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8-12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 부르심을 받은 자들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복을 비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첫째, 도리어 복을 비는 사람입니다.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해요. 마지막으로는 이 서신을 끝맺는 것이 아니라 2장부터 권면해 온 순종에 관한 일들을 요약한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너희가 다 가져야 할 태도를 다섯 개의 단어로 설명해요.
먼저는 ‘마음을 같이하여’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같은 말씀을 들을 때 가능하지요. 같은 말씀을 듣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구원을 향해 갈 때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로, ‘동정하며’입니다. 이는 ‘체휼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함께’라는 단어와 ‘고통받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함께 고통받는 이’라는 뜻이지요. 이는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는 문장에 쓰인 단어입니다. 지체의 아픔에 함께 참여하며 함께 고통받는 것이 이 ‘동정하며’의 뜻입니다.
세 번째로, ‘형제를 사랑하며’예요.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그 바탕을 둔 사랑이에요.
네 번째로, ‘불쌍히 여기며’예요. 이것은 죄사함의 용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며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달을 때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겸손하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인간의 질서 안에 들어와 자신을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해요.
베드로는 이런 다섯 가지 태도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라고 권면하나요?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지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세상에서는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으로 부르심을 받았나요?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세요. 참 쉽지가 않지요. 누군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면 악으로 갚아주어야 직성이 풀리잖아요. 참고 있으면 바보 같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도리어 악을 행한 사람들이 그 악을 잊어버리고 잘 사는 것을 보면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복을 빌라’ 하세요.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해요. 악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빌면 그 복을 빈 우리가 이어받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악에 대해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악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악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빌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바로 이 십자가예요. 복을 이어받는 인생은 하나님이 심판자이심을 고백하며 복을 비는 인생이에요. 우리가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누군가가 나에게 행한 악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갚아 주려 하지는 않나요?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내가 복을 빌어 줘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부르심을 받은 자는 둘째,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0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해요. 베드로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생명을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시편 34편 12절에서 16절을 인용한 말씀이에요. 시편 34편 12절과 13절에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해요. 또 16절에서는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뿐만 아니라 부활로 다가오는 영생을 사모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래서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구원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지요. 다가올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우리는 악한 말을 그치면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삶을 절제하게 되지요. 먼저 자신의 혀와 입술을 절제하고 방탕하지 않도록 생활을 절제합니다. 더 나은 생명이 있음을 알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은 절제하며 기다릴 수 있어요. 이것이 인내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악을 떠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내게 주신 생명, 즉 시간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시간까지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시간, 자녀, 건강 등 내게 허락하신 생명을 사랑하고 있나요? 더 좋은 것을 기다리며 지금 내가 끊고 절제해야 할 것과 떠나야 할 악은 무엇인가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동체의 사랑으로 자신의 상처와 문제를 깨닫고 이제는 누군가의 지체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상담원과의 전화연결에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니 폭언 등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안내 멘트가 나와요. 그때마다 저는 ‘지금 이분은 당신의 지체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들어요. 주민센터에서 대민 업무를 담당하던 어느 날 화난 목소리로 자기 아이를 찾는 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어요. 그분은 대뜸 제게 사과하라며 소리 질렀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 보라고 고함을 쳤지요. 그때 문득 예전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권한 있는 상사를 바꾸라며 막말하고 억지 부리던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8절 말씀처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던 저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들어주는 교회 소그룹 지체들 덕분에 저의 교만과 이기심, 피해 의식을 보게 되었고 가족을 향한 악한 말을 그치고 입을 다물 수 있었어요. 또한 소그룹 부리더로 지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니 제 상처와 문제에 함몰되지 않고 긍휼한 마음으로 주께 은혜를 구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제게 소리 지른 그 어머니의 외침이 ‘나는 예수가 필요해요’라는 소리로 들려 그분이 예수님을 믿고 복을 이어받도록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원수 갚아달라는 기도가 전부였던 저를 대적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동체 지체들의 간구가 깨달아져 눈물이 나요. 저 역시 마음을 같이 하는 누군가의 지체가 되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잠들기 전에 소그룹 지체들의 기도 제목을 보며 기도하겠습니다. 사건이 올 때마다 오늘 큐티 말씀이 뭐였지? 하고 생각하겠습니다.’입니다.“
12절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해요. 역시 시편 34편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의인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며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지요. 반면에 악인은 ‘내가 옳다 내가 할 수 있다’를 부르짖는 사람들이에요. 마지막 날 죽음 앞에서도 ‘내가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것이 악인입니다. 그런 자들은 그 행위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같은 고난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를 고백하며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누군가가 내게 악을 행하면 악으로 갚으려 하고 욕하면 같이 욕하려 하는 저희들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용서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하는데 억울한 상황에서는 그것이 잘 생각이 안 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함으로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길 원합니다. 도리어 복을 빌어주길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악을 끊을 힘이며 주님의 부르심이라 하시오니 가해자와 피해자를 따지는 인과응보를 넘어서서 오직 주님 앞에 선 죄인으로서 이 사명 감당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삶을 절제하고 악에서 떠나 내가 틀렸음을 고백하며 나아갈 때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께 응답받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다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들로 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