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1:45-64
45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46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
47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그 온 땅이 치욕을 당하겠고 그 죽임 당할 자가 모두 그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이며
48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리니 이는 파멸시키는 자가 북쪽에서 그에게 옴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9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죽여 엎드러뜨림 같이 온 세상이 바벨론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50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51 외국인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책망을 들으며 수치를 당하여 모욕이 우리 얼굴을 덮었느니라
52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부상자들이 그 땅에서 한숨을 지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3 가령 바벨론이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하자 높은 곳에 있는 피난처를 요새로 삼더라도 멸망시킬 자가 내게로부터 그들에게 임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4 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도다 갈대아 사람의 땅에 큰 파멸의 소리가 들리도다
55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황폐하게 하사 그 큰 소리를 끊으심이로다 원수는 많은 물 같이 그 파도가 사나우며 그 물결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도다
56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
57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
5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의 성벽은 훼파되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
59 유다의 시드기야 왕 제사년에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가 그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갈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씀을 명령하니 스라야는 병참감이더라
60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닥칠 모든 재난 곧 바벨론에 대하여 기록한 이 모든 말씀을 한 책에 기록하고
61 스라야에게 말하기를 너는 바벨론에 이르거든 삼가 이 모든 말씀을 읽고
62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이 곳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 하니라
63 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강 속에 던지며
64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난 때문에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니 그들이 피폐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끝나니라
♱ 너희 마음에 두라 ♱
하나님 아버지,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나와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우리 마음에 두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려면 첫째, 바벨론의 멸망이 구원이기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45절에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기 백성에게 그곳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또 46절에서는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죠. 바벨론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서로 칠 것이고 소문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이런 소문 때문에 놀랄 필요가 없어요. 이 심판은 바벨론에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7절에 ‘내가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그 온 땅이 치욕을 당하겠고 그 죽임당할 자가 모두 그 가운데 엎드러질 것이며’라고 하시잖아요. 바벨론의 멸망은 확실합니다.
그러자 48절에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리니’라고 해요. 왜 기뻐합니까? 그것이 구원의 사건이 될 것을 믿기에 기뻐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안의 바벨론이든 남의 바벨론이든 망하는 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50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와요.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고 하세요. 바벨론의 멸망 중에서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는 이 세상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행하라는 명령입니다. 칼을 면했다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다시 칼을 맞을 수 있어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행진을 곧바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51절에 ‘외국인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책망을 들으며 수치를 당하여 모욕이 우리 얼굴을 덮었느니라’라고 해요. 과거를 회상하면 이방인이 내 성소에 들어갔기에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내가 세상적인 결혼을 했기에 수치를 당하는 거예요. 바벨론이 망한 것도 나 때문이고 내가 수치당한 것도 나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에서도 나의 책임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부끄러워서 ‘나 같은 주제에..’ 하며 정죄감으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52절에 ‘내가 그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부상자들이 그 땅에서 한숨을 지으리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 모습이 형편없어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내 삶의 방향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나요? 여전히 바벨론에 머물러 있진 않나요?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나요? 아니면 세상 것에 마음을 두나요?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려면 둘째, 적용하기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53절에 ‘가령 바벨론이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하자 높은 곳에 있는 피난처를 요새로 삼더라도 멸망시킬 자가 내게로부터 그들에게 임하리라’고 하세요. 아직도 바벨론의 미련이 있어 남아 있으려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멸망시킬 자가 임하면 끝인 것입니다. 억대 연봉으로 스카우트를 받고 자녀를 더욱 열심히 공부시키고 멋진 인테리어 등을 해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56절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라고 하시잖아요. 또 57절에는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라고 하세요. 망하게 되면 엘리트나 그들의 지식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 사로잡히고 활이 꺾이기 때문이지요. 58절에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수고해도 결국엔 불타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 때문에 백성의 수고가 불타는 것입니다.
59절부터 보면 시드기야가 반바벨론 동맹을 맺었다가 발각되어 소환되어 갈 때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바벨론을 향한 재앙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1차, 2차 침공 후에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벨론에 순종하라고 계속 외쳤지만 이제는 바벨론이 망한다고 하십니다. 내가 바벨론 같은 배우자, 직장 상사 등 주어진 환경에 잘 순종하고 있으면 결국 하나님이 건져주신다는 거예요.
60절에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닥칠 모든 재난 곧 바벨론에 대하여 기록한 이 모든 말씀을 한 책에 기록하고’라고 해요. 바벨론의 멸망 메시지는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에게 들립니다. 불신자의 멸망이나 강성함, 잘됨이나 못됨을 보며 믿는 우리가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왜 잘 사는지 왜 못 사는지 모르죠. 모든 의미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63절에 ‘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강 속에 던지며’라고 해요. 이것은 바벨론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지적 행위입니다. 이렇게 적용을 하며 몸소 보여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깨닫지 못해요. 그럼에도 그 아까운 책을 읽고 물속에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은 바벨론 같은 사람입니다. 용사와 박사가 되어 말씀을 무시하다가 물속에 가라앉고 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바벨론 같은 자들을 얼마나 부러워합니까? 그러니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이며 걸어가는 길은 순교와도 같은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내가 아까워하며 던지지 못해서 말만 하고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벨론이 망한다는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두렵나요? 덤덤한가요?
