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렇게 살다 가고 싶었습니다.
작성자명 [송명숙]
댓글 0
날짜 2006.03.09
(살전 5:12~28)
지체들을 생각하면
타들어가듯이 통증이 가슴을 #54995;고 지나는 민망함을 제가 약~간 알게 되었습니다.
3주째 내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줄로 묶였던 지체들로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7월 마지막주 예배부터 돌아와서
2005년 여름까지 2년여를 많이 울었습니다.
그후론 많이 웃었습니다.
정말 행복해서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들어서 1월부터는 목장예배만 드리고 오면
기이한 은혜로 잠을 못이루고 지체를 생각하며 울며 기도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전에 2년동안이 나를 위해 운 거 였다면
이제 제가 어떻게 순전히 남을 위해서 가슴이 타는듯이 울 수있는지요???
어찌된 것일까요?
그게 그래도 간단히 다른 목장으로 흩어지면 또 그게 하나님의 옳으심인데
2주동안을 다른 목장으로 잘 가셔서 적응을 돕는다고 가만히 끊고 있는데
보기만 하면 염려가 되어 눈물부터 앞서고,
낫지 않고 거듭 병상신세를 지는 지체를 보며 3주만에 저의 죄를 자복하며
지체들이 아프고 사건속에 있는 것이 저의 인본주의적인 <헤어짐과 떠남>훈련이 다 가 아니란
제 눈을 뜨게하시려고 지체들을 아프게 하시는가! 싶어 가슴을 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집에 와선 가슴이 찢어질 듯이 마음에
민망함으로 목자의 마음이 아! 이런 것인가! 알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계절만 같이 있으면 나아질텐데... 하는 나의 소견을 뒤로
하나님께선 헤어지게하므로 민망함으로 기도할 수있도록 붙잡아 주셨구나!
주님! 전 내일 출근해야하거든요? 저 자야돼요!
나이도 위이고 남편도 있는데 왜 이렇게 물가에 내놓은 것 같이 제 맘이 아파요?
종일을 기도하여,그 분이 나고 내가 그분인 것처럼
일심동체가 된 듯한데 내 몸인 듯 싶은 이 것이 어떻게 된 건가요? .....
저는 한 번도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 해보았습니다.
아니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저 생각하는 것은 33살에 다시 생의 기회가 주어졌고
이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이 떠져 훨씬 쾌락적이고 이기적으로 내 삶을 추구하였고
아름다운 자연과 바람 한 줄기에도 점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사망의 권세를 이길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산 것이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처절하게 깨닫고 죽음만이 남아있는 그루터기에서 결단한 회복이었습니다.
저게겐 그것이 재산이고 약재료가 될 뿐입니다.
그렇게 나돌아 다닌 제가 집밖으로 너무 안나가서 다들 불만인 인생이 되었습니다.
외국 연수나 여행을 다녀오고 다른 훈련을 받은 동료들이
저더러 가장 방학을 잘 지냈다고 얘기해주십니다. 어디 외출도 안하는 제게요!
저더러 전도사!라고 놀렸는데
그 역활은 모르지만 정말 제가 전도사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런 삶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정말 이런 삶을 내가 살고 싶었구나! 찾았구나!
주님께선 이미 저에게 많은 권능과 달란트들 주셨고
목자를 이제 만나 올바른 방향으로 그 힘을 사용할 수있게 된 것입니다.
무슨 은혜로 이렇게 주님께 불려나와
죽고 부활하기를 거듭하며 오래오래도 살며 주를 찬양할 수 있을까요?
여지껏 잘 죽을 준비를 위해 안간힘을 #50043;었다면
지금은 아무때고 죽어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니 항시 준비됨이기도 하고
준비니 뭐니 할 것도 없는 가벼운 인생을 살고 가고있습니다.
무엇 하나도 옳습니다!로 갈 수밖에 없는 티끌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궁핍과 환난가운데 있는 분이 모두에게 봄꽃피는 길목에서 밥 사겠다 줄을 서시고
후레지아향 꽃다발을 만들어다 주시고 아들은 주안에서 양육이 책임되어지는지요. 제가 뭔데!
저의 짐은 행복하고 가볍습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들에게 주를 힘입어 이 편지를 들려야할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