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5.토요일.사도행전 21장 1-14절 성령의 감동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축도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교통하심과 감화 감동하심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비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동원되셔서 도우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감동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감동과 빌립의 딸들과 한 선지자 아가보에게 임한 성령의 감동과 바울에게 임한 성령의 감동이 동일한 듯하나 미묘한 차이가 있고 해석도 각기 다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정확한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THINK 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
바울 일행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건너갔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구보로를 바라보았는데 구브로가 지중해에서 세 번째 가는 큰 섬이었기 때문에 한참 동안을 바라보면서 구브로 사람인 바나바를 추억했을 것입니다.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설득하였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설득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여러 날 동안 설득해도 결국 바울 일행이 떠나갈 때 그들은 다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였습니다. 바울 일행과 제자들이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 전토팀은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구원의 사명보다 스승의 안위가 중요할 때 성령의 감동하셔서 예루살렘에서의 위험을 알려주셔도 스승을 험지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난받을 각오가 없는 제자들에게는 성령님이 감동을 주셔도 두려워할 일들만 보입니다.
결박하여 넘겨주리라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습니다. 그에게는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였습니다. 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무슨 예언을 바울에게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날 머물러 있을 때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왔을 때 그가 한 예언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결박하여 체포당하는 퍼포먼스까지 보이면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결박당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질 것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죽음도 각오하였노라
아가보의 예언에 대한 전도팀과 그 곳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설득하였습니다. 빌립의 딸들은 예언을 하였지만 아버지의 보호 아래서 편하게 살다보니 결박당하고 로마인의 손에 넘겨진다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며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동거동락하고 예루살렘을 같이 가고 있던 우리 전도팀 일행조차 한사코 예루살렘행을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유대인들에게 결박당하고 이방 군대에 넘겨져 투옥당할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구체적인 예언을 했던 아가보조차 예루살렘가는 것을 만류하는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들었던 예언을 어떻게 달리 해석하였습니까? 바울은 먼저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며 자신을 만류하는 사람들을 질책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고난이 와도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각오한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결박당하고 죽을 각오가 안되어 있으면 성령의 감동으로 고난당할 것을 알게 되어도 무섭고 두려워 피할 생각만 하게 됩니다. 결국 성령님께서 아무리 감동을 주셔도 고난을 통해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바울이 아무리 권해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결국은 그 방에 있던 우리 모두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설득하기를 그쳤습니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는 나희덕 시인의 시 ‘푸른 밤’ 싯구처럼 우리는 고난이 없는 지름길만 골라 행복 찾아 가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과 거룩을 위해 에움길(굽은 길, 에워서 돌아가는 길, 고생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에움길이 구원과 거룩을 위한 최선의 지름길이라는 주의 뜻을 감동으로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만 아니라 나의 예루살렘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할 때 비로소 성령의 감동으로 주신 예언을 주님의 뜻대로 분별하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순종하여 나갈 수 있게 됨을 봅니다. 반면에 나의 뜻과 나의 소원과 의지가 앞설 때 성령의 감동을 엉뚱하게 받고 해석하여 주의 뜻을 이루는 대신 성령의 감동을 빙자하여 나의 뜻을 이루는 불순종의 길을 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인생 최대의 역경 앞에서 살기 위해 기도했고 방언의 은사도 체험하고 고 2 때 발병한지 20년 만에 성령의 불을 받아 완치되는 신유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제게 믿음과 기도는 만사형통의 무기이자 우상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입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나자 막내 딸의 입시 때는 고3부터 재수 마지막까지 작정하고 금토철야산기도를 했습니다.
산기도를 마치고 새벽에 산을 내려오는 제 입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하셔서 딸이 입시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같은 말이 터져나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산기도가 2년이 쌓인 딸 재수 수능일 전주 토요일 갑자기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가 소천하고 딸은 수두에 걸려 장례식장은 물론 수능 입시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심판같은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포항대지진이 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수능이 한주간 연기되는 바람에 딸이 간신히 수능을 치르고 원치 않는 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심판같은 사건을 당하자 예언해 주는 기도원을 찾아가 기도하면서 두 아들과 딸을 위하여 헌금을 작정하여 바치라는 원장의 말에 현혹되어 기복적인 축복기도를 받기 위하여 삼천만원을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 사이 장남은 조현병으로 소천하고 둘째 아들과 막내딸이 신천지에 들어가는 심판같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하면서 같은 선교단체의 이쁘고 나이 어린 여자 후배를 배우자로 허락하셨다는 이상한 예언이 제 입에서 나와 대쉬하였다가 거절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복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세상 가치관으로 똘똘 뭉쳐서 축복과 성공과 승리만이 하나님의 뜻이고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엉뚱한 예언을 하고 해석하던 제게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이 천둥처럼 다가와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나 성공 승리가 아닌 거룩을 직장생활의 목표로 삼고 승진을 내려놓았을 때 안풀리던 승진이 기적적으로 풀러 교회 나온지 6개월만에 부지점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성령의 광풍 말씀 때 한시적 1가구 2주택으로 미납양도세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가 성령의 구조 말씀때 세금이 5천만원에서 5십만원으로 탕감되는 기적을 체험하였고, 장인 장모가 차례로 신천지에서 돌이키는 구원의 기적도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복음은 장차 올 환난이라고 하신 것처럼 다른 영혼들의 구원과 저의 거룩을 위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나의 예루살렘인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함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매일 주시는 말씀에서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내 욕심과 이기심, 내 유익 챙기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의 이름과 영혼 구원을 위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과 사건을 통해 주님의 뜻을 분별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