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과학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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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2.27
제목 : 용서의 과학
성경 : 마18:21-35
얼마 전에 마음이란 6부작 다큐멘터리를 관심있게 보았다. 마음의 마지막 편은 용서였다. 용서라는 것을 신앙의 관점이 아니라 과학의 관점에서 조명해 본 것이다. 용서하지 않음으로 인해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독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용서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용서함으로 얻어지는 긍정적 결과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오늘 말씀에 받을 돈과 받지 않아야 할 돈이 있음을 본다. 용서해야 하는 사례와 용서하지 말아야 할 사례가 있음을 본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다. 긍휼히 여김으로 인해 나도 돈을 탕감해 준 것 경우도 있고, 내가 탕감을 받은 경우도 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에 함께 일하던 부장님의 생활이 어려워서, 내가 먼저 100만원을 빌려 준 적이 있다. 작은 형님이 방을 얻을 돈이 없을 때에도 100만원을 준 적이 있다. 갚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생각하기 보다는 안쓰러운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물론 지금도 받을 생각은 없다. 내가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도 말이다.
반대로 내가 탕감받은 경우도 있다. 몇 년 전에 전혀 돈이 없는 상황가운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빚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에서 1000만원을 빌렸다. 아무런 조건없이... 2년 후에 갚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 갚지는 못했다. 700만원은 갚았고, 나머지 300만원은 없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나를 긍휼히 여겨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경우 모두 감동이 있다. 줄 때도 받을 때도, 마음에 찡함이 있었다.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가 왜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했을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만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백 데나리온을 빌린 자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했다.
내가 돈을 빌려 준 돈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마음과, 내가 갚아야 할 돈을 탕감해 준 마음 속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마음에서는 용서의 과학에 대하여 말해 준다. 입장바꿔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고 체감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이전에 말씀이 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에 용서하지 못하는 잘못은 없다. 다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음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나의 죄를 탕감해 주셨다.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비결이다. 용서를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심을 기억하는 것이고, 나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영적 웰빙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잘 못한 것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마음 속에 용서해 주지 않는 권위자들이 있다. 지금은 만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감정은 없지만, 내 가치관 속에는 여전히 잘못한 사람들로 낙인찍인 분들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더 많음에도 내가 용서를 안해 주고 있다는 모순 속에 있는 나를 본다.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긍휼을 기억할 때에 나도 용서를 70번씩 7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늘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먼저 기억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전에 주님을 기억함으로 사랑도, 용서도 나눌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