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전라남도 끝자락 촌동네 4남 1녀중 막내였기에 따로 방이 없어 중학생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한 방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위험한 상황이 참으로 많았다. 30여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지금도 '내 가정을 살리고 지켜내는 능력의 유산'으로 점점 더 깊은 묵상과 깨달음을 통해 지금도 내 가정을 지켜주고 있다.
명절 때 고향을 가면 엄마의 유일한 소원은, '온가족이 예배에 가서 가족찬양 드리는 것'이었다.
5남매를 다 합쳐놔도 아버지를 능가하기 어려울만큼 여름농사는 농사대로, 겨울 바다농사는 바다농사대로 쉴새없이 살아왔기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아부지의 대표적인 바람 사건이 있었다. 사실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우리 동네를 왔다갔다 하면서 마른 수산물 장사를 하던 한 아주머니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돌아서 뭣도 모르는 순박한 시골 중학생인 내 귀에도 들렸다.
'느그 아부지 바람 났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집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숙소로도 우리집을 사용했던 바로 '그 부산 아지매'가 그 대상이란 것이다. 내가 알 정도면 동네에 소문이 다 퍼진것이다.
이런 와중에 가장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엄마는 오히려 안방에 나란히 같이 있는 아버지와 그 아줌마에게 재래식 가마솥 부엌에서 밥상을 차려 넣어 주고 계시었다.
가족 중에서 어려서부터 작지 않은 읍내 비슷한 모든 또래들에게 폭력 일진으로 유명해서 잊을만 하면 폭력 피해자 부모가 우리집 철문을 발로 걷어차며 쫓아오는 사건이 끊이지 않을 만큼 가장 혈기왕성하고 람보 영화 주인공 실베스타 스탤론 근육질을 자랑하는 둘째 형님이 전후사정을 다 알고 분기탱천하여 '내 오늘 아버지 허리를 끊어버리든, 이 아줌마를 패 쥑이든 아주 결판을 내리라'고 아버지 집에 쳐들어 왔는데 이런 꼬라지를 보니 눈깔 돌아가고 거품을 물었다. 당장 누군가 죽고사는 사단이 날 순간에,
키 150cm도 안되는 왜소한 어머니가 아들의 무지막지한 손을 딱 잡고 대문밖으로 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가만히 있어'
평생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무학자로서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였고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집에서 수없이 쫓겨나고, 머리채 잡혀 마루 기둥과 모서리에 수없이 머리가 찍히면서 '저러다 사람 죽는거 아닌가'하는 두려움마저 느껴질만큼 당하는 한없이 연약한 엄마였지만, 이 때 만큼은 무슨 생각이셨는지 느그 아부지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해도..'느그는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 자식들이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모든 일들의 피해자이자 당사자가 바로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도대체 왜 저러시나? 정말 남편을 향한 사랑이 그러해서 그런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가...' 안그래도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문제가 작은 아버지 가정에서 터졌다.
가문에 바람끼가 있는지 몰라도... 이 즈음에 작은 아버지가 속옷을 거꾸로 입고 있는 것이 발각되어 작은 엄마의 맹렬히 불타는 취조로 들통이 났는데 이 때 작은 아버지의 발언이 가관이었다.
작은 아버지 왈, '야! 남자가 바람피울 수도 있지. 너는 저 형수(울 엄마) 좀 본받아라. 너같이 생난리치지 않고 오히려 따땃한 밥상까지 차려주지 않느냐! 너는 왜 이모양이냐! 이런 니~미럴 여편네야"
억울함 폭발한 작은 엄마, 우리집 쫓아와서 엄마 면전에서 이렇게 퍼부었다
"형님 죽은면 내가 칼로 형님 가슴 열어서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한번 볼라요!"
