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1-7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올해도 주님의 부르심 앞에 도망가지 않고 순종하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망함을 당하지 않으려면 첫째, 도망하지 말고 사명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오늘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고 해요. 선지서의 전형적인 서두인데 여기서 핵심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요나는 들어야 하잖아요.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데 요나는 그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해요. 모든 불순종의 출발은 말씀을 듣지 않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이미 알고 계셨지요. 그 아버지의 이름까지 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서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핑계 댈 것이 없어요.
아밋대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은 ‘진실한, 신실한’이라는 뜻입니다.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라는 뜻인데 신실한 아버지에서 나온 비둘기같이 순수한 요나가 오히려 불순종의 길을 걷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2절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하세요. 니느웨는 요나가 가장 가기 싫은 곳, 이방인의 수도이며 원수 같은 땅이지요. 그러니 이 말씀을 듣고 싶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의 자비가 원수에게 임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맞지 않으니 동의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서 듣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듣기 싫은 말씀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할 수 있어야 해요.
3절에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라고 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접속사 ‘그러나’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라고 하시니 요나도 일어나긴 했지만 니느웨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도망쳐요. 말씀을 피해 내려간 곳이 욥바였고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고 해요. 환경이 다 맞아떨어지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일지라도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가 있어요. 게다가 그는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다고 해요. 불순종은 이렇게 값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 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피할 곳은 없어요. 그 중요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요. 눈앞에 길이 열린다고 모두 축복이 아닙니다. 마침 좋은 기회처럼 보여도 그것이 불순종의 문을 여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이 지금 가라고 하시는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가장 불편한 상황이나 사람이 혹시 니느웨는 아닌가요? 환경이 좋아 보인다고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진 않나요?
망함을 당하지 않으려면 둘째, 말씀을 외면하지 말고 불순종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4절에 보니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큰 바람을 보내십니다. 당시 다시스는 안전한 배를 만들기로 유명했는데 하나님이 손을 대시니 그 견고한 배조차 거의 깨어질 지경에 이릅니다. 우리는 종종 좋은 직장, 안정된 재정, 평화로운 가정을 내 신앙의 방주처럼 여기며 견고하리라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 어떤 것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어요. 게다가 이 풍랑은 지금 요나 혼자만 당하는 게 아니에요. 요나 한 사람의 불순종이 공동체 전체를 뒤흔듭니다. 이렇게 흔드시는 이유는 완전히 깨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의 깨지게 하심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5절의 장면은 너무도 아이러니하지요. 이방인들조차 위기의 순간에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면서 기도하는데 선지자인 요나는 배 밑창에서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마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과 단절되니 결국 사람을 향한 무관심으로 이어집니다. 불순종의 무서움은 무감각입니다. 사공들은 살기 위해서 물건들을 바다에 내버리는데 요나는 말씀을 버렸지요.
6절에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라고 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선장이 오히려 선지자 요나에게 영적 경고를 날리네요. 하나님의 사람이면 깨어서 기도해야지 왜 이렇게 무기력하냐고 묻는 거예요. 곧이어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실 요나가 해야 할 말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길 요청합니다. 선지자로서 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회복은 이런 부끄러움을 직면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7절에서 이방인들은 원인을 밝히고자 제비를 뽑아요. 놀랍게도 가장 미신적인 방법처럼 보이는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은 요나를 드러내십니다. 말씀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죄를 드러내실 수밖에 없지요. 그것이 풍랑이든 제비든 사람들의 말이든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나의 불순종이 가정과 공동체를 흔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어디에서 잠들어 있습니까? 믿지 않는 지체들을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들은 적이 있나요?
아내가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는 큰 바람 같은 사건이 오고서야 영적 잠에서 깨어 교만과 사랑 없음을 회개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외적인 것을 중시해서 배우자감을 고를 때도 외모가 예쁜 아내를 만났어요. 저의 아내는 원래 불교 신자였는데 저는 ‘가진 게 없으니 내 말을 잘 들을 거야’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결혼했어요. 그러나 결혼 생활은 다툼의 연속이에요. 사소한 말 한마디로 시작된 갈등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는 싸움으로 번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교회에 다니겠다며 저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어요. 알고 보니 아내는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아내가 외식을 즐기고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두고 음주를 즐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아내를 정죄하고 고발했어요. 우울증을 앓던 아내는 자책하다가 더욱 무기력해졌어요. 결국 술을 마신 후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는 큰 바람 같은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3일 만에 깨어난 아내는 우울증이 이렇게 죽음과 가까운 줄 몰랐다고 말했어요. 그제야 저는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는 6절 말씀처럼 영적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을 찾았지요. 그리고 ‘나는 옳고 아내는 틀렸다’라는 제 기준이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갔음을 깨달았어요. 큰 바람 같은 사건으로 저의 교만과 사랑 없음을 보게 하시고 진정한 회개만이 아내를 살릴 수 있음을 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아내에게 진심을 담아 ’사랑해’라고 자주 말하겠습니다. 설거지, 쓰레기, 분리, 배출 등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집안일을 하겠습니다.’입니다.”
오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의 길을 택했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추적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 첫날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니느웨가 있다면 더는 도망가지 마시길 바래요. 불순종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올 한 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요나처럼 말씀을 듣고도 늘 도망치려는 우리의 완악함이 있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니느웨는 가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다시스를 향해 스스로 배삯까지 지불하며 불순종의 길을 택합니다. 이중과 감정으로 주님의 뜻을 피해 도망치려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풍랑 가운데 있든지 그 풍랑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않게 하시려는 주님의 흔들어 깨우시는 사랑임을 믿습니다. 사공들처럼 애쓰고 물건을 버리고 신을 찾으면서도 정작 기도하지 않는 우리의 잠든 심령을 깨워주시옵소서. 믿지 않는 자들의 입술을 통해서라도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말씀하실 때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회개하길 원합니다. 새해 첫날 우리의 발걸음을 붙드셔서 다시스가 아니라 니느웨로 향하게 하시고 피하는 길이 아니라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환경이 열렸다고 축복이라 착각하지 않고 말씀을 기준으로 길을 분별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