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3-10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
하나님 아버지, 조금도 상함이 없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조금도 상함이 없으려면 첫째, 내 죄가 보여야 합니다.
3절에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고 해요. 원주민들의 특별한 동정으로 피워진 불이 비와 추위로 꺼져갔어요. 그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바울이 손수 나무 묶음을 거두어 불을 지피다가 그만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이렇게 너무 무섭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몰려올 수 있어요. 가족 전도를 위해 불을 피우고 밥해주는 적용을 했음에도 뱀에 물린 것처럼 독이 섞인 말과 눈빛에 물린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럴 때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독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실체가 드러나면 결국 싸움이 나지요.
4절에 보세요. 이런 바울을 본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이 ‘진실로 이 사람이 살인한 자로다’ 하며 바울을 손가락질하잖아요. 공의의 여신 디케가 살인범인 그를 죽인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이때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자신을 물고 있는 독사를 그대로 매달고 있어요. 바울이 감각이 둔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물린 채로 상대방의 독이 섞인 말들을 다 받아내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다 받아낼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스데반을 죽인 죄인이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아는 것이죠. 더 나아가 독사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만이 나를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의 손에 독사가 매달려 있어요. 여기서 ‘매달려 있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주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매달리셨어요. 주님이 나무에 달리시므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지요. 우리는 날 때부터 죄인이에요. 다 독사에 물려 죽을 인생이에요. 이렇게 뼛속까지 죄인인 우리는 존재 자체가 가해자입니다. 내가 독을 내뿜는 죄인임을 아는 정확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내 죄가 보입니다. 그러면 조금도 상함이 없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이타적인 적용을 했음에도 독사 같은 말과 눈빛으로 공격받은 적이 있나요? 그때 똑같이 되갚아 주었나요? 아니면 내가 죄인임을 알고 그냥 잘 당했나요?
조금도 상함이 없으려면 둘째, 아픔 속으로 들어가 안수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5절에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고 해요. 이 소식이 온 섬에 퍼집니다. 맹독을 가진 독사에게 물린 바울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는 소문에 7절을 보니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아픈 아버지를 고칠 목적으로 바울 일행을 영접해요. 그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었을 텐데 교양 때문에 바울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한 다음에야 부친의 병을 오픈해요. 바울도 보블리오가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은 굉장히 무서운 풍토병이었지요. 그에게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바울이 독사에게 물려서 살아났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결국 아픔이 바울을 만나는 통로가 되어 보고 들을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바울은 멜리데에서 이미 상처를 입었지만 그들의 영접에 기꺼이 임하며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복음을 전해요. 상처 입은 자만이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수가 있어요.
8절에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라고 해요. 안수는 그에게 두 손을 얹어 치유했다는 뜻으로 그 아픔을 나의 아픔이라는 고백의 의미가 있습니다. 안수하니까 병이 나았어요. 바울은 자신을 힘들게 한 원주민들의 대표자인 보블리오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어요. 그 아픔 속으로 들어가니 아픔이 아픔을 낫게 하고 조금도 상하지 않게 되는 은혜를 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입었다면 이제 다른 사람을 낫게 하는 사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장 높은 보블리오 한 사람이 고침을 받자 9절에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라고 해요. 여기서 ‘고치다’의 원어는 ‘테라페오’인데 이것이 ‘테라피’의 어원으로 ‘섬기다, 돌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어떤 공격에도 상처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됩니다. 그것은 ‘당신이 옳아요. 내가 살인자예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방언이에요. 믿는 자에게 따르는 이 새 방언을 잘 쓰면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을 안수하여 고치는 사명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적용 질문입니다.
♱ 나는 어떤 아픔과 상처가 있나요? 내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위로해 준 경험이 있나요? 오히려 내가 받은 상처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있진 않나요?
실직의 독사에 물려 아파하는 남편을 탓하고 하나님의 100% 옳으심을 부인한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불통의 광풍으로 난파한 배처럼 표류하던 저희 부부는 믿음의 공동체를 만나 구조되었어요. 매주 말씀에 불을 피워 영접하는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을 느낄 때쯤 남편이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사건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실직 상태는 2년간 계속되었지요. 바울에게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라고 한 원주민들처럼 저는 무기력한 남편을 비난하며 독한 말을 쏟아냈어요. 그런데 남편은 해고 통보를 받은 즉시 공동체에 기도를 부탁하고 새벽 예배를 비롯해 모든 공예배에 나가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냈습니다. 저는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남편을 귀하게 여기기는커녕 ‘저렇게 예배만 드리면 뭐 하나. 믿음이 있어도 토지가 있고 능력이 있어야 먹고살지’라는 생각에 독을 내뿜었어요. 그러나 남편의 실직은 이런 저의 악독을 치유하고자 하나님이 안수하시는 사건이었어요. 이 시간을 통해 제가 끊임없이 남편 탓을 하면서 하나님의 100% 옳으심을 부인한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간구로 남편은 마침내 취업했어요. 저는 여전히 팍팍한 살림에 불안하고 고민 없이 물건을 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고 돈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남편이 무시될 때마다 ‘예배드리는 우리 남편이 최고다!’라고 외치겠습니다. 남편에게 ‘독한 말로 상처 줘서 미안해요’라고 사과하겠습니다’입니다.”
10절에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고 해요. 살인자라 손가락질한 그들이 바울의 쓸 것을 전부 채워주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내 상처로 그들의 상처를 안아 주니 파손되어 다 버린 물품들을 하나님이 친히 채워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명으로 나아갈 때 어떤 해를 받아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 복음 전도를 위해 로마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 드릴게요.
주여, 이타적인 적용을 해도 상대방이 독사 같은 말과 눈빛으로 공격해 오면 잘 당하기보다 되갚아주고 복수하고만 싶은 저입니다. ‘내가 잘해줬는데 감히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해’ 하며 미워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자신을 향해 살인자라 손가락질한 원주민들을 오히려 치료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원주민들의 대표 보블리오의 집에 들어가 그의 아버지에게 안수하며 기도한 바울처럼 제가 받은 상처를 말씀으로 해석하여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명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주께서 보호하셔서 조금도 상함이 없게 하시고 내 상처가 약재료가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잃었던 모든 것도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성령의 고침을 전하는 저희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