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1-9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 ♱
하나님 아버지,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을 이어가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을 이으려면 첫째,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베드로전후서의 수신자는 오늘 1절에 보듯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등지의 소아시아에 흩어져 믿음 생활하던 성도들이에요. 당시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로마로부터 혹독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일부는 카타콤 지하 무덤에서 그야말로 정처 없는 나그네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를 믿기는 했지만 죽을 때까지 가시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끝날 사람들이 바로 이 편지의 수신자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히브리 약소 민족이 가장 거대한 로마를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요.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도 산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평강하게 여전한 방식으로 살면 거대한 로마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본향,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목적도 없고 정처도 없이 살아가는 나그네처럼 보일 수 있지요. 하지만 아브라함도 땅이 없어 나그네로 살았지만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천국을 본향으로 삼고, 산 소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멋있는 나그네는 이렇듯 인생의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2절에 보니 베드로는 나그네 된 우리를 일컬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동원하셔서 100% 죄인인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복음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피로 속죄함을 받도록 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은혜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핍박 가운데 있어도 그렇지요. 특별한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걸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의 때일수록 더욱 거룩하기에 힘쓰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증거를 보이는 인생입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은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적용해 보세요.
♱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향해, 산 소망을 가지고 나그네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까? 헛된 망상을 품은 채 세상 부귀영화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을 이으려면 둘째, 시험과 연단을 잘 받아야 합니다.
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근거는 붙들어야 할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주님의 부활과 거듭남을 믿어야 해요. 부활 신앙이 없으면 백날 헛된 망상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 유업은 백 년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영원한 기업이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이지요.
그런데 5절에 보듯이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해요. 천국도 구원도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언급한 5절과 시험과 근심을 언급한 6절 말씀이 문맥상 앞뒤가 맞으려면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사 ‘그러나’가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베드로는 6절에서 앞 문장을 뒷받침해 주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썼을까요? 이것은 곧 믿음에는 반드시 시험과 근심이 필수적으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7절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이에요. 연단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이 연단을 받아야 진짜 의지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연단을 거치지 않은 칭찬과 존귀와 영광은 모두 가짜예요. 내 자랑만 될 뿐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날마다 주시는 말씀의 순종함으로 집안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구원의 증거를 잘 보이고 있습니까? 산 소망을 갖기 위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시험과 연단은 무엇입니까?
외도와 경제적 고난으로 돌고 돌아서 이제야 주께로 돌아와 산 소망을 품게 하신 주께 감사하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당대 신앙인으로 믿음이 연약해요. 부모님이 불교를 믿으셔서 어릴 때는 석가탄신일에 어머니와 함께 절에 다녔지만 성탄절이 되면 과자를 먹으러 교회에 가기도 했어요. 하나님은 이런 제가 선택받은 나그네임을 알게 하시려고 재수할 때는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복음을 듣게 하시고 대학생 때는 전도모임과 여름성경학교에도 참석하게 하셨지요.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뒤에 다시 세상으로 떠내려갔어요. 그럼에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결혼 후 아내가 먼저 교회에 다니게 하셨어요. 그리고 저의 외도 사건이 드러나 많이 힘들어하던 아내는 ‘나랑 같이 교회 갈래요 아니면 이혼할래요?’하며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혼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 뜰을 밟았지요. 그리고 9년이 지나서야 느지막이 세례를 받았어요. 사실 저는 믿음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복 받고 싶은 마음에 교회를 다녔어요. 그러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찾아와 지방으로 울며불며 내려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일로 말씀의 소중함을 알고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가는 은혜를 누리고 있어요. 저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7절 말씀처럼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자라고 환난 중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저의 지질한 모습과 물질 우상을 솔직히 나누겠습니다. 모든 공예배를 빠짐없이 드리며 이 땅의 복보다 하늘의 유업을 사모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입니다.”
8절과 9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 구원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을 이어가고자 오늘도 삶의 분명한 목적을 갖고, 주신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라요. 또한 지금 내게 주어진 시험과 연단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은혜와 평강의 주님, 오늘부터 베드로전서 큐티를 시작하게 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저마다 헛된 소망이 있고 집집마다 자녀와 돈, 질병의 문제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서 날마다 근심합니다. 주여, 이제는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비록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저희가 되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도 더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십니다.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고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한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큐티하며 주의 뜻을 잘 살피고 영혼 구원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여건도 허락해 주시옵소서. 하늘에 간직한 유업을 이어가도록 은혜와 평강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