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책임져 주시는 영광의 왕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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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2.28
전도사님!
작년 8월 4일 모압,암몬,마온 연합군을 물리친 여호사밧왕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한 야하시엘이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마주 내려가라, 항오를 이루고 여호와께서 구원하는 것을 <보라!>로 승리 케하시는 여호와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만 11개월동안 큐티엠에 내일은 없는 종말론적인 마음을 품고 죽기살기로 오픈하며 걸어온 제게 일단의 축복과 자유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고나니 /비로소/
목사님께서 /섬김/의 사역에 대하여 설교해오시던 것이 귀에 꽂혀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목사님은 그전에도 사역의 영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씀하였을 텐데 전 자신성전내부
청소에 몰두해서 놓쳤던거지요
(지금도 어느부분에서 듣고 싶은 부분만 듣고 있겠지요, 부분청각장애자마냥)
그후론 사역을 위해 온 맘을 기울여오며 구하고 찾고 두두리며 걸어왔습니다.
외모를 어떻게 해야하나?
말씨가 외모 비중에서 제일 크다는데?
칭찬을 해야하나?
책망을 하나?
아니야? 듣기가 제일이야~ ......
여지껏 어떻게 말하고 듣고 관계를 세워왔는지 ....
남녀동료들과도 두루 모임이 있었고(죽었다 살아돌아온 사람의 포용력이라고 생각했지요)
혼자 방을 쓰고 있으면서도 직장에서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없을 정도의 대인관계를
가질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양파도 춤추게 한다, 유쾌하게 대화하는 33가지 원칙 등등등,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말 배우듯이 관계의 기법을 위해 타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 섬김의 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잘하는 것을 잘한다, 좋은 면에 더 예민하게 칭찬과 격려를, 이런 것은 너도나도 좋기만한데,
문제는 첫번째로 지적과 책망을 해야할 때이고, 두번째는 그게 혼자만 다른 시각일 적에 무엇보다 저자신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그후론 얼마전까지 이 지적과 책망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꼭 필요는 한가? 늘 재평가와 되새김질을 하며 이것이 몇달동안 십자가였습니다.
영적인 민감한 아들로 모두들 좋겠다 부럽겠다는 말속에서 그 아들의 영적인 민감함이 어미에겐 고난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해 낼때, 바람난 유부녀에게 사실확인을 해주어야한다는 말속에서 사실확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예수없으면 바람피고 안피고가 중요한게 아니고 예수를 배에 태우는 풍랑으로 꾸짖어야되는 축복의 기회란 시각등이 먼저 저자신이 어떻게 잘못해석을 한 건 아닌가??
수요예배에 목사님께 다시 위로와 확인을 받으며 바른길이라는 것임을 계속 말씀을 받으며
그렇게 회개하라! 망한다! 고난이 축복이다! 죄를 보라! 는 말씀을 하시며 걸어온 내 앞의 목사님의 마음은 어떠한 생각을 하시며 걸어오셨을까?를 진지하게 궁구하며 구했습니다.
좋은말로 격려하고 좋은게 좋은 것으로 넘기고 싶은 이기심과 손해보고 싶지 않은 영악함,예수님오시는 첩경을 예비하고 목베어 죽는 세례요한이 되는 것이 제겐 두려웠습니다.
딱 중간만, 표안나고 가고 싶은 욕심이 저를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임져 주시는 영광의 왕>을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으로 넘어 온 관계보다 훨씬 주안에서 깊은 교제로 함께 성장하며 각별한 사람으로 서로간에 인식되는 기쁨이 있고 살아 숨쉬는 관계로 거듭난는 이 관계의 영성! 할렐루야~
몇개월간의 대장정에 막을 이제 내리며 제게 풍성한 수학을 한아름 안겨주시는 주님!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강하고 능한, 전쟁에 능한 <책임져주시는 영광의 왕>
을 뵙는 아침입니다.
언제든지 혜옥자매는 우리로 즐겁게 얘기할 수있으며
빛과 어두움, 생명과 사망이 주앞에서는 일반이며
내가 나의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은 나의 믿음을 책임져 주시는
영광의 왕! 기뻐 저 또한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남편을 먼저 목장예배로 참석토록 권면해주신 것,
저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줄 것만 있는 전도사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