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3.토.요나 1장 17절-2장 10절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햇수로 34년 은행생활을 마무리하는 2025년 1월, 연초인 2일에 직장 종합건강점진을 신청하여 사십대부터 해마다 받았던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받았습니다. 내시경을 할 때 비 수면으로 하였기에 내시경 기구를 목구멍으로 삼켜 기구가 위장에 헤집고 들어갈 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져 자연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위 내시경을 받은 다음 대장 내시경을 받을 때는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검진센터에서 이례적으로 대장 내시경부터 하자고 하여 대장 내시경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전 배변이 제대로 안되었는지 대장이 막혀 의사도 내시경 기구로 막힌 내장을 뚫느라고 애를 먹고 저도 의사 지시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고통 때문에 신음을 하였습니다. 모너터 화면속에서 내시경 기구가 장기를 헤집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장면을 보며 생각 같아서는 검사를 중단시키고 싶었으나 내가 저항할수록 고통이 더할 뿐이라 눈은 모니터 화면 속의 내장 속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의 틀에 달리사 옴짝 달싹할 수 없으셨던 예수님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환경과 고통이 나의 눈을 성소로 향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갇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눈을 성소로 향하여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구원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을까요? THINK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예비하신 물고기
파도로 흉용한 바다 속으로 요나가 던져지는 순간 미친 듯이 날뛰던 파도와 물결이 잠잠해졌습니다. 뱃사람들은 요나가 바닷속으로 빠져들어 물고기 떼의 밥이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요나도 내가 내 죄 때문에 이렇게 죽는구나 하면서 바닷속을 빠져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뱃사람들과 요나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갇혀서 바닷 속을 표류하였습니다. 천길 바닷속이라는 깜깜한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물고기 뱃속이라는 고난의 환경에 갇혀있는 것이 불순종하고서도 자기 죄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요나를 양육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드리는 기도
요나는 자신이 숨쉴 수 없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때는 이제 죽었구나 했는데 물고기가 자신을 삼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자 미량의 산소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부족해지는 산소로 숨 막히는 환경이 자신을 죄어 오자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파도가 흉융한 고난이 와도 흔들리는 선창 밑에서 잠을 청하며 기도하지 않았던 요나가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통해 고통과 죽음의 위기를 직면하자 여호와께 불러 죽음에 직면한 자신을 처지를 아뢰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고난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아뢰는 그의 기도에 대답하셨습니다. 그는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어 있는 물고기 뱃속을 스올의 뱃속이라고 고백합니다. 죽음의 밑바닥, 무덤의 밑바닥, 지옥의 밑바닥처럼 사방으로 둘러싸여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절대 절망의 자리에 있는 자신의 연약한 실존을 깨닫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주님이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 고난이 우연이나 재수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바닷속에 던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행위 당사자가 되셔서 나를 깊음 속에 바다 가운데에 던지시고 큰 물이 나를 두르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치게 하셨다고 모든 고난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고난이 주님의 명령을 고의로 듣지 않고 거슬러 행하는 선지자를 주의 목전에서 쫓아내시는 영원한 추방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요나에게 추방의 형벌을 내리시고 고난을 더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가 돌이켜 살게 하시려는 구원의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닷풀이 내 머리를 감쌌다고 고백합니다. 큰 물고기가 삼키는 데로 물이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에게 덮쳐왔고 작은 물고기 떼와 수초들이 쏟아져 들어와 그의 머리에 떨어지고 휘감았습니다. 그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다고 고백합니다. 큰 물고기는 소화도 안되는 사람 때문에 바닷속을 온통 위아래로 헤집고 다니다가 산의 뿌리, 해저 2만리까지 내려갔습니다. 바닷속은 수심이 10미터 깊어질수록 기압이 1기압씩 높아진다고 합니다.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제곱 센티 면적에 1킬로의 힘이 추가로 더해집니다. 그래서 해저에 사는 물고기들은 다 납작합니다. 요나는 그 수압의 빗장에 갇혀 몸도 뇌도 마음도 짜부러들어 숨이 막히다 못해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해저에서 오랫동안 겪으면서 이제는 진짜 죽나 보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사 바다위로 뜨게 하신 것입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 피곤할 때에 내가 죽어가는 순간에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여호와께 상달되는 기도는 내가 펄펄 살아서 드리는 기도, 내가 강해서 태산이라도 옮길 기세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내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여호와를 생각하는 기도입니다. 내가 약할 때, 내가 절망할 때, 나의 한계에 직면해서 부르짖을 때 그 기도가 주께 이르러 주의 성전에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약할 때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강해지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내가 한계에 부딛혔을 때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비로소 일하십니다. 내가 절망하는 상황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시는 희망의 시간입니다.
