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요약(사도행전 16:26~34)
옥문이 열린 것을 알게 된 간수가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막는다.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구원의 길을 묻는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을 전하니 간수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크게 기뻐한다.
** 질문과 묵상
* 간수들이 탈옥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절망한 간수는 ‘자결 하지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습니다~’며 외치는 바울의 소리에 간수는 지옥을 갔다가 온 기분이었을 것 같다.
바울과 실라 앞에 바짝 엎드린 간수의 모습에 바울과 실라가 나였다면??
바울과 실라는 자신의 생명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자 앞에 엎드린 간수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 바로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복음을 전한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의 삶의 목적이 분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었으며 의로움으로 포장된 삶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기도의 용사’라는 변명도 들었고 나의 기도 덕분에 남편의 회사가 승승장구한다며 나의 신앙을 인정받는 소리도 들었다.
*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26절)
==> 나에게 큰 지진이 나는 것 같은 사건은?
나의 경우 남편의 사건은 큰 지진이 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외도를 고백했을 때,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내가 쓴 일기에도 ‘하늘이 무너진 것일까??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다’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글이 있다. 도대체 해석이 되지않는 상황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눈뜨면 찾아듣고 잠잘 때는 자장가처럼 듣다가 잠이 드는 시간을 수개월 보냈다. 잠시 위로의 말씀은 많았지만 해석이 되지는 않았다.
그 후 나는 우연히 듣게 된 김양재 목사님의 영상설교를 듣다가 아침에 벌떡 일어났다. 설교말씀중 공동체 고백과 ‘가정중수’라는 말이 나팔 소리 처럼 들렸다. 그 후 계속 목사님의 설교만을 듣다가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서 우리들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삶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는 설교와 매일 큐티하고 공동체와 진솔한 나눔은 분노의 감정이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그 후 남편이 속히 돌아올 방법을 찾거나 남편의 죄만 보고 남편이 벌을 받기를 바라기보다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나를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공동체와 나눔의 시간은 나의 의로움으로 꽁꽁 싸였던 나의 죄를 하나씩 꺼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삶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니 나의 죄를 보게 되는 것도 기쁨이 되었다.
“ 하나님~~ 이것이 나의 죄라는 거지요??” 라며 정죄감이나 죄책감이 아닌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다. 매일의 QT는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졌다. 이러한 기쁨에 QT하는 시간을 3시간씩 보내어도 지루하지 않고 해석이 되니 내 죄가 발견되는 지점에서는 회개의 통곡과 할렐루야~가 동시에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샘솟는 기쁨이구나~~’ 라며 죄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도 기쁨이었다.
이제 나는 상담센터를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20대 때부터 꿈꾸던 삶의 방향이다.
20대 때 세례를 받은 후 부터 크리스챤으로서의 삶. 예수님의 제자도의 삶을 사는 것을 인생의 방향으로 삶았고 그것을 당시 애인(남편)과 함께 갈 줄 알았다. 나는 남편을 심하게 의지했고 이것이 나의 우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받고 교회를 등지고 하나님을 부정하며 사상이 바뀌었다는 합리화를 시키며 외도 가출을 하였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들교회를 자랑하고 싶다. 남편이 바라던 공동체가 있다고...
그래서 가끔 초청 예배 초대장을 전달하지만... 답이 없다.
남편의 묵묵부답에 거절감 좌절감에 다시는 요구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 나의 적용은 여전히 이번에도 기도로 준비하고 남편에게 ‘집으로의 초대’장을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