학업 스트레스와 불안함이 엄습해도 여호와를 생각하며 큐티하길 원한다는 한 중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교회 공동체 소그룹 리더이신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딱히 고난이 없지만 대학 입시와 진로만큼은 늘 걱정해요. 중학교 1학년 때는 농구에 빠져 매일 학교 끝나면 농구만 하다가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지금까지는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는 하지만 늘 숙제할 시간이 부족하고 과연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나 있을까? 고민해요. 매일 반복되는 학교와 학원 공부 때문에 하고 싶은 운동을 참아야 하는 것도 힘들어요. 엄마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평안을 주신다고 하시지만 저는 아직 잘 이해되지 않아요. 50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마음에 둔다 한들 현실이 뭐가 달라지나 하며 의심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보다는 입시 유튜버들이나 학원 선생님들의 입시 정보에 귀가 더 솔깃해요. 그럼에도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지 말라는 말씀대로 목사님의 설교와 선생님, 친구들의 간증을 들으면 제게 들려주시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제는 제 생각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학생의 때를 잘 인내하고 큐티와 기도하며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진로를 결정하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저의 적용은 ‘불안할 때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기도를 부탁하겠습니다. 엄마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같이 큐티를 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벨론이 망하는 것은 구원의 사건이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본향인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멈추지 말고 걸어가야 해요. 그리고 적용하기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깝고 귀하더라도 말씀대로 고백하고 물속에 던지는 적용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 바벨론의 멸망을 목도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그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저희들입니다. 학벌과 스펙, 돈과 권력을 따르며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제는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세상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으며 순종으로 응답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입시와 진로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생들과 자녀들을 찾아가 주시옵소서. 세상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해 주시고 큐티와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또한 바벨론 같은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지체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들이 속히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길을 걸어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그것이 구원의 사건이 될 것을 믿기에 기뻐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안의 바벨론이든 남의 바벨론이든 망하는 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잘 순종하고 있으면 결국 하나님이 건져주신다는 거예요.” “그들은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왜 잘 사는지 왜 못 사는지 모르죠. 모든 의미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새벽기도회 설교 요약한 것 올립니다....
새벽기도회 설교 요약
말씀 대로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하시는데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1. 여호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세상의 찬란한 모든 문화를 꽃피운 아름다운 곳이지만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죄가 만연한 곳입니다. 세상의 영광이 있는 곳에서 누리지 못해 열등감을 느끼고 또 가지면 금세 교만한 것이 우리입니다. 주님은 나의 성공과 행복을 쫓는 마음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앞으로 70여 년의 포로 생활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바벨론의 심판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우리도 돈에, 결혼에, 육아에 포로가 되어 힘들게 삽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을 마치는 하나님의 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로생활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나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듣고 있어야 그 때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이 포로 생활이 너무 두렵고 힘들었지만 점점 노예근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벨론 땅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합리화하고 살다 보니까 점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본질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대로 적용해 보려 하면 이 땅에 세상의 소문들이 있습니다. 사건이 오면 벌 받았다고 여기고 잘 되면 축복받았다고 여깁니다. 어떤 것도 구원을 위한 사건입니다.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의 마음에 두라 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동안 멈춰 있었던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피할 곳이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로 생활 같은 우리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의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2. 쇠잔하여 질 것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조롱한 바벨론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셨고 그 결과 바벨론은 쇠잔하여 집니다. 모든 죄는 쇠잔하여 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고 옳고 그름으로 내 죄 때문에 성전이 불태워졌다고 자책하고 절망하였습니다. 그 상처로 이스라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꺼려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성전이 불탄 그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욕과 수치의 상처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는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될 일인데 말이죠. 우리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상처가 있습니다. 저도 사람의 사랑과 인정에 대한 불안으로 이미 포로가 되어 심판 중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고 다시 믿음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주님이 구원자시라는 강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필요였습니다. 우리가 심판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닌데 바벨론의 심판만 들어도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이것이 모든 압제와 폭력으로부터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의 사건임에도 심판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심판받아야 할 것은 나의 상처와 그 이면의 옳고 그름, 죄와 정죄입니다. 이 심판의 목적은 진노를 피해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라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에 의지하여 그 말씀과 은혜를 마음에 두고 돌이켜야 합니다. 심판으로 인해 쇠잔하여지는 것은 나의 죄와 중독이고 쇠잔하여지는 것은 우리의 육신입니다. 육이 쇠잔하여지는 만큼 영이 살아나는 것을 믿습니다.
3. 기록하고 읽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 문서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시드기야 왕을 수행하여 군사물자를 책임진 스라야의 편에 보내어 바벨론으로 가져오게 했습니다. 스라야에게 목숨을 내건 믿음의 용기가 필요했는데요. 스라야는 귀족 가문 출신인데도 다른 이들과 달리 타락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예레미야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한 담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을 보기도 어렵지만 적용하기가 너무 싫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 스라야를 보내주셔서 모든 말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기록하고 읽으라고 하셨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연약하기에 날마다 기록하고 다시 읽고 또 외우고 또 잊으면 다시 보고 다시 읽고 날마다 큐티하면서 낭독하는 이 것이 다시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기록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그 약속과 심판을 확인하는 검증의 반복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합니다. 심판 중에도 포로생활 중에도 날마다 나의 구원 때문에 애통해줄 눈물 흘려줄 예레미야가 있고 말씀을 기록하고 전해주는 스라야가 있는 공동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의 믿음이 연약한 줄 아는 사람은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보고 읽고 낭독하며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날마다 공동체에 묻고 믿음으로 함께 확신하며 공동체에 붙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언약을 기억하며 나의 육이 쇠잔하여 갈수록 날마다 살아나는 우리의 영을 듣고 나누는 한 권의 포로 생활기를 기록하여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