감사하는 목소리로
바닷속 물고기 뱃속에서 깨달은 요나의 죄가 무엇입니까?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게 갚겠나이다. 요나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거짓되고 사악한 앗수르와 그 수도에 사는 니느웨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을 당해 망해야 하고 앗수르에게 괴롭힘당하고 피해만 당은 착한 이스라엘은 무슨 허물과 약점과 잘못이 있어도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앗수르처럼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면서도 잘 나가고 잘 사는 자들을 부러워하는 기복신앙으로 똘똘 뭉쳐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자기 수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틀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감사는 봉다리에 싸서 꿍쳐놓고 열린 주둥아리로는 불만과 불신과 원망을 쏟아내고 서원은 물에 밥 말아 먹듯이 쉬 잊고 지키지 않는 거짓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통해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신과 베푸신 은혜를 버리고 감사치 않는 죄 서원을 지키지 않는 거짓된 자아를 발견하고 고백하며 절연하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이라는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님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죽어서라도 주께 갚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모든 자기 발견과 돌이킴과 회개를 일으킨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는 고백처럼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앗수르를 구원할지 말지,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할지 말지, 유다 백성을 구원할지 말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지 말지, 요나 자신을 구원할지 말지는 요나에게 달린 것도 니느웨 사람들에게 달린 것도 유다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달린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의 주권자이시고 주관자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이시오 세계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주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주권에 겸손히 무릎꿇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은 구원이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도, 사람들이 숭상하는 세상신이나 우상이나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구원의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호와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보혜사 성령님만이, 오직 성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요나가 절대진리를 깨닫고 입으로 고백하였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니 물고기가 해변까지 와서 요나를 육지에 토하였습니다. 요나가 실제적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구원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체험입니다. 내가 내 죄로 인해 죽었다가 예수님의 은혜로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체험입니다.
저는 대장내시경 기구가 내장을 샅샅이 훑어가는 것을 모니터 화면으로 보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대장 속을 해마다 내시경으로 비어내고 깨끗케 해도 여전히 내 속에서 솟아 올라와 용정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는 음란과 정욕과 욕심과 이기심과 자기중심성과 불신과 교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람을 외모중심으로 보는 안목의 정욕이 끊어지지 않고 올라오는 내 안에 끊어지지 않는 죄입니다. 또 학연과 지역감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자라올 때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닐 때 타교 출신들과 타지역사람들에게 당한 차별과 배신을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앙갚음학고자 하는 옹졸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세상 사람들의 잘나가는 모습 잘되는 모습을 여전히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것이 제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입에서 터져나오기 보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불만과 욕설이 터져나오는 연약함과 허물이 있습니다. 새해가 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많은 소원도 드리고 결심도 하지만 제대로 지킨 것이 없는 거짓된 자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롬 7:24)”는 사도 바울의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사역이 막힌 숨 막히는 고난의 상황, 자녀들이 신천지의 옥에 갇혀 있는 절대고난의 환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a)”한 바울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됩니다. 왜냐고요? 오직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구원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하여 달리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기 때문입니다. 저의 막힌 사역이나 자녀들의 신천지 탈출과 구원도 저의 노력이나 애씀이나 기도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께로부터 저와 자녀들과 가족들과 지체들의 구원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구원의 주님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적용하기) 매사에 하는 불평을 그치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다고 말로 표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