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혼과 독신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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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09
마 19 : 1 ~ 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신때는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으로 죽으시기 약 한달전으로서
이 기간동안에도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민중들로부터는 기대와 환호를 받았으며 유대의
교권주의자들로부터는 질시와 모함과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결혼과 이혼과 독신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는데 질문자들중에는 예수를
음해할려는자들도 있고 예수를 추종하는 제자들도 있었지만 두부류 모두가 영적으로
무지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직설적으로 대답하기 보다는 우회적 답변을 통해서 질문자
들의 영적무지를 스스로 알도록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통해서 질문자들이 미쳐 깨닫지
못하는 본질적 진리를 드러내 주셨습니다.
천지창조후 인간에게 제일 먼저 만들어주신 제도가 가정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가정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더욱이 부부관계는 가족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은 결혼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터무니없는 남존여비 사상에 사로
잡혀 사소한 이유로 아내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므로써 육신의 정욕을 채우
기에 급급한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이같은 타락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확고한 가치 판단을 제공해 줄만한 지도이념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혼 제도에 대한 견해는 종파에 따라서 달라서 일반 백성들로 하야금
자신의 편의에 따라서 취사선택하도록 간접적으로 종용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3 파가 있었는데
엣세네파 : 엄격한 금욕주의로 독신주의를 주장
샴마이파 : 간음죄만 이혼 사유로 인정
힐 렐 파 : 진보적이어서 남편의 의사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혼이 가능
바리세인들의 질문은 힐렐파에 가까웠고 / 예수님의 대답은 샴마이파에 가깝고 / 제자
들의 의견 속에는 엣세네파의 의견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사업 실패로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는데 그후 아내를 달라고 기도 했지만 인연을
만나지 못했고 다시 만난것이 이혼했던 그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11년 만이었고 이혼날자와 재혼날자가 8월 25일로 똑같았습니다.
같은날을 정하신 하나님을 보며 전기가 오듯이 전율 했고 이혼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 절대불가 >로 받았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설사 간음을 했더라도 그가 용서를 구하면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다시
받아 들이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혼한 당사자들은 자기의 감정과 신명기 율법을 내세워 편할대로 자기의 십자가를 버려
버리고 쉬운 멍에를 지고 살고 싶겠지만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영원히 결손가정이라는
멍에를 쓰고 가기 때문에 그 상처를 지울수가 없습니다.
이혼을 하고 아무리 좋은 이성을 만나도 자녀가 보기에는 내아버지 또는 내 어머니만 결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혼의 후유증은 모든 가족의 구성원에게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11년만에 다시 아내와 합쳤지만 그 아내는 온갖 스트레스로 인하여 유방암에 걸려서
먼저 소천했고 딸은 그 후유증이 상처가 되어서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숨어버린지 4년이
넘어버렸습니다.
아들도 지금은 안정이 되었지만 사춘기때는 정서가 불안하고 화가 끓어올라서 또래중에서
가장 싸움잘하는 짱이 되었었습니다.
나 또한 이혼의 상처가 있을것 입니다.
이혼은 자기 사랑으로 빚어진 죄입니다. 한번해버린 이혼을 다시 담을수는 없고 사람마다
구속사가 다르겠지만 사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려야 합니다.
죽음이 부부를 갈라 놓을때까지는 자기 십자가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씀 앞에 바로서고 상대방을 위하여 애통의 눈물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잔에
넘칠때까지 흘려야 합니다. 이혼한 사람들끼리의 재혼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힘든 이야기지만 이혼했으면 혼자 살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는것이 좋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이혼에 대한 질문은 매우 교묘 했습니다. 만일 그들의 질문에 예수께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함부로 이혼을 일삼는 음란세력을 용인한 셈이 되고
반면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이혼을 허락한 셈이 되어서 신명기의 말씀과 모순 된다고 공박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간교함을 잘 간파하고 있던 예수께서는 그렇다 또는 아니다 식의 직접대답을
의도적으로 보류 시킨채 결혼에 관해서 원칙론적 의의를 설명하심으로 오히려 질문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답변을 해보게끔 유도 하셨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그 섭리에 의해서 마련된 신성한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이혼이란 있어서는 안될 일인데 사람들의 완악함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함으로 둘이 한몸이므로 죽음이 갈라 놓을때까지는 헤어질수가 없으므로 이혼을 생각
하는것 조차도 금해야 마땅 합니다. 신명기24장에서도 이혼을 허락했지만 결코 이혼을
정당화 하거나 장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곁에서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그토록 까다로운 결혼 이라면 차라리 독신이 낫지
않겠는가고 소신을 #48163;혔는데 그들은 아마 복잡하고 번거로운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금욕적
독신생활을 하는것이 주님의 뜻이겠거니 하고서 오해하고 짐짓 주께 인정받고 싶은 의도
에서 그런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귀찮아서 결혼을 안한다든지 금욕적 독신이 자연스러운
결혼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든지 하는 태도는 마땅히 지양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결혼을 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습니다.
천국을 위한 독신생활은 성령충만한 사람에게 하나의 은사로 허용될 뿐 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결혼생활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나는 사별했으므로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해야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