안그래도 힘든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하는 패밀리였다. 전작도 있는터라 이쯤되면 사람의 계명과 전통에 따르면 이혼해도 무죄일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워낙 자유로운 백성이라 내 영혼은 수시로 지구와 안드로메다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고 뜻하는 일이 잘 안되고 잘 안맞으면 바로 엎어버리고 또 사업을 위해서는 어린 아들, 딸도 한국에 남겨 두는 것도 모자라 동남아에서 지뢰밭을 넘나들면서 목숨걸고 하다가 안되면 엎어버리는 삶의 연속과 아내와의 갈등 속에서도 '이혼'이라는 말은 단 한번도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말이 나온 객관적 원인제공을 따지면 내게 99%의 귀책사유가 있음은 100% 인정이 되지만 묶여있거나 걸리적 거리는 건 견디기 어려운 역마살 인생에 남자로서의 밑바닥 자존감도 있는 내 성격에 결코 용납되지 않는 아내의 이혼발언과 태도인데도 '이혼'이라는 단어는 내 입에 없었다. 희한하다 왜 그럴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들 교회'라는 희한한 공동체에서 3년간의 프로그램 참석과 35권의 담임목사님 저서 집중분해하는 밀착 탐사취재를 통해서 개신교 100년사에 보기 어려운 '구속사를 통한 가정의 회복'에 대하여 기존의 뜬구름 잡는 설교, 이빨들이 아닌 피투성이라도 살아남으라...는 알쏭달쏭한 성경구절이 '진짜 살아나는 말씀이자 증거'로 나타나는 현장을 통해서 새로운 하늘이 열리게 되면서
그 때 엄마의 심장 찢어지는 적용은 '가정을 살리는 지혜의 복음과 행함'이었다라는 것 그리고 남편의 자리에 대한 인정과 사랑을 넘어 "가정을 살리고 지켜내는 결단과 적용"을 하는 믿음이 있었음을 울컥하며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그래서 누구보다도 내 입에서 먼저 폭발했어야 할 이혼이라는 단어를 엄마의 삶으로 지워버렸구나! 내 믿음과 인격이 아니라 평생을 통한 가정사수를 여전한 방식으로 보여준 삶이 지금도 나를 덮고 내 가정을 덮고 있는 위대한 유산이구나'라는 것이 보였다.
결국 사람의 계명과 전통이 아닌 '가정 사수'의 계명을 85년 동안 일편단심 지켜주시고 가시었다.
반면, 정작 나와 직업 교사인 아내와의 25여년의 결혼생활에는 '이혼'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누가 봐도 100% 모범생으로 자라왔고 개신교인으로 살아왔던 아내에게 안정감(안정된 직장과 급여, 그리고 남편 자리 지키는)없는 자유로운 영혼은 힘들었나 보다
그런 와중에 아내의 오랜 영적 갈급을 알았기에 당시 듣도 보도 못한 우리들교회로 옮기고 싶다고 했을 때, 0.1초만에 허락하였는데 그런 아내가 구속사적(?) 복음을 깨닫고 왜 가정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죽음이 갈라놓기 전까지 이혼하면 안된다는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여러번 이혼을 외쳤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온전히 공개적으로 눈물의 회개를 하는 것"을 목장에서 목도하게 되었다. 진실로 쎄~게 놀랐다. 귀신하고도 친구먹다가 수틀리면 잡아먹는 해병의 심장으로도 씨게 놀랐다. 눈으로 보면서 믿기지 않았다.
나름 여러 전공도 했고 그 중에 신학도 있어서 보여주는 것 없이 어설픈 말을 하는 목사님과 대면하게 되면 신구약-한국 & 해외사례-교회사 맥락을 짚어가며 아주 그 입을 찢어버릴 기세로 반박하는 혈루가 넘치는 어지러운 캐릭터이지만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믿어지는데 이 마누라가 이렇게 되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다. 마누라가 관속에 들어가서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나야만이 이런 것이 가능하리라 완전히 믿어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범생이랑 25년동안 날마다 부대끼며 살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재미없는 갱상도 여자에다 또 음식 솜씨는 어떠한가! 이번 생은 망했구나. 그러니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었다.'
이랬던 아내가 그렇게 되었다.
이 또한 아내의 인격과 믿음이 갑자기 천사의 수준이 되어서가 아니라, 되었다 함이 도무지 없는 살얼음 가정에서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눈물나는 은총의 섭리였음이 깨달아졌다.
무학자요 평생 시골에서 살다 시골에서 생을 마친 어머니 그 한 사람이 그 어떤 학력, 학식, 전문 종교인, 직업 종교인들도 삶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위대한 믿음의 유산,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묘비에 깊게 패인 글자보다 더 지워지지 않을 복음의 진수, 믿음의 진수를 평생의 삶으로 보여주었고 내 가슴에 살아있는 증거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사람(1972.8.15~)은 죽어도 기도는 죽지 않는다"는 이 죄많은 인간이 붙잡고 있는 좌우명에
"사람(1937~2021.10.15)은 죽어도 삶으로 보여준 복음은 죽지 않는다"는 생명의 좌우명을 엄마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소름끼치는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