니다. 할 수 없는 것은 묻지 않으세요. 내가 예수님을 만난 시점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시기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져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6절과 7절에 보니 예수님이 무리를 땅에 앉게 하시고 떡 7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며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게 하세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남자만 4천 명이나 되는 무리 앞에서 그 초라한 음식을 놓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이렇게 작은 것에 감사할 때 수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으로 나타나 어떤 사건에서도 감사하면 그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영적 배부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보다 큰 능력은 없어요. 불평은 있는 것까지 없어지게 합니다. 적용해 보세요.
♱ 내가 받은 주님의 긍휼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주께 드릴 수 있는 작은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며 감사합니까?
주님의 긍휼을 깨달으려면 둘째, 이미 받은 은혜를 인정해야 합니다.
8절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라고 해요. 예수님의 축사로 무리는 배불리 먹고도 풍부하게 일곱 광주리나 거둡니다. 4천 명이 먹고 남았어도 낭비하지 않고 거두게 하십니다. 참으로 구체적이신 예수님입니다.
9절에서 예수님은 그 무리를 흩어 보내십니다. 언제나 세상으로 돌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받은 은혜를 전해야 하는 것이죠. 3일이나 머물렀기에 그들이 품삯도 손해 보고 굶었을 텐데 금전적으로는 손해 본 것 같아도 평생 살아도 얻지 못할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배를 얻은 사람이에요. 예수님은 그분께 오는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시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11절에 보니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이미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는데도 말이에요. 바리새인들은 무슨 얘기를 해도 그냥 예수님이 싫은 거예요. 예수님의 학벌이 없는 것도 가난한 자와 함께하는 것도 무리가 변화되는 것도 다 싫은 것입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먹여주고 사랑하는 진짜 기적보다 하늘로부터 오는 신유와 방언과 환상 같은 외적인 표적을 요구하는 경건주의자들이었어요.
12절에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의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세요. 마음으로 영생과 거룩을 깨닫는 사람에게는 외적으로 나타나는 표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성경을 읽고 깨달아 주님과 교제하고 있으니 제일 좋은 것을 받은 거예요. 진짜 표적은 요나의 표적, 곧 십자가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우리가 보여줄 것은 십자가뿐이에요. 죽어지고 썩어지는 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그러면 큰 열매를 맺어요. 병이 낫고 치장하는 것도 죽어서 열매 맺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것이지 욕심으로 더 많은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나는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합니까? 아니면 더 많은 표적을 구합니까? 그 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울과 슬픔을 유머와 재치로 가리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으로 헐벗었던 마음을 말씀에 떡으로 배부르게 하신 부활의 주님을 따르기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어릴 적 저는 부모님의 불화로 늘 불안했고 가난한 친정에 대한 걱정과 수치심이 가득했어요. 저는 그런 속마음을 유머와 재치로 가리고 한심해 보이는 친구들을 무시하며 잘난 척했어요. 예수님은 그런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하셨지요. 그리고 6절 말씀에서 제자들을 통해 무리에게 떡을 나누어 주시듯이 제게도 날마다 말씀의 떡을 먹이심으로 제 마음과 영혼을 회복시켜 주셨어요. 그러면서 저의 밝음과 당당함 뒤에 숨은 우울과 열등감을 발견했죠. 세상 기준에 못 미치는 저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사실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임을 깨달았어요. 제가 경험한 칠병이어의 기적이며 은혜예요. 현재 저는 직장에서 해외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해외에서 지내고 있어요. 환경은 낯설고 공동체와 멀어지니 예전처럼 말씀보다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있어요. 공동체 안에서 매주 믿음의 지체들과 말씀을 듣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저 자신을 세상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었는지 새삼 느껴요. 그럼에도 저는 어찌하냐며 예수께 묻는 제자들처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공부시켜 앞서가게 할 수 있을까 열심을 내고 있어요. 세 아들을 통해 11절과 12절 말씀처럼 제가 못 이룬 세상 성공의 표적을 보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부활의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제 불안과 욕심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게 될 때 잔소리를 멈추고 그날 큐티 말씀을 보겠습니다. 큐티한 내용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공동체 지체들과 SNS로 나누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때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영육 간에 먹이게 하십니다. 세상의 표적을 구하지 않고 십자가를 길로 놓고 나아갈 때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백성이 우리를 통해 돌아오게 하실 줄 믿습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전적으로 타락한 저희를 먼저 찾아오셔서 불쌍히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어도 먹을 것이 없고 광야 같은 현실 가운데 있을 때가 있지만 주님이 저희의 모든 상황을 알고 책임져 주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미 수많은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의심하며 불신앙의 말을 하는 저희예요. 이제는 저희에게 주신 작은 것이라도 주께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것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많은 표적만 구하는 욕심을 회개합니다. 세상 성공의 표적을 자녀를 통해 보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날마다 말씀의 떡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길 원합니다. 특별히 공동체에서 멀어져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체들, 불안과 욕심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는 모든 이들을 찾아가 주시옵소서. 주님의 긍휼로 그들의 영과 육이 회복되게 하시고 이미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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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저에게 없는 걸로 특히 저 스스로를 늘 비난하고 미워하는 바리새인이 저인 것이 진짜 맞습니다.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제가 그 '멀리서 온 사람' 같아요. 너무 애쓰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멀리서 온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7개의 물고기, 2개의 떡에 감사하면서 풍성히 살 수 있다고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