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뜨리는 죄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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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8.24
무단히 전화를 걸고싶을 때가 있다.
전화를 걸어 얘기를 좀 하고싶을 때가 있다.
입을 삐쭉거리며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공연한 짓인줄 알면서 괜히 그러고싶을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나서 또 그런 얘기를 하고싶을 때가 있다.
마음에 간질거리는 얘길하면서 안주삼아 씹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칫하면 그렇게 하고만다.
괜히 일없이 만나서 소모적인 얘기를 노닥거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모른다.
그게 죄라는 것을,
남의 허물을 말하고 퍼뜨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모른다.
오늘 레위기 13장 1-17절을 보며, 퍼뜨리는 죄를 묵상한다.
본문은 나병에 대한 얘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전염에 대한 얘기이다.
주석에 의하면,
본문의 나병은 실은 악성 전염성 피부병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그 병이 든 환자의 정하고 부정한 상태를 말하는 기준을 보면
전염, 퍼뜨리는 여부를 아는 것이다.
그 병이 남에게 옮을 수 있는 상태라면 부정한 것이라 환자를 격리해야 하고,
남에게 옮지 않는 단계라면 정하다고 보아서 격리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몸에서도 이미 퍼질대로 다 퍼져버려서 더 이상 퍼질 건덕지가 없다면 정하다고 보았다.
전염이다, 퍼뜨리는 죄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우린 피부병에 대해서, 나병에 대해서도 부정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 모둔 이미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속에는 나병같은 독한 죄성이 아직도 있다.
문제는 퍼뜨리는 것이다.
남의 잘못과 허물을 내입으로 퍼뜨리는 죄다.
그래서 그 얘기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한번 더러움을 입게하는 죄,
그 퍼뜨리는 죄를 금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아직도 여전히 퍼뜨리는 죄, 전염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면 부정한 것이란 뜻이다.
잠언서 말씀이 생각난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를 사귀지 말라셨다 (20:19).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준다 하셨다.(잠 10:12).
사실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린 안다.
사실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임을 말이다.
사랑한다면,
아무리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상대의 허물이라면 덮어주게 된다.
덮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게 사랑이다.
그래서 퍼뜨리는 것은 악한 것이다.
남의 허물, 약점,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요 악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선 그것을 나병이라 칭하셨다.
나병이든 악성 전염성 피부병이든 뭐든 악한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나병을 퍼뜨리지 않는 자이고 싶다.
악성 전염성 피부병을 전염시키지 않는 자이고 싶다.
때론 내속에 악한 병소가 우글거리더라도,
입을 열어 그것을 남에게 오염시키는 자가 되지 않으련다.
부정한 자가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니,
이제 정말 깨끗한 자로, 깨끗한 자답게, 그리고 깨끗한 자처럼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각오로 아침을 연다.
그 다짐으로 새아침의 창을 또 힘차게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