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1-16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 믿음의 도를 위하여 ♱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도를 지키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믿음의 도를 지키려면 첫째, 힘써 싸워야 합니다.
유다서는 한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서신이지만 교회를 깨우는 불의 십자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당시 교회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의 정체와 그들의 악행을 낱낱이 폭로하며 거침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해요. 우선 발신자를 밝힘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 소개하죠.
여기서 등장하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예요. 그러니 유다는 자신도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밝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이라 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종은 헬라어 ‘둘로스’로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새 한 마리 값도 나가지 않는 노예를 뜻하지요. 예수님의 형제라 자신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 쓸모없고 무익한 종임을 나타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다도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을 믿지 않았어요. 그러니 자신이 얼마나 믿음 없고 연약한 자인지 알고서 이렇게 쓴 것이죠.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믿는 자들을 부르심을 받은 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 지키심을 받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내게 주신 믿음이 이처럼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배우자를 내가 전도해서 그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해요. 그러나 믿음은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불신결혼은 안 되는 것이에요.
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라고 해요. 이는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예수를 부인했기 때문이에요. ‘힘써 싸우다’는 ‘격렬하게 싸우다’라는 뜻이에요. 이 표현은 전투 혹은 운동 경기에서 쓰이는 말로 죽기 살기로 매 순간 끊임없이 싸워야 함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임해야 하는 영적 전투이기에 홀로 싸울 수 없지요. 그래서 예수의 종인 유다가 이렇게 믿음의 형제들을 독려하며 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믿음의 도를 지키고자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나요? 나 홀로 싸울 수 있다고 자만하진 않나요? 은혜를 내 유익으로 바꿔 방탕하게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도를 지키려면 둘째, 심판을 알아야 합니다.
5절에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해요. 신명기에서도 출애굽 다음 세대에게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죠. 그런데 우리는 자꾸 과거를 잊으려고 해요. 올라오는 탐심과 정욕 앞에서 부러 말씀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죠. 그러므로 내가 출애굽 이전에 즉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떤 존재였으며 주님이 나를 단번에 어떻게 구원하셨나를 계속 기억해야 해요. 그리하면 믿음을 지키고자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나를 구원하신 은혜의 사건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간증하며 다시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입으로 시인하여 다시 말할 때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고 뼈에까지 각인되는 것이죠. 그리고 또 기억할 것은 심판입니다. 단지 구원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하잖아요. 그러하기에 구원받은 우리도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6절에는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가 어떻게 심판을 받았는지 기록되고 7절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한 행동으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아 지금까지 우리에게 거울이 되었다고 해요. 그러므로 우리 안에 가만히 들어온 생각과 악한 마음들을 9절 말씀처럼 주께서 강하게 꾸짖어 주시기를 원해야 해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행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고백하며 간증할 때 주께서 주신 이 귀한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죠. 적용 질문입니다.
♱ 사랑하시기에 심판도 말씀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나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고자 내가 끊어 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부모님께 효도하는 장녀지만 이해타산으로 결혼하고 이혼한 탐심의 죄를 주께 회개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3남매 중 장녀인 저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이 특별했어요. 한쪽 발을 절며 일하시는 어머니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시는 아버지가 너무 안쓰러워 승무원이 된 후로는 틈만 나면 시골에 내려가 부모님을 물심양면으로 섬겼지요. 그러다가 좋은 직장에 최고 학벌, 경제적 여유까지 갖춘 남자와 결혼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술 문제 문제와 수많은 보증 문제를 일으키며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이런 가정불화 속에서 딸을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저는 남편과 오랜 별거 끝에 이혼하고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재혼 가정의 고난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교회로 오게 되었지요. ‘자녀에게 깨끗한 호적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부모다’라는 목사님 말씀이 비난이 아닌 사랑의 권면으로 들렸어요. 그때부터 구속사 말씀을 들으며 공동체 안에서 저의 교만과 인정 중독을 회개하니 위태롭던 재혼 가정이 조금씩 회복되었어요. 탐심 때문에 결혼을 이해타산의 도구로 삼은 제가 바로 11절 말씀처럼 가인의 길에 행한 자이며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 자임을 인정해요. 스스로 의롭다 여기면서도 가정을 깨뜨려 전남편과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을 준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3절과 4절 말씀처럼 제 속의 거짓 교사인 욕심과 교만을 분별하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기를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딸에게 ‘이혼으로 상처 줘서 미안해’라고 사과하겠습니다. 오전 6시 전에 일어나 말씀을 충분히 묵상한 뒤 출근하겠습니다.’입니다.”
11절부터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해요. 과거의 심판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화를 예고합니다. 그들은 암초요 몸만 위하는 목자요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나무이며 수치의 거품을 내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라 해요. 이 세상이 너무 악하고 음란하기에 믿음을 지키고자 힘써 싸우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함께 믿음을 지켜나갈 공동체가 필요하고 나를 돌아볼 간증과 나를 붙들어 줄 매일의 말씀이 너무 중요합니다. 유다가 전하는 이 강렬한 경고의 말씀 앞에서 내가 바로 가인과 발람의 길로 행하는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오늘 하루를 보내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이 모든 것을 너희가 다 아는 바라 하시는 말씀 앞에서 피할 길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단번에 이루신 구원의 은혜도 알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은혜도 알지만 가만히 들어온 유혹과 음란 앞에 또 넘어지는 저희예요. 주님, 내 생각과 환경을 지켜주시옵소서. 은혜를 자기 유익의 도구로 삼은 천사도 소돔과 고모라도 모두 심판으로 멸망했음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화 있을진저’의 말씀을 듣고서 내 모습이 수치의 거품을 내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 같음을 고백하며 돌이키길 원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모든 죄의 사슬을 끊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단번에 주신 이 귀한 구원을 끝까지 지키며 내년도 구원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