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 이상한 불신 ♱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마가복음 6장 1절에서 6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려면 첫째, 배척을 잘 당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때부터 오히려 이 세상이 우리를 주목하여 배척하기 시작하지요. 하나님이 이런 배척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거절과 떠남을 통해서 우리의 불신이 신앙으로 바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절에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고 해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2절에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랍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심지어 3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하며 예수를 배척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십이 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자도 낫게 해 주시고 죽었던 소녀를 살려 내고서 고향에 가셨으면 사람들이 열광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배척합니다. 이런 장면을 제자들에게 다 보여주십니다. 제자들로서는 병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내가 이런 분의 제자다’하며 으스대고 대접받기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일랑 조금 더 갖지 말라고 미리 배척당하는 모습을 본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귀신 쫓고 복음 전할 때 대접받을 것을 기대할까봐 파송하시기 직전에 이렇게 양육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전도하다 배척받아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바래요. ‘당연히 있어야 할 일이다’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남도 아닌 고향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아니 목수 아들이? 어릴 때 나랑 놀던 그 예수가?’ 하는 외적인 선입견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이렇듯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요. 저도 거듭나기 전에는 예외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류를 향해서 달려갔지요. 그러니 공부 못 가난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제 사전에 없기를 바랐어요. 그런 선입견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참 많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수도 없이 저를 밟아주신 덕분에 수많은 거절과 배척을 당하며 비로소 제가 만나는 사람의 부류까지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주로 호텔에서 밥 먹고 세상에서 잘 나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면 지금은 학벌이 좋든 안 좋든 가진 게 있든 없든 힘든 분들이 가장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조건 힘든 분들이라서가 아니고요. 그런 분들이 말씀이 잘 들리시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게 만나고 싶어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전도하다가 배척당한 적이 있습니까?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배척하진 않나요? 요즘 누구를 자주 만납니까? 돈 많고 세상에서 잘 노는 친구들인가요? 공동체 지체들인가요?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려면 둘째, 내 옆에 믿지 않는 사람을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4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라고 해요. 이 말씀은 곧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고향과 친척, 심지어 내 집에서조차 존경받으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족이 제일 힘들죠. 어릴 때부터의 내 모습을 다 알기에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생각하며 그 입에 말을 끝까지 변하지 않는 가족을 내 옆에 두신 것은 결국 나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끝없이 애통함으로 눈물 흘리며 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죠. 저 역시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어요. ‘어느 때까지니까’ 수없이 기도했지요. 그런데 반드시 구원의 때는 옵니다. 자기 집 외에서는 이 말씀을 모두 존경하니 내 가족을 하나님께 맡기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아갈 때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5절에서 주님은 왜 고향에서 더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을까요? 권능을 잃어서가 아닙니다. 큰 병 고쳐 주고 죽은 사람 살려도 사람들이 주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더는 행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인 구원은 있어야 하기에 주님은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십니다. 권능을 보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배척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심히 안타까워하세요. 우리가 아무리 전도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 믿는 나를 배척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있지요. 그때는 그 자리를 잠시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영원히 외면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영혼을 늘 안타깝게 여기며 기도해야 해요. 적용 질문이에요.
♱ 전도하다가 배척당한 적이 있습니까? 내 가족을 하나님께 맡기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아가나요? 끝까지 안 변하는 가족만 붙들고 있진 않나요?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배척하지는 않습니까?
전도하는 아내를 욕하던 자신의 옛 모습이 생각나 복음을 거절하는 친구의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쁜 짓을 했어요. 이혼 가정의 아픔으로 상처받은 그 무리와 유흥가를 드나들며 허랑방탕하게 지냈지요. 그러다 삶에 회의를 느껴 검정고시를 보고 전문대에 진학했어요. 그 후 아내를 만나 복음을 접했지만 저는 욕설을 하며 거부했습니다. 어느 주일 억지로 간 교회에서 설교를 듣던 중에 아버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어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그 단어가 제 마음을 움직인 거예요.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양육 훈련을 받으며 난생 처음 평안을 얻었어요. 그래서 친구들도 나처럼 평안해지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 큐티인을 전했지만 한 친구는 책을 던졌고 다른 친구들도 ‘너무 빠지지 말아라’ 하며 거부했어요. 순간 화가 났지만 3절에서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들처럼 전도하는 아내를 욕하며 거부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 '그래도 욕은 안 하니 친구들이 나보다 낫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는 예전에 '제 남편만큼은 교회에 오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했대요. 저 같은 사람도 살리신 주님을 믿고 5절 말씀처럼 주님이 친구들도 안수하여 고쳐 주시길 기도할게요. 저의 적용은 ‘매일 아침 어머니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형이 교회에 나오길 기도하겠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 큐티인을 전하고 사무실에도 여분의 큐티 책을 비치해 두겠습니다.’입니다.”
6절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고 해요. 여기서 ‘이상히 여기셨다’는 말은 원문을 보면 안타깝게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아가십니다. 결국 어떻게 되나요? 예수님의 모친 형제 모두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지요. 이렇듯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애통하며 눈물 흘릴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아갈 때 모든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설 명절입니다. 고향에 가서 만날 믿지 않는 가족과 친척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요. 그러나 배척받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품고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시길 바라요. 그리고 다른 영혼의 구원을 위해 담대히 나아가면 반드시 구원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는 은혜를 경험하는 이번 설 명절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복음 전하는 자의 길을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조금만 배척당해도 상처받고 전도를 멈춥니다. 외모와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며 내 가족의 불신 때문에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주님, 이런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 때문에 고통 받는 모든 지체를 찾아가 주시옵소서. 배척 받아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내 가족을 주님께 맡기고 다른 영혼의 구원을 위해 담대히 나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끝까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그들도 때가 되면 반드시 주께서 돌이켜 주실 줄 믿습니다. 저희의 모든 불신이 믿음으로 변하게 하시고 주님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저희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