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1-14
1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7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이렇게 이르니라
10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12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 눌러앉아 살아야 할 땅 ♱
하나님 아버지, 두려움과 조급함으로 내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말씀 앞에 머물며 눌러 앉아 순종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눌러 앉아 살아야 할 땅은 첫째, 진심으로 말씀을 구하고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오늘 1절과 2절을 보면 유다의 위기 상황에서 모든 지휘관과 백성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나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런데 계속 ‘당신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써요. 겉보기에는 겸손하고 간절한 기도 요청 같지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지 못할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먹하고 표면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3절에서도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지요.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마음은 이미 애굽으로 가는 것으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자기 뜻을 정해 놓고 그 길을 하나님이 확정해 주시길 바라는 것이지요. 기도는 내 계획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할 마음도 없이 우리가 ‘이 방향이 맞지요?’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4절에서 예레미야는 그들이 거리를 두었던 하나님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다시 바로잡습니다. 그러자 6절을 보니 백성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라고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아니지요. 그저 입술만의 고백에 불과했어요. 우리가 큐티하면서 ‘붙어도 떨어져도 감사하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내심 붙기를 바라며 갖은 수를 쓰는 것과 같아요. 기도는 아주 유창하게 하면서도 그 삶은 전혀 본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지요. 기도는 언어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뜻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비워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받는 것이 참된 기도예요. 순종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도 속지 않으십니다.
7절에 보면 무려 열흘 후에야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조급한 우리와 달리 하나님은 끝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열흘을 기다리세요. 8절과 9절에서 예레미야는 회피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숨김없이 전합니다. 10절에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신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라고 해요. 이 말씀은 지난 1장 10절에서 예레미아에게 처음 소명을 주실 때 하신 말씀과 연결되지요. 그 말씀을 40년간 이루며 훈련하시고 이제는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인데 회복의 기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 앞에 눌러 앉을 때 주어진다는 거예요. 눈앞의 상황보다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 심고 세우시는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나요? 이미 내 뜻을 정해놓고서 하나님께 결재만 해주시길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응답이 더딜 때 나는 믿음으로 기다립니까? 내 방식대로 움직입니까?
눌러앉아 살아야 할 땅은 둘째, 두려움보다 말씀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자리입니다.
1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바벨론은 두려워하지 말고 애굽은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두려움 그 자체보다 그 두려움이 말씀보다 커질 때 선택이 왜곡된다는 것이죠. 두려움은 말씀을 작아 보이게 하고 말씀은 두려움을 작게 보도록 인도합니다.
12절에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해요. 하나님께 긍휼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긍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정직하게 엎드려야 해요. 애굽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13절, 14절에 보면 하나님은 백성이 애굽으로 향하려는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십니다. 그들이 왜 애굽을 택하려고 하는지도 분명히 드러내시지요. 그들은 애굽에는 전쟁도 없고 나팔 소리도 없고 양식의 궁핍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애굽이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출애굽을 부정하는 선택이에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그 땅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은 말씀의 역사를 거부하고 고난을 피해서 나만 살겠다는 태도인 것입니다. 고통당하고 훈련받으라고 하시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안 당하려고 하니 두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애굽으로 결단코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내 인생을 내가 꾸려가겠다는 고백과 같아요.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나는 결단코 부자가 되어야겠어. 반드시 성공해야겠어. 꼭 행복하게 살아야겠어.’ 이런 마음이 바로 애굽을 향하려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결코 눌러앉아서는 안 될 땅입니다. 지금도 우리 삶 속에는 얼마나 애굽이 크게 보이는지 몰라요. 안전해 보이고 나를 편하게 해 줄 것 같고 고난 없는 길처럼 보이지만 그 길은 말씀 없는 자기 선택의 길입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지금 나의 선택 기준은 말씀입니까? 두려움입니까? 오늘 내가 머물 자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까? 내가 정한 애굽입니까?
아직 어리고 두려움이 많지만 예배와 큐티와 기도의 자리를 잘 지키며 순종하길 원한다는 여섯 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간증이에요.
“저는 아직 어려서 두려움이 많아요. 무서운 꿈도 싫고 친구랑 다투거나 부모님에게 혼날 때도 무서워요. 하나님은 10절에서 ‘유다 땅에 남아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을 허물지 않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엄마는 우리 가족이 남아 있어야 할 자리는 예배와 큐티, 기도하면서 하나님 곁에 있는 자리라고 알려주셨어요. 가끔은 예배, 큐티, 기도가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래요. 저의 적용은 ‘힘들고 두려워도 예배, 큐티, 기도의 자리를 지키도록 노력해 볼게요’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무서워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는 세 살 어린이의 새싹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어린이집에 갈 때 무서워요. 아빠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늑대나 괴물이 나타날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었어요. 엄마는 저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단다’라고 말해 주셨어요. 유아부 예배에서도 두려울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배웠죠. 요즘 저는 어린이집에 갈 때 무서운 마음이 들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라고 외치고 있어요. 저의 적용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무서울 때는 엄마와 함께 기도하고 갈게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애굽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입술로는 순종하겠다고 했지만 세상은 응답을 기다릴 마음도 그 뜻을 따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래요. 말씀을 묻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내 뜻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 더 많고 기도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맞춰 달라고 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눌러 앉으라고 하셔도 두려움 때문에 조급함 때문에 더 편해 보이고 안전해 보이는 애굽을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 말씀 앞에 눌러앉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말씀 앞에 눌러 앉아 있으라고 하시는데 내 뜻을 정해놓고 그 뜻대로 응답해 달라며 우기는 기도만 해왔습니다. 입술로는 ‘좋든지 좋지 않든지 순종할게요’ 하면서도 실상은 애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눈앞의 편안함, 당장의 안전, 고난 없는 길만 바라는 저희예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 같지만 결국 내 판단과 내 계산을 확인받고자 한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말씀보다 두려움이 커 보이면 말씀을 버리고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눌러 앉아 살아야 할 그 땅, 곧 주님이 두신 자리, 말씀의 자리에 잘 머무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