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17-29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
하나님 아버지,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주님의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첫째, 내 자리를 떠나 주님 앞에 엎드릴 때 임합니다.
17절에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라고 해요.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며 양육의 때를 보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황홀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황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엑스타시스’인데 이는 ‘내가 있는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뜻이에요. 즉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바울이 성전에서 엎드려 회개할 때 자신의 이성과 감정 경험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황홀은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황홀과는 다르지요. 성공, 출세, 인정, 감각의 자극에서 오는 인간적 황홀은 결국 중독과 허무로 이어지지만 성령의 황홀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 앞에 납작 엎드리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로 그 은혜를 경험했어요. 그것은 감정의 흥분이 아닌 말씀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사건이었습니다.
18절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이라고 하지요. 바울은 황홀한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뜻밖입니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예요. 바울은 예루살렘에 와서 전도하려 했는데 주님은 오히려 그 자리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까지 그들은 네 증언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성령의 황홀은 황홀한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라는 초청입니다.
19절, 20절에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라고 해요.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고자 그 자리에 섰지만 실제로는 과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있었고 그를 죽이는 일을 적극 지지했다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들도 아나이다’라는 말에는 바울의 간절한 바람이 묻어납니다. 자신이 이렇게 변했으니 유대인들도 자신을 보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게 되기를 바라는 기대지요. 하지만 주님은 바울의 이런 자기 확신을 무너뜨리십니다. 21절에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지요. 주님은 재차 떠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바울의 유대인 선교 의지를 꺾으시고 멀리 이방인을 향해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주님이 떠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아직 머물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 내가 가진 계획과 열심 그리고 가능성을 주님보다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둘째, 성령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22절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는 이 말씀을 듣자 격분합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며 바울을 죽이려 하지요. 23절을 보면 군중은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날리는 격렬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교적 열심과 선민의식의 폭발이자 결국 진리를 거부하는 인간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저도 처음 시집살이할 때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며 그저 죽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 시댁과 남편 때문에 저의 죄가 깨달아지니 제 안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자 없애버리고 싶은 상황이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는 최고의 환경이 되었습니다.
24절과 25절에서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소동을 진정시키고자 바울을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언급하며 ‘로마 시민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26절, 27절에서 그가 진짜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천부장과 백부장은 충격을 받죠. 28절에서는 천부장이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며 놀랍니다. 이에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라’고 답해요. 29절에 보니 결국 심문하려던 자들이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를 결박한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령의 시민권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무력하게 결박당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권세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복음 사명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저도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은 저를 집에 두셔서 오랜 시간 시어머니와 남편 밑에서 말씀을 따르는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시민권이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회피하며 없애고 싶었던 사건과 사람이 오히려 내 인생에 예수님이 오시는 통로였음을 인정합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권세를 누구를 살리는 데 사용하고 있나요?
친구들에게 거절당하더라도 용기 내어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지만 22절 말씀처럼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며 반대해요. 저도 바울처럼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복음을 전해도 친구들이 믿지 않거나 제 말을 무시할 때면 속상해요. 그래서 점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져요. 하지만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만큼 저도 용기 내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 끝까지 복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저의 적용은 ‘다시 용기 내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게요.’입니다.”
놀이기구를 타며 새치기하는 아이들을 보고 안전하게 줄을 서야 한다고 용기 내어 말했다는 7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놀이기구의 좁은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데 뒤에서 오던 아이들이 앞질러 가려 했어요. 앞에는 어린 동생들도 있어서 안전하게 줄을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친구들이 화를 낼까봐 걱정됐지만 25절에 바울이 백부장에게 용기 내어 말한 것처럼 저도 ‘새치기하면 안 돼’라고 말했어요. 다행히 아이들은 새치기를 멈췄어요. 그때 저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용기 내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의 적용은 ‘어디서든 앞장서서 질서를 잘 지킬게요.’입니다.”
유치원에서 의견이 다른 친구의 이야기도 잘 듣고 예수님을 알려주겠다는 6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유치원에서 저랑 가장 친한 친구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요. 하루는 그 친구와 같이 놀다가 서로 의견이 달라서 큰 소리를 내며 싸웠어요. 그랬더니 엄마는 예수님이 바울을 만나 주신 21절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셨어요. 그러면서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사람은 친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알려주셨지요. 앞으로는 친구와 의견이 달라도 큰 소리 내지 않고 친구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예수님을 알려줄게요. 저의 적용은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저를 만나 주신 예수님을 알려 줄게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내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계획한 자리에서 떠나라고 하실 때도 있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방인을 향해 가라고 하실 때도 있어요. 그러나 그 부르심 앞에 엎드려 순종할 때 우리는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 성령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고 내게 주신 사명 앞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오늘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황홀한 감정이 아니라 회개의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없애버릴 자 같고 결박당한 자 같은 우리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 살게 하시고 진리 때문에 거절당하고 오해받을지라도 성령의 권세로 이 땅을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떠나라고 하시는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나고 보내신 자리에서 순종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나의 의와 확신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가는 성령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