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23.토요일.에베소서 3장 14-21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로마인 이야기 15권의 결론은 盛者必衰(성자필쇠), 諸行無常(제행무상)이었습니다. 서 로마기준으로 1,000년(BC753~AD476) 동 로마기준으로 1,500(AD330~1453)년 성했던 로마가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로 쇠하여지고 일단 쇠락으로 접어들자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밑 빠진 독이 되었습니다. 망해가는 로마제국을 바라보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은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인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神國論(신국론)을 썼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국정운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경륜에는 만세전부터 택정하심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이 있습니다. 부르심의 소망이 있고, 성도의 기업이 있습니다. 십자가로 너와 나의 원수됨이 허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 거주할 처소로 세워져 가는 나 한 사람이 모여 교회로 건설되어갑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보여주기 위하여는 무엇을 간구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THINK해 보기 원합니다.
속사람의 강건함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빈다고 하십니다. 바울이 역사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만세전에 예정하신 계획되고 역사와 우리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비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아무리 영광이 풍성해도 그 영광을 담을 그릇이 약하면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금은보화를 얇은 유리그릇에 담았더니 유리가 깨어져 유리파편 때문에 금은보화가 구실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속에서 體現(체현)되기 위해서는 그 영광을 담을 우리 속 사람이 강건해져야 합니다. 속사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새로운 자아입니다. 죄와 육신에 속한 것들을 미워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속성입니다. 그런데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기를 간구한 것을 볼 때 속 사람이 처음부터 강건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속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고 말씀을 꾸준히 듣고 묵상하고 순종(적용)할 때 자라갑니다. 내 속사람이 넓어지고 강해지는 만큼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수용하는 캐퍼(Capacity, 용량, 역량)이 커지는 것입니다. 내 캐퍼가 커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이 내 심령과 삶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사랑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첫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 제국이 성하고 쇠하게 된 관건은 어떤 지도자가 황제가 되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첫째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셔야합니다. 우리가 왕되신 예수님의 나의 구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의하여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피흘려 내어주셨다는 십자가 사랑을 깨달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십자가 첫 사랑을 깨달은 후에도 우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필요가 있다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체험을 통해 십자가 사랑을 깨달았지만 이방인들을 부정히 여기는 편견과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이나 먹는 부정한 짐승이 담긴 보자기를 펼쳐보이시고 일어나 잡아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수 없어 그럴수 없나이다 내가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나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기에 어떤 속된 사람 더러운 죄인 부정한 죄인도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베드로와 같은 편견과 선입견 자존심과 자부심 교만과 미움과 불신과 정욕이 있어서 주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깨끗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내 안에 있는 편견과 고집과 교만과 이기심과 정욕을 고백하고 회개하여 버리고 나와 안맞는 지체를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으로 영접하고 섬길 때 우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또 그 너비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만물을 품고 깨끗케 하셨고 만가지 죄인을 다 품고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셨습니다. 내가 내 안에 있는 편견과 이기심과 정욕과 교만을 회개하고 용서할 수 없는 지체를 용서하고 영접할 수 없는 지체를 영접하고 섬길 수 없는 지체를 섬기는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체현이되고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깨달아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우리가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함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창조의 능력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한계적이고 연약한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제한이 없으신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한계적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생각과 구하는 것에도 제한과 한계를 둡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움 불신과 이기심과 정욕과 교만과 욕심을 고백하여 회개하고 버리고 우리를 제한없이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의 사랑의 적용의 폭을 넓혀갈 때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우리의 기도 제목을 너무나 쉽게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대대에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것입니다.
저에게는 불가능처럼 보이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장인 장모가 신천지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지헌이 하영이가 신천지에 다닌지 10년이 되자 인이 밖혀 못나오는 것을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공동체에서 양육받고 신결혼하는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더 깊은 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치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교만과 나를 무시하는 자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 자매를 깨끗하게 보지 못하는 정욕과 형제를 순수하게 대하지 않는 욕심의 뿌리 깊은 인입니다. 이로 인해 TT를 다녀왔으면서도 나를 무시하는 것같고 내가 목자되는 데 발목을 잡은 것 같은 한 부목자님에 대한 미움과 갈등에 시달렸습니다. 사실은 그 분이 나의 교만과 이기심과 정욕과 불신과 미움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모르고 재수없어 똥밟았다며 모든 탓을 그분한테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와 예정앞에서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옳으시고 제가 전적으로 악하고 음란하다는 진실을 숨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나를 회개케 하기 위하여 쓰임받는 그 분이 나보다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제가 부목자 모임에서 진실한 화해와 소통의 나눔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초원 부목자 모임에서 불편했던 그분에 대하여 솔직하게 나눔을 하고 화해하고 소통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