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15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1)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서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나가려면 첫째, 예수께로 나와야 합니다.
1절 2절에서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시고 배에서 나오자마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는 집이 아닌 무덤 사이에 거처하던 외로운 자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특징이 어떠한가요?
4절에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고 해요. 귀신들린 상태였으니 얼마나 사납고 밤낮으로 혈기를 부리며 자해를 일삼았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를 가까이하지 않고 그의 행동을 용납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흡사 바알 신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피를 내던 바알 숭배자들의 행동과 비슷하죠.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 거라사 광인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해요.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교제하지 못하면서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할 때가 있잖아요. 겉으로는 번듯한 집에 살아도 속사람은 죄사슬에 매여 무력하게 지내기도 합니다. 술과 도박, 음란, 폭력 중독으로 자학하며 가정과 공동체에서 소리 지르며 살아가는 모습도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 몸을 더럽게 하고 상하게 하는 것이 귀신의 특징이에요.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우리는 내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거룩을 지켜야 하지요. 그런데도 죄와 중독에 빠져 나를 더럽히는 것은 이 거라사 광인처럼 스스로를 쇠사슬로 묶는 행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내가 끊어내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나를 옮아매는 죄와 중독은 무엇인가요? 거라사 광인처럼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영육간에 방황하고 있지는 않나요?
더러운 귀신이 나가려면 둘째,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주님께 드러내야 합니다.
6절 7절에 귀신 들린 자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이렇게 말해요.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렇게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지식은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한 지식이 아니지요. 그러니 예수님에게 자기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가지만 간혹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라고 외치곤 하지요. 믿음의 공동체에서 권면을 들어도 ‘제발 내 사업이 성공할 때까지만 나를 좀 놔두세요. 내가 불신교제하고 결혼할 때까지 나를 내버려 두세요. 이 중독이 너무 달콤하니 간섭은 그만 하세요.’하며 선을 긋습니다.
그런데 8절과 9절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시면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세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있어요. 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볼 때 가능하지요.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나이도 이름도 가정도 없어요. 누군가와 맺은 관계도 없고 인생의 의미조차 없으니 자신을 억제할 필요도 없었겠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니 더욱더 소리를 지르면서 자해했던 거예요.
그런 그가 9절, 10절에서 뭐라고 하나요?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해요. 이 군대는 당시 로마 부대의 한 단위로서 대략 6천 명 정도였어요. 너무도 많은 악한 세력이 이 사람의 인격을 유린하고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죠. 오늘날도 그래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십자가의 예수님은 나와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치와 아픔을 드러내셔서 치유하기를 원하시지만 나는 정작 드러내는 게 싫다며 주님을 밀어내고 피하려고만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말씀이 들릴 때 회개하기보다 나와 상관없다며 거부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를 위한 교회 공동체 조언에 나를 괴롭히지 말라며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으로는 믿음 좋은 교회 오빠였으나 아내와 두 아들을 학대하는 귀신 들린 광인이었음을 말씀을 들으며 깨달았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간증이에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닌 저는 겉보기에 겸손하고 믿음 좋은 교회 오빠였어요. 선교단체에서 만난 아내와 행복을 약속하며 결혼했지만 아내를 향한 마음은 차갑게 식었고 오히려 답답한 모습에 화를 냈어요. 만둣국에 어묵을 넣었다고 화내는 등 사소한 일로 윽박지르며 상처를 주었지요. ADHD와 불안 강박이 있는 두 아들을 키우느라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로하기는커녕 양육 방법이 잘못되었다며 정죄했어요. 분노는 자녀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제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며 협박하고 심하게 때렸어요. 2절과 4절 말씀처럼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인 저를 가정에서는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지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아내를 정죄하면서도 뒤로는 음란을 즐기며 제 몸을 해쳤어요. 저는 그 후 지인의 소개로 큐티하는 교회 공동체로 인도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아내가 내 무관심으로 상처받고 아이들이 나의 일관성 없는 모습에 불안했겠다라고 깨달아졌어요. 예수님이 말씀과 공동체로 만나주시지 않았다면 저와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군대 귀신 같은 음란과 교만을 쫓아내지 못했을 거예요. 이런 저를 소그룹 리더로 불러주셔서 귀신 들렸던 모습을 나누며 섬기게 하신 하나님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아내가 다른 사람과 통화할 때 옆에서 간섭하지 않고 입을 다물겠습니다. 사춘기 아들들에게 잔소리하기보다 격려하겠습니다.’입니다.”
11절에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고 해요. 이 ‘마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입니다. 큰 떼가 바다를 향해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합니다. 2천 마리의 돼지 떼가 죽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로 보면 엄청난 손실이에요. 하지만 주님은 이 세상 어떤 가치보다 한 영혼이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2천 마리의 돼지를 희생시키신 것이죠. 이 광경을 본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귀신 들려 날뛰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이렇듯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 때 비로소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제가 섬기는 우리들 교회에서도 각종 죄와 중독에 사로잡힌 분들이 오셔서 예배가 회복되면 가족과 주위 지체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시더라고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니 자기 죄를 깨닫고 분별력이 생기고 가족과 이웃들과의 관계가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내가 어떤 상태에 있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이 바로 회복의 시작이에요. 그러므로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먼저 살아나고 가족과 주위 지체들이 살아나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래요. 그래서 오늘 이 하루가 마침 찾아온 하나님의 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거라사 광인처럼 죄와 악한 습관의 무덤 사이에서 거처하던 저희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진정한 교제를 나누지 못한 채 외로움으로 죄의 쇠사슬에 매여 지내온 인생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교회 공동체의 권면을 들으면서도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며 나를 내버려 두라고 했던 완악한 죄인입니다. 내 수치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 주님의 말씀 앞에 서기를 주저해 온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안에 모든 죄와 악한 습관과 중독이 주님의 능력으로 떠나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깨어진 관계들이 회복되고 무너진 가정이 다시 세워지게 도와주시옵소서. 덤으로 주신 이 생명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일평생 주님의 은혜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불안장애 ADHD 등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찾아가 주셔서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고치시고 살려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