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4:1-5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
하나님 아버지,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가운데서도 성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순종하도록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순종하려면 첫째, 내 기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1절에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고 해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셨을 때 요나가 보인 최초의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매우 싫어하고 성내는 것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요나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가 용서받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예요.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아이들이 예수 믿는 우리 아이보다 좋은 대학에 붙으면 화가 난다는 분들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나쁜 자는 망해야 한다는 편견과 민족주의적인 사고가 요나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긍휼이 나에게 임하면 감사한 일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임하면 역겨워지는 것이 우리의 죄성입니다. 그러니 이 옳고 그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싫어하며 성을 내는 것이지요. 요나는 선지자였지만 성숙한 믿음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어요. 말씀을 전하면서도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진정으로 알고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과 자기 감정을 우선하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말 그대로 사역이 아닌 일을 한 것이지요.
2절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불평을 막 해대요. 그런데 불평의 내용이 어떻습니까?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신 하나님인 줄 내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망친 거예요. 이러면서 아주 비꼬기까지 합니다. 선지자라는 요나의 수준이 이 정도였으니 당시 백성은 얼마나 더 형편없었겠어요. 그 시대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번영 속에서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때였고 요나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3절에서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지 않는 것을 보며 심지어 죽고 싶다고까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얼핏 보면 비장해 보이지만 사실은 유치한 분노의 폭발이지요. 자기 말이 성취되지 않았기에 선지자로서 체면도 상하고 원수 같은 앗수르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에 감정적으로 거부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예언했으니 망해야 해’라는 자기 의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요나는 죽기보다 싫은 것이죠. 하루에 12만 명이나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보여주셨는데 요나는 불평하며 위로를 얻지 못해요. 어떻게 보면 아주 성인 아이 같은 존재입니다. 요나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이 더 중요했어요. 말씀은 전했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반응하고 있는 거예요. 적용 질문 드립니다.
♱ 요나처럼 옳고 그름으로 원수 같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보다 내 감정, 내 기준이 앞서서 성내고 실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순종하려면 둘째, 분노의 초막을 떠나야 합니다.
4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고 해요.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질문을 하십니다. 요나의 미성숙한 편협함, 분노와 민족주의적인 사고를 다 알고 계심에도 그를 버리지 않으세요. 그 시대의 영적 상태가 너무 형편없으니 요나 정도의 인물이라도 사용하셔야 했던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은 요나의 분노가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의 때문임을 지적하시는 거예요. 요나의 분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기준 삼은 분노였기에 결코 옳을 수가 없는 것이죠.
4절의 질문을 듣고 요나가 어떻게 합니까? 5절에 보니 아무 말 없이 성읍 동쪽으로 나가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자기 생각대로 또 움직입니다. 정말 말 안 듣는 사춘기 아이 같지 않습니까? 요나는 이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그저 구경꾼의 자리로 물러나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니느웨를 멸하시나 한번 보자. 그래 잘못한 놈들은 망해야지. 내 예언이 틀렸어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끝까지 보고야 만다.’ 뭐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요나는 초막을 짓고 그늘 아래 앉아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기대의 성취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지요. 교회는 나오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지도 않고 예배를 그저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공동체 안에 있긴 하지만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보다 비평가로 서 있는 사람들도 있지요. 말씀도 없고 순종도 없고 겸손도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지도 않는 나만의 초막에서 인생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안타까운 삶일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 앞에서 무엇 때문에 성내고 있습니까? 요나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구경꾼의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나요? 분노와 실망의 초막에서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걸어가고자 내가 해야 할 적용은 무엇인가요?
실직의 때를 보내며 자기 생각대로 때마다 이직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기를 소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제가 생각하고 계획한 일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화가 나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여러 번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돌이켜 보면 제 안에 물질과 명예 욕심도 있었지만 제가 세운 계획과 사람을 믿으며 회사를 옮겨 다닌 거예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제 계획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 놓이면 또다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을 반복했죠. 이스라엘의 적 앗수르의 니느웨 성이 멸망하지 않자 화내는 요나처럼 저도 사람을 믿고 옮긴 회사에서 제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회피하는 마음으로 사표를 던졌어요. 그리고 제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실직의 때를 보낼 때면 좌절과 원망의 초막을 짓고 하나님께 떼를 부렸지요. 하지만 굵은 베옷을 입고 돌이킨 니느웨 사람들처럼 저도 교회에서 양육 훈련을 받고 예배와 말씀의 자리로 나아갔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재앙이 아닌 구원과 회복을 허락하셔서 다시 일자리를 주시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견고한 계획을 세우고 계산적으로 살아온 저를 돌이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요나처럼 화낸 것을 회개하고 4절에서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시니 이제는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내 생각대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사소한 일도 공동체에 묻고 나누겠습니다. 직장생활을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제 욕심으로 이직한 일과 실직의 아픔을 나누겠습니다.’입니다.”
말씀을 전한 요나조차도 자기 뜻을 내려놓지 못해서 결국 하나님께 분노하고 초막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책망하시지 않고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며 다정하게 질문하십니다. 내 감정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 삐져 있지는 않으신가요? 말씀은 들었지만 동행은 끊고 예배의 자리에는 앉아 있지만 구경꾼으로 전락한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앞서서 지금도 마음의 초막에 앉아 실망과 분노 속에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다시 일어나시길 바라요.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 그분과 동행하는 것임을 믿으며 분노의 초막을 박차고 나와서 말씀 따라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오늘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요나처럼 내가 원하는 결과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뜻이 꺾였다고 분노하고 하나님의 뜻이 펼쳐짐에도 불만을 품는 저입니다. 내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서 저 사람은 망해야 하고 이 사람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주님의 자비를 가로막은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는 불순종의 초막을 걷어내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길 원해요. 하나님이 회개한 니느웨를 기뻐하시듯 우리의 회개를 기뻐하셔서 다시 일어나 걷기까지 기다리시는 줄 믿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자리에 앉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을 택하도록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오늘 하루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